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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11. 2024

비 오는 날 그리운 수프 카레

대전 <카리코>

비가 온다고 했는데 아직이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더디다. 어제는 포근하더니 오늘은 싸늘하다. 따뜻한 국물이 있는 한 그릇이 먹고 싶다. 이런 날은 누가 나를 위해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문득 생각나는 카레 집이 있다. 지난달에 갔던 대전 유성구 도룡동에 있는 <카리코>. 새벽부터 일어나 두 시간을 달려온 대전이었다. 20여 년 전에 일 때문에 몇 시간 들른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날도 겨울을 마무리하는 비가 내내 내렸다. 백화점에서 시간을 보내며 조카를 기다렸다.      

 

백화점 푸드코너에서 찐빵만두를 하나씩 먹었다. 조카를 만나러 아이와 처음으로 간 대전 여행이었다. 오후 두 시가 가까워질 무렵 기다리던 전화가 울렸다. 이제 막 꿈을 키우는 젊은 과학도인 조카는 밤을 새웠는지 얼굴이 부스스하다. 반년 만에 만난 우리는 반가운 인사를 건넸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카레 괜찮아?”

조카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다들 좋다고 하니 그곳으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카레라는 이야기를 듣고 떠오른 건 익히 알고 있는 인스턴트 스타일의 카레였다. 별 기대감이 없었다. 차를 십분 남짓 타고는 어느 빌딩 주차장에 내렸다. 동료들과 종종 오는데 삿포르 스타일의 카레집으로 대전에서 꽤 인기 있는 곳이라고 했다. 


식당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한 테이블에만 손님이 있었다. 메뉴판을 보고 먹고 싶은 걸 고르기 시작했다. 난 쇠고기 수프 카레를 막내는 치킨카레, 큰아이와 조카는 소시지 카레를 시켰다. 평소 점심 무렵에는 기다려야 할 만큼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카리코 치킨카레


앉자마자 주문을 했고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갑자기 진한 카레 향에 집중되었다. 연근과 브로콜리, 당근과 단호박 등이 접시 가장자리에, 카레와 주메뉴는 가운데 놓였다. 접시에 편평하게 펴있는 밥을 넣고 먹는데 따뜻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채소는 바삭하면서도 달콤했다. 추운 날씨에 몸을 단숨에 녹여줄 만큼이었다.      


오래전 혜화동에서 먹었던 인도 카레나 홍대에서 먹었던 진한 일본 스타일의 카레와는 구별되었다. 그동안 내가 먹었던 카레식당이 많지 않기에 객관적으로 평하기는 어렵지만 한입 먹은 순간부터 다른 게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만남이라 잠깐 안부를 묻고는 정말 열심히 먹었다. 혼자 먹는 것처럼 내 앞에 있는 접시에만 집중할 정도였다.     


고기와 채소의 조화에 감탄이 나왔다. 메뉴판에서 수십 가지 향신료를 섞어서 만들었기에 시판 카레와는 분명히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정말 그랬다. 처음부터 살짝 은은한 매운맛이 흐르면서도 크게 맛을 방해하지 않았다.     


갑자기 배워보고 싶은 카레 맛이었다. 항상 밖에서 밥을 먹을 땐 무슨 자신감인지 비판의식이 싹튼다. 이 정도 음식을 갖고서 이 가격에 팔다니 좀 성의가 없다거나, 내가 만들면 이것보다 잘할 수 있다는 아쉬움이다.     


그러나 이곳에선 음식을 만드는 이에 대한 고마움이 생겼다. 흐린 날 낯선 공간에서 어색해하는 나를 느슨하게 했다. 따뜻해서 좋았고, 낯설지만 끌리는 맛이었다. 삿포로라는 단어에선 여행을 떠나고 싶은 설렘이 일었다.  그곳에 가 있다고 잠깐 착각하고 싶었다.  


한 그릇을 비우는 시간은 짧았지만, 대전에 머무는 1박 2일의 시간 동안 그 음식이 자꾸 아른거렸다. 누군가가 해 주는 음식은 당연히 맛있다고 하지만 언제나 예외였던 내게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브로콜리가 참 맛있어요. 이거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서요”

“아 네, 그거 그냥 튀겼어요.”

그냥 나서기가 아쉬워 내가 할 수 있다고 여기는 범위에서만 비법을 물었다.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묻지 못했다.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식당을 나왔다. 들었지만 이 집처럼 내가 만들 순 없을 듯하다. 그래서 자꾸만 그리운 맛이다.  카레 얘기를 꺼내니 아이가 거들었다.

“엄마, 만약에 대전 또 가게 된다면 그 카레 집 또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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