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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의 서 Oct 11. 2024

이상한 전화

잠 못 드는 밤이었다. 수십 개의 보관상자에 무엇이 들었을지, 냉장고를 가득 채운 기한 지난 식재료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무엇보다 이 큰 집을 어떻게 세놓아야 할지, 생각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오직 밖의 어둠으로 커튼을 대신하는 사방의 창은 침대에 누인 몸을 망자의 것처럼 붙들어 매었고 안의 불빛이 켜지는 순간 어둠에 잠들어 있던 온갖 것들이 창에 들러붙을 것만 같아 두려웠다. 머리가 아파온다. 이상한 전화, 그 전화를 받는 순간 끝 모를 비행은 예정되었었다.


'너 지금 어디야?'

일상의 안부가 오가는 중 반복적으로 되묻는 질문에 불안한 짜증이 인다. 수년만의 통화인 데다 그에겐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마을 이름이 쉽게 받아들여질 일 없지만 그래도 지나친 확인이었다. 사실 오래전 그는 이 마을 가까이서 수감생활을 했었다. 3년간의 복역이유는 국가가 금했던 민주화를 부르짖고 다녀서였다. 그 시절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드나들었을 곳이지만 어린 여대생으로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집을 구하러 다니던 중 우연히 지나치게 된 교도소의 외관은 한가로웠고 산자락에 가지런히 얹은 하얀 건물은 사철 꽃, 나무들과 어우러져 봉쇄수도원의 평화로움을 연상케 한다. 유년시절부터 활자를 친구 삼았던 역사학도에게 오히려 읽기에만 전념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 아니었을까 철없는 질문을 떠올리다 저 담벼락 안은 원하는 책을 원하는 때에 볼 수 없는 극단의 통제 사회였음을 알아차렸다. 지금 내 시선이 닿는 이 유리벽처럼.


시각적으로는 완벽하게 개방된 듯하나 소리와 공기와 냄새는 모조리 제거된 이 집에 가끔 풀벌레 한 마리가 새시 물구멍을 헤집고 들어와 알 수 없는 언어로 바깥 소식을 전한다. 교도소 밖에서 그리던 낭만적 상상을 바다 건너 중산간 숲 속 그의 집에서 교정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두려움을 딛고 불을 켜기로 했다. 어차피 불면의 밤이라면 투명하고도 든든한 유리벽을 믿고 이 기억의 난장을 손보는 것이 낫다. 밤이 무척 길어질 것 같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일이 마무리될 수도 있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지만 그렇게 그 집을 정리하는 일은 유난히 무더웠던 그 해 여름, 어느 한 밤에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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