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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JANE Apr 07. 2020

코로나 시대의 장거리 연애

전염병과 롱디

몸이 아프다고 더 신호를 보내기 전에 한국에 와야 했다. 코로나가 점점 심각해지는 듯 보였고 사람들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를 걱정했다. 한국에는 중국인들이 여전히 많대. 한국에 왜 가니? 캐나다가 훨씬 안전해.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날 마스크를 소포로 받았다. 혹시 모르니 한 장 정도 주고 갈까? 다미앙은 손사래를 치며 너나 걱정하라고 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신천지인지 뭔지로 난리다. 잘은 모르겠지만 스스로 자가 격리를 시작했다. 아파트에 홀로 남아 시작된 나의 자가격리는 고요하며 평온했다. 17층의 신축 아파트는 하루 종일 햇살로 꽉 채워진다. 28460 개의 배달음식, 1분 거리의 24시간 편의점, 2분 거리의 24시간 버거킹, 마스크를 눈 아래까지 푸욱 뒤집어쓰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 아, 내 고향.


3주가 지났고 프랑스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분명한데 병원에 갔더니 집으로 돌려보내 졌단다. 학교에서는 개강이 미뤄졌다는 메일을 통보했고 언제 수업을 시작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홀로 남은 프랑스 남자는 고향인 파리로 돌아가야 하는가, 캐나다 어느 시골마을의 원룸 방에서 매달 월세를 축내며 외로운 삶을 지속해야 하는가. 알바는 진작에 짤렸다. 사람 좋은 사장님은 쇼핑몰이 문을 닫아 영업을 할 수가 없어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많은 알바생들이 다음날 렌트비는 어찌 내냐며 서러운 울음을 터트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평화롭던 일상들이 찬찬히 깨어지고 있었다. 어차피 영주권은 따면 좋고 아니면 경험인 것으로 치자고 했으니 혹시라도 유학생활이 완전히 어그러져도 뭐, 우리에게 큰일은 나지 않는다.



너나 쓰라며 마스크 챙겨두기를 거부했던 것이 무색하게 다미앙은 공업용 마스크를 쓰고나보다 더 극성으로 일회용 주방 비닐 글러브를 끼고 공항까지 갔다. 그래, 화장실 휴지를 사기 위해 서로의 머리채를 잡는 저 수많은 백인들 중 하나가 내 동거인이 아니라는 것에 나는 첫째로 감사했다. 더 호들갑 좀 떨어서 니네 백인들 한테 좀 알려줘라. 바이러스는 공평한 거야.


기득권층으로 태어난 유럽의 어느 평범한 백인 남자가 똑똑해지기는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그것을 수많은 백인들을 만나며 깨달아왔는데, 그들은 우리만큼 똑똑해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습지만 그것이 권력의 힘이다.  내가 악착같이 똑똑해져 봤자 유럽 여권을 가지고 태어난 백인의 무지한 권력에 견줄 것이 못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휴지를 사기 위해 머리채를 잡고, 올리브 오일을 100개씩 집에 쟁여둔다. 그네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똑똑한 짓을 해내고 있다. 백인과 살며 멍청한 백인들에 대해 욕하고 있으려니  이 모습이 너무 우스워서 이 때다 싶어 대미안에게 한참을 떠들었다. 엄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는 백인이랑 살면서, 그사람들 욕을 그렇게 해서 되겠니?   



2018, 크로아티아


남편은 집 뒷마당에서 그릴 위의 고깃덩어리를 치익 소리 내 구워가며 종이 접기로 시간을 보내기에 열중이다. 우린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하다고 말해왔지만 사실 너무나 많이 가졌다. 코로나로 인해 그 민낯을 본다. 당신이 여전히 햇살을 받으며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남편은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아서 참 다행이라고 했다. 큰 개 두 마리가 공을 잡으러 뛰어다니고 작은 바비큐 그릴이 있는 작지만 큰 집.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부자다 라는 말을 쓰는 것조차 사치가 아닌가. 내 것이 아닌 가난을 팔아 나의 감정을 풍족하게 채우는 일은 가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티끌 하나 없이 고요한 나의 자가격리가 그렇다. 나에겐 고작 다음 달의 카드값을 책임져야 할 뿐인 내가 있다. 술에취해 격리의 시간 내내 학대를 저지르는 남편도,  다음 한 끼를 뭘 먹일지 모르겠는 책임져야 할 작은 생명도 없다. 여전히 빈곤하다고 말하는 삶이지만 배달비에만 삼천원을 지불한 떡볶이를 쩝쩝거리며 대학교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나는 이 자가격리의 시간이 모두에게 평등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삶은 비극적이게도 아주 불공평하다.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혼인신고를 하고 정식 부부가 된지 겨우 두달이 지났을 뿐이다. 결혼하면서 더 이상의 장거리 연애는 없다고 못을 박았는데 어쩌다 보니 또 멀리 와 있다. 이젠 거기가 너네 집인지, 여기가 내 집인지. 급히 떠나느라 마구잡이로 쑤셔 넣은 짐들이 덩그러니 기다리고 있는 캐나다의 시골 동네가 우리의 집인건지 아리송하다.


누구네 집 남편처럼 마스크는 아픈 자들이나 쓰는 거라며 박박 우겨대는 바보 천치 서양인중 하나가 아닌 것으로 되었다, 했더니 이 와중에 남편은 파리 지역 자원 봉사자 신청을 했다. 코로나 때문에 장 보러 나가기 힘든 독거노인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일이다. 마스크 한 장 없이 무슨 배짱으로 싸 돌아다닐 생각을 하냐며  사위가 걱정스러운 듯 엄마는 짐짓 못마땅한 표정을 내보였다. 그러나 신청서에 적힌 남자의 이름을 조용히 바라보며 나는 한번 더 이 사람과 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한 것을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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