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음악 : 디어클라우드 - lip
2019년의 일기 > 작가의 서랍에서 발굴
어쩌면 나는 내 생각보다 한참 더 어른이 되었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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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무언가를 끝내는 게 무섭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를 끝까지 보는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일단, 아직도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을 못 봤다. 분명 3월 즈음 보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은데, 거의 11개월이 흐른 지금도 준비가 안됐다. “사소한 것들의 사소함이 소중해서, 삶에 사소한 희망을 남겨야 해서.” 뭐 이게 나름의 이유였는데 사실 그냥 개 쫄보라서 그렇다. 사소한 희망마저 없을 때가 두려운 것도 맞지만, 그냥 난 작디작은 이별도 무서워하는 인간인 것이다.
빅뱅이론의 마지막 시즌은 12이다. 그리고 12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난 오늘에야 처음으로 12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즌 11을 틀었다. 뭔 개소리인가 싶겠지만 1번 : 지금까지는 12를 봐야겠다는 생각조차 안 했었고, 2번 : 정주행은 무조건 시즌 1부터 시작했었다. 그래야, 뭐랄까, 헤어지기 전에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을 테니까...(공항에서 이별하는 연인 아님) 아무튼 그래서 11의 몇 가지 에피를 보다가, 마지막 회를 보고 12로 넘어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생리통에 아무것도 못할 때 오빠가 밥도 시켜주고 약에 핫팩까지 사다 줘서 일수도 있고, 미칠 듯이 흔들리고 불안했던, 그 혼돈에 빠져 이대로 죽겠구나 싶던 어제가 어쨌든 끝이 나서 오늘을 마주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네가 없어도 올곧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서 네가 없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은 게 겨우 이거여서 일수도 있다.
그런데 뭐... 나는 또 실패했다. 시즌 11의 마지막화를 반도 보지 못하고 꺼버렸다. 사실 놀랍지도 않았다. 내게는 시즌 12의 1화를 트는 것이, 시즌 11의 마지막화를 꺼버리는 것보다 7000배는 놀라운 일이니까. 적어놓고 보니 참 우습다. 돌이켜 보면 프렌즈 시즌 10을 보는 데에는 1년이 걸렸었다. 난 겨우 드라마와 ‘이별’하는 데에도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인간인 것이다. 아 이별이란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드라마의 시즌이 끝난다 해서 드라마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도, 드라마를 다시는 볼 수 없는 것도 아닌데 난 이게 왜 이다지도 이별 같을까?
이별에 대해 생각하며 만남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둘은... 유사한 것들의 항상적 결부니까... 아... 여기서 서양철학이...? 각설하고... 내게 드라마를 시작하는 것은, 정말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새로운 인연을 시작하는 일에 비유해도 되겠다. 나는 헤어짐이 무서워서 만남을 시작하지 않는 인간인데, 만남을 시작한다는 것은, 암튼 진짜 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만남 내내 두려워할 것이다. “아, 벌써 시즌 10까지 봐버렸어.” 하면서. 이때, 드라마와 나는 “break”를 가질 수 있다. 사람이랑은 이때 쉬어버리면 그냥 끝나버리지만ㅋㅋ. 하지만 Break 동안에도 구글의 미친 알고리즘은 날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야, 보던 거 마저 봐야지! 야, 네가 좋아하는 콘텐츠와 유사한 것들이야! 야, 너 이 배우 좋아하지 않니? 여기 이 배우의 필모를 추천해줄게!” 그래서 아 이게 이별이 아니라 휴식기구나 인정하고, 언젠가 다시 찾아가야 한다는 의무감에 휩싸이게 된다. 이 의무감이 생기면 자동으로 회피하게 된다. 나라는 인간이 그렇다. 그래서 드라마와 나는 좀 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끝을 내야겠다는 용기가 들면, 리모컨을 잡고, 그 전 시즌을 누르는 것이다. 허무하기 짝이 없다.
쉽게 만남을 시작하는 사람이었다면 달랐을까. 만남조차 어려워하는 내가 이별을 잘 할리가 없다는 거 알지만 가끔 답답하기도 하다. 내게 있어서 만남은 그 무언가의( 드라마일 수도, 영화일 수도, 음악일 수도, 동물일 수도, 사람일 수도 있는) 삶을 엿보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이지 희박한 확률울 뚫고 그 만남이 전개되면, 그 무언가의 삶은 내 삶을 뒤흔들 것이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어, 그만큼 그 만남의 미래가 기대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대의 삶이 뒤흔들 내 삶이 지독히도 기다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기대에 압도당해 다른 무서움은 잠깐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니, 이별이 무서운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게 설령 드라마의 완결일지라도 말이다.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것이 난 미친 듯이 비참한 것이다. 드라마를 끝까지 봐도 기억은 남는다. 다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다음은 없다. 내게 그 드라마가 전해줄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나는 그게 무서운 것이다. 아 그러니까, 네가 사라져도 너의 기억은 남을 것이다. 너의 흔적은 영원히 나를 사로잡고, 때때로 위로를 건네고 나를 일으켜 줄 것이다. 그렇지만 네가 없는 우리의 미래는 없다. 숨 막히게 비참하다.
절대로 이별하고 싶지 않던 것들이 날 떠났다. 강아지라는 이름으로 내 삶에 존재했던 너희를 생각하면, 존재했던 이라고 타자를 친 이 손가락을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비참하다. 너희와의 이별 전에도 나를 죽도록 힘들게 한 이별이 있었지만... 이번엔 내가 너무 무력했다. 그래서 더 이별이 무서워졌다. 절대 놓치지 않고 싶고, 그 욕망이 이별의 원인이 될까 무섭다. 너의 입으로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언을 들어도 무섭다. 나는 그런 인간이다. 그래서 내 손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넷플릭스 드라마 같은 것들에 집착하나 보다. 시작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니, 참 극적이기도 하다. 야 빅뱅이론, 너와의 이별만큼은 내가 조절할 수 있다. 이 추잡한 생각으로 나는 오늘도 너와의 이별을 미뤘다. 네가 뭐라고 이런 글까지 썼다. 대체 빅뱅이론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