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들기 전엔 무엇을 하나
친구에게 책 만들기 워크숍을 한다고 말했더니,
“책 만들기? 아, 난 또 직접 책 커버 만들고 실로 꿰매고 그런 건 줄 알았어.”
이렇게 생각했단다. 이 말을 들으니 모임 이름도 <수제 청 만들기>, <수제 맥주 만들기>처럼 <수제 책 만들기>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가죽으로 된 커버를 손질하는 상상을 했다. 품이 많이 들겠군. 그렇지만 지금의 책 만들기도 컴퓨터라는 매체를 이용할 뿐, 내 손으로 글 쓰고 디자인하는 거니까 수제 책 만드는 거랑 똑같다.
2회 차 때는 마음에 드는 디자인 책을 가져오라고 해서 몇 권을 고르다 보니 다 내가 좋아했던 글이었다. 난 콘텐츠가 좋으면 디자인도 마음에 드는 건가.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 드는 디자인을 듣는데 생각보다 글의 배치 같은 걸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3회 차 때의 교정·교열 강의가 끝나고는 설 연휴가 있었다. 연휴를 좀 힘들게 보내서 몸에 병이 났다. 편도염은 늘 달고 살긴 했는데 너무 불편해 병원에 갔더니 궤양이 생겼다고 했다. 쉬고 싶기도 했지만 모임에 빠지고 싶진 않았다. 재밌고 소중해서.
한 번은 모임 구성원 중 한 분과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사정이 생겨 불발되었다. 혼자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어떤 식당에 갈지 엄청 고민했다. 돈가스는 속을 버릴 것 같아서 안 되겠고, 빵은 너무 간단해, 햄버거는 너무 비싸네(결국 그다음 주에 먹었다), 카레는 입 냄새가 너무 많이 나지 않을까,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우동을 사 먹었다. 맛이 나쁘진 않았는데 특별할 건 없었다.
다 먹었는데 25분이 남았다. 너무 추우니까 그냥 빨리 서점으로 갔다. 서점의 문은 미닫이고 안에 불빛이 은은해서 다시 어느 심야식당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거기엔 우동이 아니라 루미큐브가 있었다.
모임 첫 시간에 갔을 때도 루미큐브를 하고 계셨다. 요조 님은 이미 패를 다 내려놓았고 남은 두 분이 카드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대표님이 본인의 패를 슬쩍 보여주시며 객(客)인 나를 초대하셨다. 나는 잘 모르면서도 “흠-” 소리를 내며 고민을 했다. 정말 뭐 놓을 게 없나, 유심히 봤는데 나라고 뭐 별다른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날 ‘담에 오셔서 같이 루미큐브 해요.’라고 하셨다.
이 말을 듣고 일주일 동안 잠깐씩 생각을 했다. 좀 일찍 가서 말을 해야 하나?
“저…. 루미큐브 하러 왔는데요….”
이건 너무 쑥스러운데? 아무도 안 계시면 어떡하나? 아니, 오히려 아무도 없으면 나은 걸지도. 다른 일 보고 계시는데 저렇게 말하는 건 안 되지 않을까. 아니야, 안 되는 게 어디 있어. 차라리 당당하게 허리에 손 올리고 “루미큐브 하러 왔습니다!!”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아니다)
근데 이런 걸 고민하기 우습게도 그다음 회에 모임 시간에 밭게 도착해버렸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루미큐브와 루미큐브를 하는 사람들이 무사에 있는 것이다. 잠깐 구경하다가 같이 한 게임했다. 게임에서는 패자였지만 마음은 무사해졌다. 같이 하는 게임도 재밌고, 고민도 끝났고, 너무 행복하잖아. 어떤 날은 샌드위치를 먹고 가기도 하고 연남동에 굳이 줄을 서서 솥밥을 먹기도 했다. 아쉽게도 다 맛은 그저 그랬다. 푹한 날은 한 바퀴 걷다 들어간 적도 있다. 6년 정도 이 근방에서 살았고 여기서 무수히 많은 사람과 만났다 헤어졌기 때문에 감상에 젖었다. 각자에게 다 다른 서교동일 테고 오늘의 난 책방무사 서점에 왔다.
Image: Photo by Abel Y Costa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