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박재석

"왜 사람은 자신의 태어남과 죽음을 온전히 지켜볼 수 없을까?"


저는 아침에 어린이 병원에서, 오후에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환우와 가족, 병원 스태프들을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돕는 일은 하는 병원 채플린, 원목입니다. 미국 미주리 대학병원에서 자리를 잡고 일한 지 4년째 접어들었습니다. 미국에서 언론학 박사과정을 준비하다가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 하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미주리 대학병원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원목 레지던트로 생활한 1년을 합쳐도 경력이 5년도 채 안 되는 풋내기입니다. 그런 저에게 얼마 전부터 이런 의문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정해 놓으셨으니까 그렇지' 이렇게 생각을 하며 애써 외면하려고 해도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또, 이런 생각이 떠 올랐습니다.


'어린이 병원과 대학병원 중환자실 양쪽에서 일하게 된 것이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몰라.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들과 경험한 일들 가운데 혹시 그 답을 어렴풋하게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지난 2016년 11월, 병원 원목으로 안수를 받은 뒤 병원에서 일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기록해 둔 100여 편의 글을 정리하면서 어렴풋하게나마 질문에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내가 태어나는 순간과 죽는 순간은 온전히 인식할 수 없지만, 타인을 통해서는 그 일이 가능합니다. 특히, 저는 미주리 대학병원에 원목으로 부임해서는 매일 아침 신생아 중환자실과 분만실에서 아기들을 만나고 그 어린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고, 더러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가족들을 위로해왔습니다. 또,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여러 환자들의 임종을 도우며 죽음을 대합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 서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 그 고통을 통과해 새로운 삶을 되찾는 사람들, 그러나, 다시 병원에 들어와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 수많은 환우들의 태어남과 죽음, 삶과 죽음 사이에 서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의 손을 잡아 드리는 일을 하는 가운데 틈틈이 제 마음을 위로하며 써둔 글들을 보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개인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라도 우리가 받아들이기로 선택하는 순간 통과하지 못할 어려움은 없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태어남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지만, 우리의 죽음은 어떤 면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천재지변이나 갑잡스런 사고의 경우는 예외로 치더라도 나의 존엄을 유지하며 평온하게 마지막을 맞이할지 말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1부, "병원 채플린이 뭐예요?"에서는 병원에 채용된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채플린이 하는 일과 정체성에 대해 사례를 중심으로 기술합니다. 2부, "고통이 우리를 부를 때"에서는 숨이 멋는 듯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기 위해 애쓰는 환우들 통해 배운 삶의 의미를 나눕니다. 특히, 3부, "작은 기적 이야기"에서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만난 기적과 같은 기쁨의 순간들을 소개합니다. 끝으로, 4부 "애도 101"에서는 삶과 죽음 사이에 겪게 되는 애도 과정과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타인의 고통을 함께 한다는 것이 인간적으로 좋은 일인 줄은 알지만, 직업으로서 그 일을 항상 잘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현실을 인정하고 나의 연약함을 자각할 때 울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우는 동행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매일 배웁니다. 그것이 직면하기 싫은 죽음이라고 할 지라도 말이죠. 이제 그 이야기 속으로 떠나 보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