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언제나 가능한 것으로 채우기
다발 무가 나왔다. 뜨거운 여름 날씨에 채소들도 잘 자라지 못했는지 한동안 채솟값이 금값이었다. 그럼에도 부지런한 농부들의 노력 덕분에 시장에 나가면 초록 채소들이 하나둘 늘어간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게 무다. 대여섯 개 이상 붉은 종이 끈에 묶여 있는 희고 초록인 그것이 한쪽에 무더기를 이뤘다. 비가 조용히 내리는 날 무를 사러 갔다가 덜컥 그것을 들었다. 하나씩 사는 것보다 여러 개를 택하는 게 이득이라는 계산이었다.
앞으로도 무는 매일 찾는 채소가 될 것은 분명했다. 필요성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런데 무가 그리도 무거운지 몰랐다. 손이 얼얼해질 만큼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힘없이 툭 하고 놓아버렸다. 얼마 전에 동네 친구가 무를 사서 들고 오는 게 너무 힘들어 후회했다고 했다. 그때는 얼마나 무거울까 하고 지났는데 내가 그 친구와 같은 마음이다.
들고 오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차를 갖고 가서 사는 게 좋았을 거라는 것. 몇천 원을 아끼기 위해 얼떨결에 정신없이 들고 왔다. 잊고 있다가도 이렇게 주부의 절약 정신이 나온다.
무엇이든 여유가 생기면 다른 방법이 없는지 찾는다. 그래야 지겹지 않고 쓸모 있게 활용할 수 있다. 거의 매일 무로 요리했다. 뭇국이 으뜸이었다. 그다음은 깍두기와 생채다. 그러다 불현듯 무나물이 생각났다. 어느 때보다 가을무로 만든 것이 맛나다.
별로 하는 것 없이 맛을 내어주는 찬이 무나물이다. 다른 식구들은 이것에 별로 마음이 없는 걸 보면 왜 그런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내가 먹고 싶어서 만들었다.
무를 우선 채 썰고 나서는 소금을 조금 뿌려두었다가 데워진 팬에 무를 넣는다. 무 자체에 수분이 많아서 중간불에서 서서히 익힌다. 적당히 뒤적거리다 무가 투명해질 무렵이면 들기름 조금과 깨를 뿌리면 끝이다.
맛은 달콤하면서 고소하다. 자꾸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원래 무라는 녀석이 이리도 맛난 것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이다. 무 반 개를 했는데도 숨이 죽으니 접시 하나에 가득할 뿐이다.
나만 아는 행복한 밥상이 되었다. 어릴 때는 이걸 정말 좋아하지 않았다. 집밥은 언제나 과수원 한편에서 자란 채소가 주를 이뤘다. 고기 보기가 힘든 시대이기도 했지만, 채소를 먹어야 속이 편하다는 게 부모님의 식생활 철학이었다.
배추된장국과 삶은 시래기나물, 초록의 연한 생채소가 밥상에 올랐다. 그러다 종종 무나물도 빠지지 않았다. 엄마는 채를 썬 무를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다음 조선간장이나 소금을 넣고 참기름에 깨를 더하는 방식으로 나물을 만들었다. 여기에 쪽파를 마지막에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컹한 맛이 싫었다. 이제 내가 그때의 엄마 나이쯤이 되었나 싶다. 무를 찾는다. 가을에는 다른 것보다도 무가 없으면 괜스레 마음이 바빠져 마트에 다녀와야 할 것 같다. 단지 무를 사야 한다는 이유다.
옛날에 별로였던 게 어느 사이에 좋아하게 되었다. 이것이 나이 들어가는 과정인지, 사물을 더 가까이 만나면서 알게 되는 배움인지 모르겠다. 어린 시절 무나물은 그저 지금의 내가 살아가는 모습 같아서 싫었다. 소박함을 넘어선 그것이 보잘것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그래서 맛을 아는 일에도 주저주저하면서 모른척했을 수도 있겠다.
부모님의 살아가는 방식이 어린 내 생활의 전부였던 때다. 부모님은 매일 아침이면 때로는 그보다도 더 훨씬 이전 어두 컴컴할 때 집을 나서고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성실함과 절약으로 똘똘 뭉친 내일을 위하는 삶이었다. 무나물은 그런 어느 시절의 모습을 한편에 담고 있다.
지금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 그 일상이 지금의 내 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더불어 그때 몰랐던 맛도 알아간다. 별것이 있을 날을 기다리기보다는 지금 좋은 것들을 알아가려 한다. 괜찮은 때보다 해법을 찾아야 하는 고민이 더 많다. 지치지 않고 일상을 보내기 위해서는 유연함이 필수적이다. 그건 가까이서 좋아하는 것을 찾기다.
무나물은 내게 특별하지 않아도 잘 지낼 수 있다는 위안을 준다. 어느 선생님은 갈비를 안 먹어도 보리밥 먹고살면 된다는 마음가짐이면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게 지낼 수 있다고 했다. 무나물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것. 집에는 아직도 무가 다섯 개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