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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하늘 Oct 12. 2023

가을이니까 또, 계절성 우울증

인 줄 알았는데 이젠 아닌 것 같아-

바람이 쌀쌀해지니 '계절성 우울증' 증상이 발현되었다. - '알 수 없는 기분 나쁨', '심한 우울과 더 심한 우울',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는 무기력함', '삶의 무의미함에 대한 생각 끝에 오는 자살 사고'. - '가을 탄다.'는 가벼운 표현으로는 결코 넘길 수 없는 증상들을 또 맞이했다.


그런데 여기까지 쓰는 사이 생각이 바뀌고 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게 과연 계절성 우울증이 맞을까?



계절성 우울증이란, 계절이 급격하게 바뀌는 봄과 가을, 즉 환절기가 올 때 우울함을 겪는 증상을 말한다. 과거 계절성 우울증만 있었던 시기에는 정말 딱 1년에 저 두 차례(5월 초와 9월 말)만 2주 정도의 기간 동안 심한 우울과 무기력이 나타났었다. 하지만 이제는 1년에 수도 없이 잦은 빈도로 그런 증상이 나타나니 우울증 앞에 굳이 '계절성'을 붙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냥 또 우울 시기가 온 건데 마침 지금이 가을 날씨니까 습관적으로 계절성 우울증이 온 줄 알았을 뿐이다.


계절성 우울증만 겪었을 시기에는 이유도 모른 채 제발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 정도로 평소에 비해 너무 힘들다가 2주 정도 지나면 역시 이유도 모른 채 어느 날 갑자기 조금 우울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에 병원에 가 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여담이지만, 난 세상 사람 모두가 평소의 나 정도로는 우울한데 그냥 살아야 하니까 어른이니까 다들 어떡해서든 참고 사는 줄 알았다.)

2-3년 정도 그런 주기적인 우울 증상이 반복되니 스스로 패턴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계절성 우울증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병원에 가도 2주 간 먹을 정신과약을 받는 것 말고는 뾰족한 치료법이 없는 것 같아 알게 된 이후에도 병원은 가지 않았다.

'어쨌든 시간은 간다.', '2주간은 죽었다 생각하며 살아만 있자.' 2주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그 시기들을 보냈고, 나중에는 그즈음의 날씨가 오는 것이 느껴지면 '금방 오겠네. 이번엔 더 친하게 지내보자.'란 마음을 갖기도 했다. 하나도 반갑지 않지만 친한 척 반겨주는 게 심적으로 더 나아서(덜 비참한 기분이 들어서) 그랬었다.






그러다 조울증으로 진단받고 기분조절제(리튬, 중간에 잠깐 데파코트)를 먹기 시작한 지 1년 반 정도 된 것 같다. 약 복용 외에도 금주, 운동 등 증상 완화에 좋다는 건 되도록 지키고 있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얼마나 호전이 있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중간 점검을 한 번 해보자.


기분조절제를 먹은 후부터 경조 증상은 확실히 없어졌다. 하지만 약 복용 초반에 괜찮아지는 듯했던 우울 증상은 시간이 갈수록 빈도도 늘고, 정도도 심해지고 있다.



내가 아무리 우울이 주증상인 조울 '2형'에 속한다 해도 이건 좀 심하지 싶어 별 생각이 다 든다.


한 번 진단받는다고 그 진단명이 평생 가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다시 '우울증'으로 바뀐 게 아닐까? 여태까지도 '기분순환장애'이다가 '우울증'이다가 '조울증'으로 바뀌었으니 논리에 벗어난 추측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의 내 삶을 '우울'이 몽땅 지배하고 있어 '항우울제'가 절실한 내가 내리는 잘못된 추리일 가능성 또한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생각해 보니 9월 초에 있었던 마지막 진료에서도 나는 '부쩍 심각해진 우울'에 대해 언급했었는데, 남편이 내가 그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있다고 대신 말해줬었고(그때 나름 큰 이벤트가 있었어서 이 말도 맞다.) 의사 선생님은 여행도 좀 가고 놀러 다니면서 기분이 좋아질 만한 활동을 더 늘려보라는 조언을 했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진료 직후에 여행도 떠났었는데...... 하필 그때 (과거부터 쌓인) 스트레스가 폭발해서 문제를 더 가속화시킨 꼴이 되었지. (이전 글 <부부 여행의 딜레마 (1)>, <부부 여행의 딜레마 (2)> 참고. 맥락이 이어지는 글을 하나 더 쓸 예정이다.)






일단 다음 진료 예약은 2주 후에나 되어 있다. '그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한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외부적 요인을 찾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외부요인 1: 여행 문제로 발발된 고민들이 점점 더 많은 부분들로 번지며 큰 스트레스를 유발함 -> 많은 대화를 통해 남편이 의식적으로 신경 쓰며 노력해주고 있다.
외부요인 2: PT를 하며 식이조절을 한다고 탄수화물 섭취량을 조금 줄임 -> 탄수화물 섭취량을 예전만큼 늘렸다.


이 글을 쓰는데 오랜 날수가 필요했다. 온종일 우울과 무기력에 지배당하다가 잠깐씩 정신이 들 때 우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가면서 우울을 줄이기 위해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노력들에 대해 힘겹게 고민해 가며 조금씩 써 내려간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제가 좀 어색한 부분도 있는 것 같고 그렇다.)


다행히 지금은 최악의 상태보다는 나아졌고, 진료 때 의사 선생님과 상의해 보고 추후의 방향성에 대해 결정해야겠다. 그때까지 잘 버티자! 이번에도 살아남자!





+) 공감, 댓글, 구독에 생각보다 힘이 많이 나더라고요. 모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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