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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스타 Jan 07. 2021

메달 색이 뭐가 중요해

배경음악 : 9와 숫자들 - 실버라인


 “미치광이 완벽주의자.” B급 소설의 등장인물이나 가질 것 같은 설정이지만 내가 그랬다. 나는 뭐든 완벽하지 않으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굴었다. 그렇게 끊임 없이 1등만을 바라보며 나 자신을 학대했다. 그러다 누군가를 만났다. 그 사랑은 금메달이었다. 너는 평생 은메달만 목에 걸 수 있을거라 생각한 내 인생에 불쑥 떨어진 금메달이었다.


 그가 금메달이었던 것은 그가 곧 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메달 색에 상관 없이 과정을 즐기는 인간이 못됐다. 은메달에 만족하기 보다는 왜 금메달이 아닌가 좌절하는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은메달에 만족하고 싶었다. 아니, 예선에서 탈락해도 웃을 수 있는 인간이고 싶었다. 아니 사실, 대체 무엇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냐고 화내고 싶었다. 하지만 어리고 흔들리는 나는 거기까지는 못하고 있다. 지금도 너를 금메달에 비유하고 있지 않나.


 언젠가 은메달을 딴 선수보다 동메달을 딴 선수가 더 행복하다는 연구결과를 봤다. 은메달을 딴 선수는 눈 앞에서 금메달을 놓쳤기에 상대적으로 불행하고, 동메달을 딴 선수는 수상에 실패할 수도 있었는데 3등이라도 했다는 기쁨에 취한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더 어릴 때, 그러니까 엄마가 내 옷을 골라주던 시절에는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1등할수도 있었는데 당연히 은메달을 딴 선수는 불행하겠지. 4등할수도 있었는데 당연히 동메달 선수는 행복하겠지. 이 모든 판단들은 행복의 기준을 자기 안에 두지 않는다. 세상의 기준을 근거로 두고 상대적인 평가만을 행한다. 상대와 나를 비교하고,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고, 지금의 나와 미래를 비교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해서는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다.


 금메달은, 그러니까 완벽은 행복의 충분조건이 아니다. 내 밖에서 행복을 찾고 완벽만을 추구한다면 끝없는 불행의 굴레에 빠질 수 밖에 없다. 대학에만 가면 행복해질거라던 어른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던 아이들의 행복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조금만 기다리면 행복해진다는 말만 믿다가 삶이 끝나버리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단지 내가 흔들리는 청춘이라서 일까.


 어른들 말을 듣고 온 길이 너무 평범하고 무료해서 미칠 것 같던 순간들이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비로소하며 내 인생을 번쩍 빛나게 할 순간이 오리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비로소’하고 기다리는 것들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의 모든 순간들이 내가 그토록 고대한, 비로소 찾아온 순간들일지도 모른다. 모든 순간은 이미 완성되어있다. 지금 나의 모든 순간은 그 자체로 이미 완성이다. 결핍되고 서툴러도 그 자체로 존재하니까. 완성을 위해 완전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에게 금메달을 걸어주기 보다는 진한 포옹을 주려고 한다. 상원아, 우리 손을 꼭 잡고, 금메달 수상자보다 행복한 예선 탈락자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러가보자.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찬란하게 꾸며보자. 너는 너를 위해서, 나는 나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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