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
"지이이잉"
핸드폰 진동이 한번 울린다. 진동이 울리는 횟수를 보고 어떤 알람인지 대략 가늠이 간다.
진동이 한 번 울리면 카톡, 광고성 메세지가 대부분이고 진동이 두 번 울리면 브런치, 인스타 DM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진동이 한번 울리면 핸드폰을 잘 확인하지 않는다. 급하면 전화가 오겠지 하는 심보다.
그런 내가 어제는 진동이 한 번 울리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했다. 당연히 광고성 메세지라고 생각했는데 예약해놓았던 책을 대출해가라는 도서관 메세지였다. 그제야 보름 전 책 제목이 마음에 들어 대출 예약신청을 해놓고 온 것이 기억이 났다.
오늘 시간이 되어 도서관에 들렀다. 대출만 해서 집에 올 생각이었는데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라는 표지에 적힌 제목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5시가 넘어가는 금요일 오후에 한산한 도서관의 분위기도 한 몫했다. 햇빛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책을 펼쳤다. 작가가 대화법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경험들로 책의 서두를 채운다.
책을 읽은 지 1시간은 되었을까. 책을 읽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마워"라는 저자의 동생의 말이 심금을 울렸다. 평소 하나뿐인 소중한 동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잔소리를 많이 해왔다는 저자는 어느 순간 동생이 자신을 피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비폭력 대화를 공부하며 공감하는 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동생의 이야기에 귀를 여니 처음으로 고맙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문제 해결을 원하는 것보단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알면서도 쉽게 되지 않는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이렇게 해야지!"라는 말이 먼저 나간다. 그 말속에 빈정거리려는 마음이 없다는 것도 안다. 진심으로 소중한 사람이 더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11년 전 갓 20살이 되었을 때 아빠가 내게 해주었던 말이 기억이 난다.
"00아, 사실 너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정말 많았는데 혀를 깨물면서 삼켜왔어. 너를 생각한다고 하는 말들이 되려 너에게 독이 되진 않을까 수 백번 생각하면서 말이야."
내 부모님은 어린 시절 나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들은 명확하게 지적해주었다).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게 느껴졌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데 독이 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에 말을 아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는 이야기들은 그랬구나 라며 오랜 시간 들어주셨다. 서른이 넘은 지금 그때 부모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짐작해보게 된다.
대화법을 기술적으로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심 어린 사랑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아빠의 태도에서 배운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만큼, 잘되길 바라는 만큼, 너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며 나아갈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이라는 걸 믿는 만큼 말을 아끼고 귀를 열어야 한다는 걸 다시 상기시켜본다.
책 속의 동생의 말로 글을 맺고 싶다.
"고마워, 공감하며 잘 들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