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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람 Dec 18. 2022

헤매더라도 주저 않진 않을 테니까

사진 한 조각, 일상 한 스푼

어디로 가야할지, 끝은 어디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가만히 있지만 않는다면 어느 방향으로 가든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매달 월급이 나온다. 추위를 견딜 수 있는 따뜻한 집이 있다. 먹고, 자고, 필요한 걸 사는 데 문제가 없다. 가족의 사랑을 받는다. 마음을 나눌 좋은 친구들이 많다. 건강을 생각해 요가도 한다. 나만 잘 챙기면 되는 삶에서 고민할 것이 뭐 있나 싶다. 그런데 종종 남들보다 뒤쳐진 것 같아 불안해하고, 스스로 부족한 점을 자꾸 발견한다. 비교대상이 있어서 그렇다.


심리학자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눴다. 가장 낮은 단계는 먹고 자는 등 생존에 필요한 '생리적 욕구'다. 두 번째는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안전의 욕구'다. 세 번째는 '소속과 애정의 욕구'이고 네 번째는 '존경 욕구'다.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단계는 '자아 실현 욕구'다. 매슬로우는 자아 실현 욕구를 모든 단계가 충족돼야만 이뤄질 수 있는 마지막 단계라고 다. 


지금 있는 에서 네 번째 단계까지는 올라갔다.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웃었다. 일 잘한다는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내부의 인연과 인정이 전부는 아니었다.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이 기자로 활동하는 걸 보면서 나만 뒤쳐진 것 같았다. 인생에 정해진 답은 없다지만, 기자가 되는 것이 자아 실현 욕구를 실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었다. 이루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마음은 스스로를 소진하면서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는 촛불이었다.


어쩌면 자아 실현 욕구는 어디서 무얼 하더라도 완전히 해소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매슬로우는 죽기 전 자아 실현 욕구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라는 것을 인정했다고 한다. 네 번째 욕구까지 충족돼서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자아 실현 욕구마저 성취하지 못한 것이라니 조금 씁쓸한 기분도 든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건지 정말 기자가 되고 싶은 건지 눈앞이 흐릿해졌다. 어느 쪽인지 알려면 나를 먼저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보와 지식은 구분된다. 정보를 지식으로 확장하려면 정보를 담는 그릇인 나부터 깊어져야 한다. 역사, 정치, 사회 등 나를 둘러싼 것들에 대한 공부는 해왔는데 정작 나를 알아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쉬지 않고 나오는 뉴스를 따라가다 피로해졌다. 정보만 주워담다보니 내면은 공허해졌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온데간데없고 삶에 대한 회의감이 빈 자리를 채웠다. 조금 다른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복잡한 머릿속은 글로 털어내고, 삶에 대한 고민은 책에 기대보려 한다.

꾸준함이 켜켜이 쌓이면 빛을 볼 거라는 생각으로, 당장의 두려움은 옆으로 밀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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