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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13. 2024

보통의 점심

혼자 차려 먹는 일 

      

매일 아침을 지나면 오전이 후다닥 지나버린다. 해야 할 일이 쌓여있다고 녹음기 재생버튼을 누르 듯하면서도 몸은 언제나 그 자리다. 부엌 중앙에 있는 식탁에 커피를 마시며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동네 친구와 매일 공원을 걷는다. 한 시간 정도를 걷고 돌아오는 길에 커피숍에 잠깐 들른다. 한 해 두 해 함께 하다 보니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규칙처럼 서로가 번갈아 가면서 커피를 산다.     

  

따뜻한 온기가 흐르는 커피를 들고 집에 들어서면 식탁에 앉는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바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한없이 늘어진다. 이때는 의식을 꼭 붙잡고 있어야 한다.     

 

해야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하고 빠르지는 않지만 하나씩 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11시다. 방 이곳저곳을 다니면서도 점심에 먹을 것을 고민했다. 어젠 아침에 먹다 남은 것을 대충 데워서 먹는 것으로 끝냈는데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집에 있는 것으로 잘 먹는 방법을 찾았다. 떠오르는 건 없지만 정성을 더하고 싶다. 달걀 두 개를 삶았다. 그다음은 양배추다. 아삭한 양배추는 살짝 부담스러워 채 썰고는 뜨거운 물에 데쳤다. 알록달록 다른 색이 있으면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서 주황 파프리카도 썰었다.      

다시 집에 있는 먹거리를 찾았다. 엊그제 삶아놓은 브로콜리를 꺼내어 뜨거운 물에 다시 빠르게 데쳤다. 사과도 반에 반쪽을 준비했다. 소스는 다진 양파에 레몬즙과 발사믹, 꿀, 올리브유를 넣어 맑게 했다.    

 

여기에 이틀 전에 구운 식빵 한조각도 함께 했다. 차려보니 소박하다. 포크를 들어 소스와 섞으며 천천히 점심을 먹었다. 어제보다는 나은 한 끼인 건 분명하다.  집에 있는 것들로 마음에 드는 밥상을 차려야지 하는 간단한 의미였지만 찾게 되는 건 여러 가지다.   

  

샐러드를 만들다 보니 알록달록 다른 색 채소가 있으면 좋겠다. 구워진 닭가슴살이나  먹다 남은  치킨조각이 그립다. 양상추와 방울토마토도 필요하다. 이렇게 원하는 것을 하나씩 나열하다 보니 ‘집에 있는 것’으로 포장할 뿐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    

 

“집에 있는 걸로 먹자.”

이 말에는 현실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바람의 정서가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다른 것을 사 오는 건 싫다. 고공행진하는 물가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동시에 나쁘진 않은 평균을 유지하는 집밥에 대한 바람이다.    

  

이건 단순한 듯 보이지만 어렵다. 그저 익숙한 찬일지라도 없을 때가 많다. 두세 가지 이상 밑반찬을 만들어 놓는 일은 그만큼의 부지런함과 노련함이 요구된다. 만들어 두어도 잘 먹지 않으면 그 맛이 사라지니 때로는 그것이 싫어서 준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반짝이는 주인공 요리가 없는 밥상은 너무 허전하다. 정말 먹을 게 없는 날에도 집에 있는 것이란 현실과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 어쩌면 그건 갖추어 놓지 않을 때가 많아서, 언제나 맛난 것들로 채워진 냉장고를 바라는 마음일 수도 있겠다.    

  

빵과 샐러드가 전부인 내 점심은 그저 보통의 한때였다. 정말 좋았다거나 별로였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면 이것을 먹고 기분이 좋아지고 싶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작지만 새로이 만들어서 식탁에 올렸다는 것.      


이런 날은 밥 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확신하면서도 어느 부분에선 일이 되었음을 확인한다. 혼자 있는 식탁에서 마음 대신 대강 차리고 끝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다. 내게 다가가는 일은 보통의 점심에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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