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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하늘 Dec 06. 2023

동네 단골 음식점이 문을 닫는다고 한다

우리의 다정한 식사를 기억해

작년 3월에 완전히 낯선 동네로 이사를 왔다. 주민센터, 은행, 우체국, 병원, 대형마트 등이 모두 슬세권이라 인프라가 아주 훌륭하다. 길만 두 번 건너면 나오는 천길 산책로는 가볍게 걷기에 좋다. 버스 정류장이 가깝고 지하철역은 15분 정도만 걸으면 나온다. 그래서 살기에 참 편하다. 하지만 낡은 건물이 많고 주민의 연령층이 다소 높아 보이는 동네라 그런가? 깔끔하고 모던한 분위기의 식당이나 카페는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PT샘에게 들은 정보로는(동네의 정보는 미용실 사장님이나 PT샘에게 전해 듣는다) 예전엔 무척 발달된 지역이었는데 어느 순간 상권이 옮겨가면서 점차 낙후된 동네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몇 년 전부터 아파트나 오피스텔 같은 신축 건물이 하나 둘 들어서는 중이고, 몇 달 전 스타벅스를 비롯한 브랜드 카페들이 오픈한 걸 보면 조금씩 변화하며 도약을 꾀하는 듯하다.


처음 이사를 와서는 도무지 동네에서 뭘 사 먹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주로 배달을 시키거나 차를 타고 나갔었다. 하지만 이내 배달 음식은 지겹고 차 타고 나가는 것은 귀찮아졌다. 그러면서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넨데 찾아보면 또 갈만한 식당들을 찾을 수 있겠지, 하며 걸어서 가볼 만한 식당을 열심히 검색했다. 칼국수집, 돈가스집, 곱창집, 파스타집, 닭칼국수집 정도가 맛있었는데, 그중 돈가스집은 얼마 못 가 문을 닫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파스타집은 올해까지만 영업을 한다고 한다.






사실 그곳은 처음 갔을 때부터 이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식당이라고 생각했다. 원테이블 레스토랑에 예약제 운영, 고퀄리티의 음식과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그랬다. 근데 그러면서도 가격은 저렴해, 이렇게 장사를 해도 되는 걸까?, 싶었다.


자주 가다 보니 사장님과도 안면을 트며 친하게 지냈다. 식사 후 같이 테이블에 앉아 가벼운 대화를 함께 나누기도 했다. 어느 날은 봉골레 파스타를 좋아하는데 맛있게 하는 집을 영 찾기가 어렵다고 하자, 원래 메뉴판에는 없는 메뉴지만 선뜻 만들어 주신다고 했다. 예약을 하면서 '봉골레'나 '조개' 같은 단어를 남기고 예약당일에 조개를 가져가는 것이 나름의 규칙이었다. 덤으로 사장님의 추천 조개는 백합조개나 바지락. 그래서 가끔 봉골레 파스타가 생각날 때면 규칙을 지키며 매우 만족스럽게 봉골레 파스타를 즐겼다.


그곳에 얽힌 추억도 많다.

부모님이 오셨을 때의 일이다. 스테이크, 파스타, 필라프를 주문해 먹고 있었는데 아빠가 갑자기 소주가 한 잔 하고 싶다며 소주도 있냐고 물으셨다. 당연히 그곳에 소주는 없었고. 당황하는 사이 사장님께서 사 와서 먹어도 된다셨지만, 결국 아마도 남편이 나가서 사 왔던 것 같지만, 나는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순간까지 무척 민망했다.

또 전에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며 사이가 돈독해진 소장님네 부부와도 함께 갔었다. 들어갈 때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앉아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질까 봐 걱정했었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자 모두 배가 고팠던지 맛있다는 말만 가끔 나누며 서로서로 먹는 데만 집중했다. 그래서 식당에 들어선 지 30분이 채 안 되어 식사가 끝났고, 남편이 스테이크에 곁들여 나온 통옥수수를 칼로 먹기 좋게 잘 손질했다는 기억만 인상 깊게 남았다.

그리고 작년 크리스마스 기분도 그곳의 크리스마스 한정 특별 코스와 함께 냈었다. 아늑한 공간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했고, 북적이지 않는 공간에서 남편과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특별한 요리를 먹으니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보낸 것 같고 기분이 참 좋았다.






낯선 동네에서 찾은 마음에 쏙 드는 식당이었고, 남편과도 자주 갔고, 사장님과도 친해졌고, 소중한 사람들이 집에 한 번씩 놀러 올 때마다 식사도 대접했고. 추억이 이토록 많은 곳인데 문을 닫는다니 정말 아쉽다. 좋은 것이 사라질 때의 싱숭생숭한 허전함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 것 같다.


서울로 이사해 오픈 예정이라고 하니 서울에 생긴 가게에도 놀러 가고 싶고, 그전에 일단 동네에 가까이 있는 12월 동안 자주 가서 먹어야겠다.





+) 공감, 댓글, 구독에 생각보다 힘이 많이 나더라고요. 모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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