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생 시절 아침 일찍 학교에 가는 길목에서 매번 잠깐 멈칫하는 순간이 있었다. 노부부가 운영하는 채소가게로 내게 꽃집 같은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교문을 향해서 부지런히 걷다 보면 학교 가기 얼마 전에 작은 가게를 지난다. 배추와 무, 당근 등 익히 알고 있는 채소가 초록색을 중심으로 빛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체 모를 편안한 향기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곳은 쉽지 않은 하루를 보내야 하는 내게 아침의 즐거움이었다. 살짝 등이 굽은 주인 어르신이 정성스러운 손길로 가지런히 정리된 채소들은 아기의 천진난만한 미소처럼 내게 방그레 웃어주는 듯했다. 그때는 어른이 되어서 이런 가게를 열고 싶었다.
지금도 초록의 것들에는 끌린다. 땅에 단단히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런 마음이 강해지는 건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종종 화분에서 키우는 식물의 한계를 경험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번 여름처럼 더위가 멈출 줄 모를 때는 시름시름 힘들어하는 식물을 보면 괜스레 미안하다. 비는 없더라도 이슬이라도, 때로는 언제 왔다 갔는지도 모를 소나기에도 충분히 숨 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더 커진 건 바질 때문이었다. 더운 여름날 친정에 다녀왔다. 덥다고 난리지만 긴 골목을 들어가 마주하는 집 마당에는 고추, 상추, 감나무까지 모두 초록이다.
의욕을 빼앗아갈 정도인 이 계절의 어려움을 잊는다. 아침을 준비하는 엄마와 적당히 수다를 떨다가 마당으로 나왔다. 눈으로 얼핏 봐도 무엇인지 알만한 채소들이 자란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몇 그루 안 되는 꽃나무가 있던 자리를 텃밭으로 가꿨다.
과수원은 집에서 멀진 않지만 원할 때마다 채소를 가져오기 힘들다. 그러니 바로 딸 수 있도록 상추와 고추, 가지 등을 그곳에 심었다. 화산 송이가 깔려 있어 물 빠짐이 좋고, 햇볕이 잘 들어 무엇이든 잘 자랐다. 그곳에 정체 모를 작은 나무 같은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바질이었다. 그 반가움은 무엇이었을까? 보석 같은 귀한 것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얼굴을 바싹 가까이 대어 향을 맡았다. 씁쓸하면서도 강렬한 그것이 정신을 또렷하게 해 주었다.
바질은 두세 번 동네 화원에서 사 와서 화분에서 키웠다. 잎을 따먹기도 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간 정성을 기울이다 한눈을 팔게 되면 벌레가 생기고 시들시들하다 죽어버렸다. 그런데 땅에서는 단단한 나무가 되어 크고 있다.
화분에서 키우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건강하다. 웬만한 날씨에는 흔들리지 않을 정도다. 두 그루의 바질 나무는 땅이 주는 위대함을 오롯이 담고 있다. 한참이나 그곳을 떠나지 않고 바라봤다. 세상의 생명체들이 왜 땅에서 살아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아침밥을 먹다 바질 얘기가 나왔다. 언니가 시장에서 사다가 심었는데 그렇게 자란 거라고 했다. 몇 해 전 과수원 작은 책방 텃밭에서 바질이 무럭무럭 크는 걸 보고 감탄한 적이 있다. 그곳에 이어 두 번째로 튼튼한 바질을 만났다.
집에 갈 때 잎을 따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침 비행기를 타야 해서 6시에 집을 나서야 했다. 갑자기 잊고 있던 바질이 생각났다. 어스름한 새벽에 휴대전화 등을 비추면서 잎을 땄다. 다른 것 빼먹어도 이 건만은 챙겨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했다. 집으로 와서 깨끗이 씻고는 페스토를 만들었다.
화분에서 자란 것보다 훨씬 향은 진했다. 맛 역시 야생의 거칠면서도 단단한 분위기가 입안에서 오래 머물렀다. 바질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빵도 구웠다. 지금도 작은 유리병 속에 조금 남았다.
감자빵에 바질페스토를 가득 발랐다. 빵의 담백함에 바질향과 올리브유의 고소함, 멀리서 달려오는 듯한 쌉싸름함에 집중할 뿐이다.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여러 걱정을 잠시 저 멀리 둔다. 음식은 종종 이렇게 내 마음을 알아준다. 무엇이 먹고 싶다는 신호를 알아차리게 되는 날은 마음을 다시 보면 좋겠다. 그것이 어느 누구의 말 보다 나를 알아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