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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하늘 Jul 30. 2023

함께 맞은 첫 생일

사귀기로 하고 두 달이 조금 지나자

함께 맞는 너의 첫 생일이 되었어.


그날은 평일이었지만

며칠 전 나도 자유의 몸이 되어

우리에겐 시간이 많았지.


기념일을 딱히 챙기지는 말자고 했지만-


받고 싶은 생일선물을 물어도 필요한 게 없다 하고

가고 싶은 곳을 물어도 동네 밥집이 전부라


'정말 원하는 게 없는 걸까?'

'있으면서 말을 안 하는 걸까?'


두 가정을 모두 염두에 두고

알쏭달쏭한 발걸음으로 너에게 향했지.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에 커피를 마시러 가서

네가 잠시 주문하러 간 사이 나는 먹기 좋게 알약을 뜯었어.


집에서 나올 때쯤 받은 '머리가 아파요.' 메시지에

바로 약국에 들러 두통약을 샀거든. 


그런데 이런 챙김 같지도 않은 챙김에

너는 진짜 너무 감동받은 모습을 보이더라.

게 뭐라고...




이후에는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PC방 데이트를 했어.

(겸사겸사 생일선물도 같이 고르고 싶어서)


매일 불면에 시달린다는 너를 위해

생일선물로 먼저 베개를 골라 결제하고,

아무래도 그걸로는 뭔가 부족해 보여 다른 걸 더 물어봤지.


잠시 고민하더니 '커플티'를 사고 싶다고 했어.


(네? 커플티요?

그게 정말입니까, 휴먼?)


사주는 건 문제가 아닌데 그건 같이 입어야......


그래, 귀여운 곰돌이 티셔츠는 죄가 없지.

결국 앞으로 자주 함께 입게 될 커플티도 샀어.




역에서 헤어질 때는 손을 달라고 해서

꼼꼼하게 핸드크림을 발라줬는데,

(언젠가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던 게 기억났거든.)

이 정도의 챙김도 역시 너무 좋아하더라.




카페에서도, 역에서도

잠시 울컥하다가

다시 활짝 웃던 너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해.




그리고 헤어졌는데 빠뜨린 것 하나가 기억났어.

같이 사진 찍고 싶다고 했었던 거.


아쉬운 대로 집에 와서 셀카를 찍어 보내줬어.

옷을 갈아입지 않고 만났을 때의 모습 그대로.

사진이라면 질색하는 내가 꽤나 공 들여 찍었었지.




별 거 아닌 것들로 소소하게 채워진 행복한 날.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작은 것들로 만족해 줘서 고마워.


나는 우리가 맞이할 앞으로의 기념일들도

이런 소박한 풍성함으로 채워질 거라는 생각에 기뻤어.




생일선물로 산 커플티


귀가 후의 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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