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레마의 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정의 서 Sep 11. 2024

유해한 설교

읽기에 관한 단상  Last Judgement Mural, Albi Ca

어릴 적부터 수많은 설교를 들었다. 어떤 설교엔 감동했고 어떤 설교엔 두 눈을 감았다. 어른이 되어 설교라는 형식에 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설교는 누구의 말이지?’

‘설교의 주체는 정말 저 설교자의 확언처럼 신인가?’

‘나는 왜 같은 이야기에서 그와 다른 생각을 하지? 그리고 왜 내 생각을 얘기할 수 없지?‘

이 해의 시작과 함께 ’ 억지로‘ 동참하게 된 한 설교자의 안내서를 따라 읽는 성경은 이런 의구심을 더욱 심화시킨다. 우려대로 그의 사관은 편협하고 소위 이교도들이라 부르는 비그리스도인-차라리 비유대인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을 향한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덕분에 내게는 전혀 새롭게 성경을 읽는 유익도 있다. 9개월째 ’ 이교도‘의 입장에서 ’ 유대의 역사‘를 읽고 있다. 그간 설교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이야기의 이면을 묵상해 보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읽기는 또 다른 쓰기라고 엘렌 식수가 말했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내 이야기를 쓰는 과정이기도 하다. 나는 종종 그런 그림을 그린다. 성경에서 말하는 마지막 심판의 순간, 내가 쓴 삶의 이야기를 들고 심판자 앞에 설 것이고 그분은 내 이야기를 세심하게 읽어볼 것이다. 지금 나의 읽기도 그 최종 읽기에 반영될 것이다. 오늘 읽기의 마지막은 페르시아 제국 안에서 높아진 유대인 모르드개의 평판으로 끝이 났다. 메시지에 따르면 그는 “유대인들 사이에서 “ 존경을 받았다. 분명 이교도 독자인 내게는 달갑지 않은 평판이다. 그와 그의 민족은 구원받았으나 모르드개가 찍은 왕의 인장에 속하지 못한 자들은 무참히 살해되었다. 하만은 집단 살인을 기획했으나 실패했고 모르드개는 그것을 실행했다. 이교도의 눈엔 그저 하만은 어리석고 오만한 자, 모르드개는 교묘하게 오만한 자일뿐이다.


설교자는 이 대목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등장시킨다. 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섰던 두 강도의 십자가를 떠올린다. 가만히 보니 이들은 페르시아의 유력자며 경쟁자였던 하만과 모르드개다. 하만은 사적인 분노를 조절해야 했다. 개인에 대한 미움을 비이성적으로 확대 재생산할 것까진 없었다. 사실 그와 같은 감정적 과잉이 내게도 자주 일어난다. 오른뺨을 친 자에게 똑같이 뺨을 치는 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을 때가 있으니 그럴 때면 상대에 관한 모든 악의적인 생각과 감정을 그러모아 메모해 둔다. 시간이 지나 대부분의 메모는 하만의 우둔한 계획처럼 흩어져 버리지만 그래도 하만의 장대를 생각하면 아찔하다.


유대인의 칭송을 받기에 조금도 부족할 것 없었던 모르드개는 자신을 매단 십자가를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혜 있어 보이나 달리 보면 권력을 이용하는데 영악하다 할 만하고 교묘히 사람을 통제하거나 배제하는 기술도 남달랐던 그였다. 유대인의 평판 <밖>은 온통 부정하고 가증한 것들 뿐이다. 그러니 철저하게 제거해야 했고 정화해야 했다. 그와 왕후 에스더의 살해 명령은 유대인의 평판 <안>에서는 거룩한 전쟁의 재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모르드개가 처단해야 했던 유대인의 <밖>을 유대인 예수는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죄인, 창녀, 세리 같은 가증한 것-내 추악한 메모들도 있으리라- 속에서 그는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모르드개의 후손이 예수를 그토록 불편해했던 지점이 바로 여기다.


어느 저자는 두 강도 모두 예수를 저주했다 하였고 어느 저자는 구원받는 한 강도에 대해 말했다. 그는 하만일 수도 모르드개일 수도, 혹은 둘 다이거나 모두 아닐 수도 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미 그들 모두를 위한 것이었으나 두 개의 십자가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같은 언어로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갔던 예수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유해한 설교가 쳐놓은 금단을 깨고 낯설고 부정한 그 땅으로 나를 이끌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 접근하는 일이 점진적이고 또 고통스럽다는 것을, 그리고 접근 대상의 정반대에 있는 것을 통과하는 일도 포함한다는 것을 아는 이들. 이런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만이 이 책이 아무한테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음을 아주 천천히 이해할 터입니다.
_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매거진의 이전글 엔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