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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08. 2024

냉이 된장찌개와 쌈장 한 숟갈

봄 식탁

소소리바람이 약해졌다. 곳곳에 매화꽃이 얼굴을 내민 지가 꽤 되는 걸 보니 봄은 봄이다. 이때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식탁에는 봄에 나는 걸 올려야 한다는 혼자만의 책임감에 시달린다.  

   

봄이 내 부엌에 오는 모습이다. 냉이를 한 봉지 샀다. 초록 냉이는 잎이 촘촘하게 붙어서 가는 뿌리와 바랜 잎을 떼어 내는 일이 번거롭다. 그런데 이미 깨끗하게 단장하고 나온 냉이는 손 갈 일이 없으니 반갑다.


오랜만에 놀러 온 동생에게 냉이 된장찌개를 끓여주기로 했다. 디포리로 국물을 내고 냉이를 적당한 크기로 썰었다. 뚝배기가 보글보글 끓을 무렵 냉이를 넣고 된장을 푼 다음, 국에 맛이 들어갈 때면 채를 썬 청양고추 반 개를 더했다. 그리고 잠깐 숨을 돌리고 나면 두부를 담고 한소끔 끓여내었다.     

냉이 된장찌개

더할 것 없지만 마지막으로 맛난 국물을 위해  양념을 추가했다. 시판 쌈장을 한 숟가락 넣었다. 삼겹살집 된장찌개 같으면서 “그래 이 맛이야”하는 기분이다. 

 

계절의 상징 같은 냉이에게만 오롯이 찌개맛을 책임지라고 하기엔 불안했다. 있는 그대로를 느끼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전혀 문제가 없지만 때로는 순수한  맛이 별로라고 여겨질 때도 많다. 이미 우리는 다양한 조미료에 익숙해졌고, 그것이 음식의 전부라고 여기는 일도 비일비재다. 


일찍 깨었지만 몸은 찌뿌둥하다. 이런 날은 짜지만 무리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히 단맛이 어우러진 것을 찾는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양념이다. 이것을 잘 활용하면 훌륭한 요리사라는 얘기를 들을 만큼 입맛을 당기는 한 그릇이 가능하다.      


찌개 한 숟가락을 떠서 맛을 보니 역시나 흐뭇하다. 내 손길로는 불가능한 작은 빈틈을 메워서 속이 꽉 찬 분위기다. 한편으론 자연의 맛을 거스르는 듯한 기분에 살짝 머뭇거린다. 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솟아 난 냉이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한 것 같은 여운이 남았다. 


겨울을 보내고 나면 아쉬움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동시에 지금이라도 무엇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얼마간 머문다. 부모님 곁에서 보낸 어릴 적 겨울은 내일을 준비하는 조용한 듯 하지만 치열한 시간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과수원에 나가 밭을 정리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를 하나씩 해내었다. 아버진 이런 삶의 태도를 은근히 강조했다. 이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이와 정반대로 생활한다면 희망이 그만큼 줄어들거라 여겼다. 내가 겨울을 보내는 방법은 후자에 가까웠다.


그래서 3월을 맞이하면 가슴속이 바쁘다. 매일 밥 하는 내게 식탁으로 그런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이번 주에는 냉이, 달래 등 봄을 상징하는 것을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행동은 별개로 이어졌다.  하루가 멀다 하고 비 내리는 날씨는 장 보는 일을 망설이게 했다. 

봄 냉이 

며칠 만에 뚝배기에 찌개를 준비했다. ‘봄맛’ 냉이만으로는 성에 안 차서 전문가의 손길로 탄생한 쌈장도 동원했다. 처음에는 궤도를 벗어난 일을 한 것 같아 불편했다. 지금 보니 참 별것 아닌 일에 의미를 두었다.  아주 단순한 일조차 뜻과 가치를 두는 게 과도하다 싶다. 깊게 바라보는 게 일을 해 가는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가벼운 일상을 만드는 일에는 걸림돌로 작용할 때도 있다. 사실 분명한 건 쌈장의 도움을 받고 찌개는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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