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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팡세 Jun 21. 2020

나는 천사가 아니에요

프로듀서, 여성 창작자이자 여성 직장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렐루 서점(Livraria Lello). 포르투의 명소 하면 빠지지 않고 소개되는 곳 중 하나로,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외관의 모티브가 된 책방이라고 한다. 이름이나 설명만 듣자면 앤티크한 디자인에 호젓한 모습이 그려지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전 세계의 해리포터 팬들이 몰려든 탓에 서점은 인파로 가득하다. 5유로를 내고 입장권을 사야 하고,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만 들어갈 수 있다. 안에 들어서면 다들 영화 세트를 쏙 빼닮은 계단 앞에서 인증샷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꽤 괜찮게 구비해 둔 명작 소설 에디션이 뒷전인 게 안타까울 정도다. 나는 독서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머쓱하게 쌓인 책들이 짠해 책을 한 권 사기로 맘먹었다. 주제 사라마구나 페르난도 페소아 같은 포르투갈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기념품 삼아 사고 싶었는데 영문판은 모두 판매되고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다른 섹션들을 둘러보다 문득 한 책에 눈길이 갔다.


    짙은 버건디 색 표지에 몸을 쥐어짜듯 웅크려 있는 여인이 그려진 <Retold Rego>라는 책이었다. 슬쩍 살펴보니 포르투갈 출신의 여성 화가 Paula Rego의 작품에 영국 출신 남성 문인 Owen Lowery가 시를 붙여 엮어낸 작품이었다. 화가 에드워드 호퍼에 관해 비슷한 방식으로 쓰인 <빈 방의 빛>이란 작품을 예전에 재미있게 읽었고, 무엇보다 여성 아티스트가 영감의 원천이 된 데 흥미가 일어 이 책을 사 왔다. 그림이 많아서 더 좋았던 건 안 비밀.

    그리고 고백건대,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 글자도 읽지 않았다. 여행지에서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책이 겪는 기구한 운명이라 할 수 있겠다. 분명 찬찬히 살피고 맘에 들어 사 온 것인데 왜 일상으로 복귀하면 읽히지 않는 걸까. 이국적인 분위기에서 넉넉하게 시간을 들여 읽을 땐 서정적이던 문장도 퍽퍽한 하루 끝에 읽자니 영어 독해 지문마냥 진도가 안 나간다. 그야말로 여행의 기념품이자 테이블 위에 놓이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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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고 지내던 이 책을 다시 집어 든 건 ‘텔레그램 n번 방 사건’이 터지고 나서였다. 미성년 여성을 대상으로 조직적으로 그리고 대규모로 일어난 성착취 행태에 나는 충격을 받는 걸 넘어 분노가 일었다.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에게 요구한 행위는 무자비하게 비인륜적이고 변태적이어서, 그걸 원하는 욕망조차 조금도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짓밟고 괴롭힐 수 있나? 어떻게 그러고 싶지? 관련 뉴스를 공유하고 청원에 참여해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지지부진한 사건 해결에 인류애가 바스러져갈 때쯤, 문득 테이블에 놓여있던 이 책이 다시 눈에 띄었다. 책은 아무 죄가 없었지만 더 이상 여행지에서 모셔온 유산이 아닌 ‘신화 속 유물’처럼 보였다. 여성과 남성이 예술적인 영감을 건강하게 주고받는 일은 태고에 아주 먼 땅에서 일어났을 것만 같았다. 그치만 내 눈 앞에 있는 건 유물이 아닌 당대의 증거이지 않은가. 나는 희망을 발견하길 간절히 바라며 책을 펼쳤다.


    책에 실린 Rego의 그림들은 공통적으로 서사나 비유가 많이 담긴 듯 보였는데, 그 묘사가 썩 전형적이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예컨대, 독사과를 먹은 백설공주를 ‘픽 쓰러지는 가냘픈 미소녀’ 대신 고통에 몸부림치는 근육과 살덩이를 강조해 묘사하거나, 초경을 치르고 성숙한 여인이 되어 계모와 동등하게 대적할 수 있는 주체로 재해석한다. 신부를 소재로 삼은 작품 역시 '신랑 곁에서 희망에 부푼 여인'은 온데간데없고 텅 빈 눈빛으로 멍하니 화면 밖을 응시하는 사람만이 그려져 있다. Lowery는 이를 가리켜 “거울이나 강에 비친 반사만큼이나 아무 의미 없는 시선”, “햇빛에 일어나려는 건지 고꾸라진 건지도 모를 자세”라고 서술하였다. 그림의 소재나 기법을 주로 묘사한 그의 문장들은 작품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아주 날카롭거나 새롭진 않았다. 그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여성을 다부지고 능동적인 인간으로 그려낸 Rego의 그림들이었다.



(좌) <Snow White with her Stepmother> (우) <Bride>



    그중에서도 나의 시선을 가장 잡아 끈 건 <Angel>이라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 역시 '천사' 하면 떠오르는 선입관ㅡ새하얀 얼굴에 상냥한 미소, 여리한 몸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어린 소녀ㅡ을 철저히 배반한다. 대신 짙은 색 옷을 입고 한 손엔 칼을 든 채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여성을 캔버스에 담았다. 얼굴은 강인하지만 퉁명스러워 보이지 않고, 미소는 부드럽고 자신감 있지만 상냥하진 않다. Lowery가 묘사한 “견고한 뼈와 근육을 강조해주는 그림자”는 이 천사가 하늘 저 높이 동동 떠있는 요정이 아닌, 두 발을 붙이고 이 땅에 선 현실적인 무언가처럼 보이게끔 만들어준다. 일상에서 수 천 번씩 ‘천사다울 것’을 강요받아 온 여성들에게 이 그림은 곧장 든든한 위안이 된다.



<Angel>



‘프로듀서’라 하면 어쩐지 전문적이고 예술적이고 냉철하여 이런 틀로부터 자유로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PD는 본인이 기획하고 연출하여 콘텐츠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여느 아티스트들과 비슷하지만, 기본적으로 조직에 속한 직장인이기 때문에 제약이 많이 따른다. 내가 원하는 장르와 아이템을 좇기 이전에 채널의 정체성을 고려해야 하고, 사내 질서나 정치에 나 자신과 프로그램의 행방이 좌지우지되기도 한다. 창작자와 회사원 사이 어딘가에 애매하게 위치한 이 직군은 여성일 때 한 층위 더 복잡 미묘해진다. 여성 창작자와 여성 직장인이 각기 겪는 부조리함을 모두 맞닥뜨려야 한다. 처음 만나는 출연자에게 ‘피디님’보다 ‘작가님’으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고, 나의 업무 능력보다 젊은 싱글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먼저 평가의 도마에 오르곤 한다. (홍상수 영화 마냥 실제로 ‘천사 같으세요’란 말을 한 이도 있었다) 와중에 여성 PD란 이유로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요구받는다. 웃으면서~ 밝게~ 현장의 분위기를 이끌고, 모지리 스태프의 실수는 따뜻하게 눈감아 줄 것. 그러나 스튜디오 밖에서는 ‘여자라고 빼지 말고’ 호쾌하게 술을 잘 먹고 걸쭉한 농담을 맞받아칠 것. 물론 요즘은 언행을 주의하자는 분위기가 조금 더 형성되었고 본받고픈 어른도 더러 있지만, 지뢰는 여전히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나의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 그것을 결과물로 옮기기 위해, 실제의 나보다 호쾌하고 털털하게 웃는 낯짝으로 폭탄을 다루어야 한다는 건 영 부조리하고 지치는 일이다.


나는 천사가 아니에요. 그 누구도 천사일 수 없어요. 무지하여 무례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일갈하자니 기운이 아깝지만, 그들의 손아귀에 내 작업물의 퀄리티가 달려 있으니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다.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목소리를 내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만 할까? 다양한 매체에서 비슷한 고민을 진 여성 창작자들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걸 보면 든든한 기분이 들다가도 뉴스 메인을 채운 ‘집행유예’ ‘솜털 처벌’과 같은 글자엔 어쩔 수 없이 힘이 빠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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