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마무리하는 순간, 어디에 있으면 좋겠어요? 평일 점심에 순두부찌개를 먹다 말고 왜 이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팀원들은 꽤나 진지했다. 아직 여행해 보지 않은 미국으로 떠나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며 죽음을 맞고 싶단 친구가 있는 한편, 오랜 시간 지내온 집에 머물며 가족의 품 안에서 눈을 감고 싶단 이도 있었다. 다른 누구는 호쾌한 캐릭터에 걸맞게 몽골의 대자연 속에서 노을을 보며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한 점 남은 계란말이를 해치우며 시간을 벌었지만 또렷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식당을 나선 나. 그때 문득 포르투에서 나눴던 어느 대화가 떠올랐다.
포르투에서의 마지막 밤, 나는 'Hot Five'라는 재즈 클럽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일전에 포르투를 다녀와 본 회사 동기가 가장 좋았던 장소라며 추천해준 곳이었다. 매일 밤 각기 다른 밴드가 라이브 공연을 올린다던데, 평일이어서인지 아주 붐비진 않았다. 그리 크지 않은 장내를 체리색 목재 골격이 지탱하고 있었고, 나무 계단 아래 자리한 무대 역시 피아노, 더블베이스, 드럼, 약간의 음향 장비가 올라선 것만으로 꽉 찰 만큼 작았다. 무대 바로 앞 공간에는 영화 <라라랜드>의 마지막 장면에 나온 것과 같은, 편안한 의자와 테이블로 이뤄진 2인용 예약석이 몇 세트 있었다. 예약석은 제법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 이미 꽉 차 있었다. 입구 근처에는 작은 스탠딩 테이블 두어 개와 바(Bar)가 있었다. 무대와의 거리는 예약석과 비슷하지만 목재 구조물에 시야가 조금 막히는 게 차이 같았다. 나는 즉흥적으로 찾아간 것치곤 바에서 꽤 좋은 자리를 차지해 앉았다. 술을 한 잔 주문하고 무대를 감상했다. 연주를 리드하는 더블베이시스트는 산타 할아버지를 닮은 푸근한 인상. 중간중간 그보다 젊고 예민해 보이는 피아니스트와 드러머가 솔로로 치고 나왔다. "Take the A Train" 같은 유명 넘버부터 새해의 여흥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선곡들이 번갈아 흘렀다. 적당히 좋은 연주, 너무 격식있거나 팬시하지 않게 적당히 편안한 분위기를 흠뻑 즐겼다. 적당히 노곤한 상태로.
몇 십 분 간의 연주가 멎고 잠시 쉬는 시간. 장내는 술을 더 주문하려는 사람, 화장실을 가려는 사람, 담배를 피러 나가는 사람, 공연에 대한 감상을 나누려는 사람들로 금세 시끌시끌해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유형. 바로 혼자 온 여행객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디서 왔어요?" 핀란드였나 노르웨이였나, 아무튼 북유럽 어느 나라에서 왔다던 키도 체구도 큰 한 남자가 내게 물었다. 내가 앉아있던 자리 근처에서 공연을 본 모양이었다. 한국에서 여행 왔어요, 라고 답하자 "혼자 왔어요? 내가 한 잔 살게요."라며 본격적으로 말문을 열었다. 아, 여기까지 읽고 로맨틱한 그림을 떠올렸다면 거둬주시길. 상대는 백발의 젠틀한 어르신이었다. 나는 예의바르게 맥주를 받아들었고, 건배를 나눈 뒤 대화를 이어나갔다. 여행을 왔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머물러 살 생각으로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반려견과 오롯이 혼자 살아왔는데 생의 마지막은 자신이 가장 사랑할 수 있는 곳에 정착해 보내길 원한다고, 그래서 가장 적확한 곳을 찾기 위한 여행을 꽤 오래 했다고 하였다. 미국, 스페인 등등 여러 곳을 다니다 포르투에 왔는데, 이곳의 역사, 기후, 언어, 경관 등이 복합적으로 마음에 들어 완전히 매료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며칠 여행한 게 다였지만 쉬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내내 온화한 날씨에 영어도 잘 통하고, 도시를 관통하는 강은 마음까지 선명히 가로지른다. 좋은 선택인 것 같네요, 큰 결정을 내린 게 대단하다 말하니 그가 되받아친다.
“나는 모험심 강한(adventurous) 네가 더 대단한데?” ...Adventurous라니? 듣는 나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이곳까지 오는 데 용기보단 넉넉한 시간과 돈이 필요했을 뿐이고, 무엇보다 나는 스스로 용감하거나 모험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느냐 반문하니 그는 지극히 제1세계 백인 남성이 할 법한 말ㅡ젊은 아시안 여성이 혼자 열 시간을 날아와 어딜 가도 돋보이는 곳을 다니는 게 용감한 것 아니냐!ㅡ을 하였지만, 이미 중요한 질문의 공은 나 자신에게로 넘어왔다.
혼자인 상태로 무언가를 해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대담한 모험가로 불리울 수 있는 걸까? 홀로 여행을 다니고,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 독립된 생활을 꾸려오고, 일터에선 리더로서 수십 명을 상대하는 동안 많은 경우 꽤 용감하고 단호해 보였을지 모른다. 그치만 나는 나 자신의 내밀한 구석구석에는 좀체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내게 정말 알맞은 곳인지 자주 의구심이 든다. 세상에 오롯이 혼자인 것 같은 날들이 있다가도, 반대로 어떤 날엔 내가 외롭게 만들었던 사람들 모두를 연민한다. 파트너를 찾아 뿌리 내리는 삶을 꾸리는 사람도, 담대한 확신을 갖고 혼자 나아가는 삶을 택하는 사람도 모두 대단해 보인다. 나는 사실 모험이 아닌 방랑(wander)을 하고 있는 것뿐이라고요! 어디서 이렇게 외쳐야 파들파들 떨리는 내면을 들키지 않을까?(혹은 메아리로 퍼질까?) 북유럽 아저씨의 '좋아요'를 받은 2년 전 그 포르투였을까. 많은 생각을 안고 어제 막 돌아온 파리였을까. 글의 말미를 여태 미뤄 두었지만 또 한 번의 긴 여행 끝에서도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대신 그 재즈 클럽을 담아 두었던 핸드폰 사진첩을 다시 뒤적인다. 레퍼토리 중에 'Misty'가 있다. 밴드의 연주 영상이지만 무척 좋아하는 곡이라 노랫말이 곧장 떠오른다. 'On my own when I wander through this wonderland alone...' 혼자 세상을 헤매며 그 어떤 것도 분간하지 못하던 화자는 사랑에 빠지며 안개 속에서 길을 찾는다. 누군가에겐 반려견과 저녁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도시가 방랑에 마침표를 찍어준다. 나에게 방황을 진짜 모험으로 바꿔줄 무언가는 무엇일까. 결국은 다시 한 번 더 의문문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