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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 Jun 28. 2023

장수할 운명

여름이 내 삶에 미치는 영향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감각은 아빠가 돌아가신 후 얻었다. 그전에는 ‘언제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한 50년 뒤?’라고 확신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아빠가 우리 중 첫 타자로 어나더 월드 Another world 입장한 후에 알게 된 거다. 그 ‘언제’라는 것이 실제로 지금 당장 또는 오늘 밤 또는 내일 아침일 수도 있다. 이 자각은 실로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시도 때도 없이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가 애니메이션 <소울>의 천국 문 열리듯이 규와앙- 열리고, 뭐라도 할라치면 <기묘한 이야기> 시즌4에 나오는 저승 괘종시계가 디용디용 울려 현생에 집중할 수 없었다. 자꾸만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근해서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마음속 진물이 눈물과 함께 터져 흘러서 견디기가 어려웠다. 시간이 아까워 죽을 것 같았다. (사인 : 아까워서) 초조했다. 안돼, 시간이 없어, 시간이 아까워, 이러고 살 수는 없어!


  변한 건 나뿐이 아니다. 준비성이 철저한 동생은 프로필 사진을 빙자한 영정을 찍기 시작했고, 매년 유서를 갱신 수정하고 있다. 엄마는 안 그래도 빠져있던 내세에 더 올인하기 시작했다. 현생이 리얼로다가 없는 한국 교회 신도 라이프. 나는 ‘그깟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냐! 가면 가는 거지!’ 하는 허무주의에 빠져있다가도 “근데, 자네들 잘 들어. 나아- 스스로 죽지는 않어. 그런 용기 있는 사람 아니다, 나-? 혹시 그렇게 되면 타살을 의심해 줘라! 수사를 계속 해 줘!!”같이 묘한 생의 의지를 꺼내 보이기도 하면서 오락가락 지내왔다. 우리 셋 중에 가장 큰 문제는 단연 내세만 사는 엄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는 용돈 주는 딸이 있기 때문에 솔직히 문제 될 것이 없다. 문제는 나다. 현생을 잠시 접은 탓에 수입이 끊겼고… 곧 죽을 것 같이 아련하게 눈 뜨고 살던 지난 5년… 우리 중 아무도 죽지 않았다. “Nobody died” 놀랍게도 나는 이제 조금씩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꽤 오래 살 수도 있다…?’ 입술을 앙다문다. 살짝 겁났어, 나. 


생각보다 오래 살 수도 있다.

?!

생각보다 오래 살 수도 있다니?!

그게 뭔- 소리야?! 


  모진 풍파를 단기간에 처맞는 바람에 30대 초반에 인생 다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게 기분뿐인 거다. 믿기지 않지만, 정말로 그게 기분.뿐인.것이다. 여기서 ‘인생 다 산 것 같은 기분’이란 인생에 더 바라는 것이 없는 마음으로, 주로 눈을 가재미처럼 뜨고, 책장에 책<사람이 싫다>만 사서 매일 한 권씩 꽂아 넣는 상태다. 그런데 더 살아야 한다니? 그것도 생각보다 오래일 수 있고? 나는 내 인생이 나한테 얼마나 더 악랄하게 굴려고 이러는 건지, 야속해서 눈물이 날 것 같다. 


  30대란 어떤 시기인가? 다 접고 은둔하기엔 금세 에너지가 끓고, 그렇다고 불태우기엔 화력이 달리는 시기다. 생의 에너지가 순식간에 떨어지길래 이대로 죽는 건 줄만 알았는데, 아니, 아니야. 그냥 그 상태 그대-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야…! 이건 마치… 스스로 들어갈 무덤 책임감 가지고 열심히 파서 이제 누울 일만 남았는데, 지면에서 날 부르는 상황.


  -저기, 이씨! 그만 나오래.

  -예?

  -그만 나오래. 아, 거, 자기 자리 아니랴~ 아직 아니여. 나와. 아, 나와아~

  -예?

  -…ㅎ

  -…ㅇ?

이제는 몸 사려가며 페이스 조절하여 지혜롭게 나 자신을 데리고 살아갈 방법을 익혀야 하는 것이다. 


  아니, 그런데 내가 살아서 더 볼 것이 뭐가 있을까? 더 살아봤자 기가 막히게 이상한 사람들만 더 보지 인생에 뭐 남은 게 있을까? 실제로 매년, 내가 상상도 못했던 괴랄한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에 이 예상이 어느 정도 증명되기까지 했다. 지나고 보면 이 사람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만큼 더 새롭고 신박한 도라이들이 등장한다는데, 그러면 도대체 인생을 왜 살아야 하는 것인지? 나이 드신 어른들이 “내가 이 꼴 보려고!” 하면서 오열하는 걸 드라마에서 좀 봤던 것 같은데 내가 바로 그 꼴이 되는 것 아닌가? 그보다도 잠깐만, 내가 이런 자각이 있는 인간이라면 적어도 5년에은 한 번씩 <도라이 레전드 시상식>을 열어서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뽑은 다음에 그 집으로 마늘하고 쑥, 그리고 오은영 선생님을 동봉해서 보내는 일이라도 해야, 이 각박한 세상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는 건 아닐까? 요약하자면 ‘살다가 살다가 보면 남는 건 치과 신경치료뿐 아닐까?’ 


‘아, 너무 깊이 파내려 와서 나가려면 사다리 타야되는데, 왜 나오라고 하지? 흙만 덮어주면 되는데….’ 


’내가 왜 나가야 돼? 무덤이 제일 편하지, 도대체 왜 아직 아니라는 건데!’ 


구덩이 벽면에 기대어 둔 사다리를 비척비척 타고 올라가 구멍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그 순간,  



와, 여기 여름이네.  




여름이네-  





좋다.       





20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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