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오일장과 잔칫날
일요일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자마자 튀김을 만들었다. 개학 전 마지막 날을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 무엇이라도 아이들에게 해 줘야 할 것만 같았다.
며칠 전 엄마가 마지막 남은 것이라며 고구마 다섯 개를 다른 채소와 함께 보내주었다.
“고구마 하나만 해도 한번 먹을 만큼 튀김이 나오니까 한번 해봐라.”
택배를 잘 받았다는 인사를 하는데 엄마가 덧붙였다.
그때부터 고구마튀김을 떠올렸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스쳐 지나가는 한마디도 가끔은 크게 다가와 행동으로 이어진다. 고구마를 둥글게 썰고 밀가루 반죽을 입히고는 노릇하게 튀겼다. 고구마는 순식간에 접시 가득 담겼다. 문득 집에 있는 채소들과 어울리는 야채튀김이 먹고 싶다.
기름이 많이 들어가는 요리는 마지막 정리가 조금 귀찮다. 그래서인지 이번 기회에 종종 생각나던 그것을 만들지 않으면 다음이 언제 올지 모른다. 남은 고구마와 자투리 당근에 양파와 깻잎을 채를 썰고 쑥갓도 적당한 크기로 손질해 넣었다. 야채튀김은 반죽을 무심히 한 덩이를 뜬 다음 기름이 튀지 않게 팬에 넣으면 된다.
아이와 남편에게 이 둘을 접시에 담아서 건넸다. 아이는 고구마튀김을, 남편은 어릴 적 시골 오일장에서 먹었던 야채튀김을 더 좋아했다. 외할머니댁에 놀러 갔다가 종종 사 먹었던 그 맛을 아직도 기억하는 모양이다.
내게 야채튀김은 잔칫날 음식을 준비하는 창고에 호기심으로 들어서면 친척 어른들이 한두 개 건네던 주전부리다. 결혼식 전에 이뤄지는 잔치는 온마을이 들썩일 만큼이었고, 손님이 많이 오는 탓에 귤을 저장하던 창고가 임시 대형부엌으로 변신하곤 했다.
그때마다 학교 갔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잠깐 그 공간에 들어서면 얼굴 아는 동네 어른들이 맛 보라며 야채튀김을 주었다. 처음에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한번 맛을 보면 고소함과 달콤함에 엄마에게 몇 개 얻어달라 조를 정도였다. 5~6년 전 성당 재건축을 위한 바자회에서도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그것을 한 봉지 사 먹고는 그 이후로 만나지 못했다.
고구마튀김을 연이어 먹다 보면 이상하게 지루한 기분이다. 맛있긴 한데 좀 더 바삭한 것을 기대한다. 일식집 튀김처럼 투명한 아삭함을 기대하지만 매번 어렵다. 이런 갈증을 해소해 주는 게 야채튀김이었다. 초록과 노랑, 주황, 하얀색이 모여드니 색감만으로 맛나다. 이것에는 반드시 고구마와 당근, 쑥갓과 깻잎이 필요하고, 쪽파까지 더해지면 더 좋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법칙 아닌 법칙이다.
채소 크기를 가지런히 맞춰놓을 필요 없이 들쑥날쑥 인 반죽이 끓는 기름에 한 덩어리로 단단해지는 모습이 매력적이다. 각각의 재료가 모이는 동시에 그사이에 공간이 생기니 튀김의 바삭거림도 더하다. 예닐곱 개가 전부였던 야채튀김은 우리 부부의 몫이었다.
아이와 잠시 학교 준비물을 사기 위해 외출했다 돌아오니 야채튀김은 달랑 두 개가 남았다. 그 사이에 입이 심심했던 남편이 먹었나 보다. 맛이라는 감각은 그것을 경험했던 시간에 세월이 덧입혀져 큰 감정의 덩어리로 다가올 때도 있다. 다 먹고도 부족하겠지만 차마 다 먹지 못하고 남겨 놓은 튀김에서 남편의 따뜻했던 그 시절을 잠시 짐작할 따름이다.
아이들은 그저 좋아하지 않는 야채가 있다는 이유로 거리를 두지만, 오히려 남편과 난 아쉬움에 다음을 기약했다. 우리 부부의 야채튀김에 대한 기억은 옛이야기가 될 만큼 오래되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없기에 야채 튀김으로 위안을 받는다.
지금 그런 곳이 있다면 기꺼이 달려가 온몸 가득 기름냄새를 묻히고 싶다. 여럿이 어울려 수다 떨며 웃음꽃이 피어날 때면 튀김꽃도 함께 피어나지 않을까.
음식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날처럼 내 삶의 소소한 순간들 앞에 서 있는 나를 볼 때가 있다. 지금의 나를 형성하고 있는 정서들이 무엇인지 알게 될 때는 참 반갑다. 오랜만에 야채튀김을 만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