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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공책 Jan 16. 2021

이 끝이 너라면

배경음악 : 이원석 - 큐사인

2020년의 일기


 언젠가 네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지배문화가 제시하는 낭만적 사랑의 문화적 각본, 난 그게 너무 싫다고. 그래서 네가 나의 남자 친구가 아닌 것도 괜찮다고. 우리 사이를 굳이 연인으로 호명하는 작업 따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 얘기를 하던 내가 겁에 질려있었다는 걸 깨달은 건 얼마 전의 일이다.


 쏟아지는 내 말들을 넌 다 듣는다. 경청하고, 곱씹고, 해석하고, 덧붙인다. 그런 너를 사랑한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겁에 질린 나는 네가 내 입을 막아주길 바랐다. 내 입에서 쏟아지고 있는 말들을 내 힘으로 막기에는 난 너무 무력해서, 그래서 네가 그냥 닥치라고 소리지르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닥치고 자. 닥치고 밥이나 먹어. 닥치고 불이나 붙여. 문득 문득 그런 말을 원했다. 네가 할리가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 원한 건지도 모르겠다.

 너는 절대 내 말을 멈추지 않는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밴드를 네가 제일 싫어하는 밴드에 일부로 비교해도 너는 내 입을 막지 않는다. 내 입을 막아달라고 애원하듯 외치는 말에도 너는 웃으며, 내 눈을 맞추며, 내 말을 듣는다. 하물며 너는 전화 한번 먼저 끊은 적이 없다. 우리에게 육하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가 지키는 원칙은 “누구와” 하나뿐이었다. 내가 언제 어디서 무슨 말을 어떻게 왜 하든, 넌 듣는다. 단지 내가 하는 말이라서, 정말이지 그게 다였다. 귀가 잘려나갈 것 같은 추위에 마땅한 곳이 없어 자리한 벤치에서도, 네가 떠나야 하는 시간보다 30분이 늦은 나의 집 앞에서도 너는 나를 들었다. 영업이 끝난 식당의 와이파이 한 칸에 의지해서 해야 하는 보이스톡에서도, 나는 밤을 너는 낮을 보내고 있을 때에도 너는 나를 들었다. 너는 영국에서도, 제주에서도, 서울에서도, 항상 같은 곳에 있는 듯이 나를 들었다. 나는 이걸 이제야 알았다.

 어느덧 너를 안 지 6년이 지났다. 그 시간들을 난 종종 잊고는 했다. 솔직히 그 6년간 너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았다. 나는 수능을 두 번 봐야 했고, 나를 학대하는 연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그 시간들로부터 밀려오는 후회와 무력했던 나에 대한 분노와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너는 대체로 6순위 정도에 있었던 것 같다. 수치화해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닐 테지만, 6등이라는 말이 너무도 정확한 것 같아서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넌 이 모든 순위가 무색한 인간이었다. 내가 너를 6등으로 대할 때에도, 19등으로 대할 때에도, 0등으로 대할 때에도 너는 네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묵묵히 6년을 내 옆에 있었다. 나는 이것도 이제야 알았다.

 너와의 6년은 참으로 이상했다. 우리는 미칠 듯이 가깝다가도 서로가 없는 듯 살았다. 나는 절대 네게 먼저 전화하지 않았다. 너는 그걸 나보다 잘 알고 있었다. 2019년, 홍콩에서 마카오로 가던 날 밤 네가 꿈에 나왔었다. 이후의 여행 동안 난 너만을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마카오는 온통 너다. 그 과정에서도 난 네게 전화하지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른다. 구태여 말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왜 네게 전화하지 않았을까.

 시간이 한참 지나 난 네게 먼저 전화하는 것이 무섭다고 고백했다. 넌 태연히 알고 있었다고 답했다. 너는 네 책임이 아닌 일에 죄책감을 느끼는 단계는 지난 인간이기에 그 고백에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에 되려 편안했다. 넌 그냥 전화하라고 했다. 안 받으면 70통씩 하라고 했다. 그래도 자기는 받고 싶으면 받고 받기 싫으면 안 받을 인간이니까, 맘대로 하라고 했다. 나는 너의 모든 말이 진심인걸 너무 잘 알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고 너는 덧붙였다. “나는 떠나지 않아.” 그 말에 모든 게 확실해졌다.

 나는 지독한 겁쟁이었다. 네가 떠날까 무서워 고작 전화 한 통 먼저 하지 못하는 인간이었다. 잃는 아픔이 너무 익숙해서, 잃고 싶지 않은 것을 아예 만들지 않는 인간이었다. 내가 지켜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죄책감에 굴복한 지 오래였다. 그런 나에게 너는 내가 지켜낸 것의 증거로 너를 쓰라고 했다. “나는 떠나지 않을 테니까.” 너의 그 말이 나를 지금까지 살게 했다.


 나는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언가가 내 결핍을 채워줄 것이라 믿고 그것을 찾아 헤맸다. 무엇이 나를 채울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오히려 결핍을 키우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그때 네가 덧붙인 것이다. 너는 떠나지 않는다고. 그때 번쩍 깨닫게 되었다. 떠나지 않는다는 말, 그게 내가 평생 찾아 헤맨 무언가라는 것을. 나도 모르던 나의 목적지를 너는 어떻게 알았을까. 어떻게 알아서 그 말을 수십 번씩 반복해줬을까. 그래서, 언젠가 우리 사이가 무섭고 괴상해서 울던 날 밤 네가 웃으면서 “우리는 소울메이트”라고 말했을 때, 난 따라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너와의 6년이 너로 가득하지는 않았다. 너는 나를 듬뿍하게 하지만 결코 잠식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너로 가득하고 싶어 질 때가 있지만. 너와의 앞으로도 너로 가득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그런 인간이니까. 너는 내가 변한다고 해서 변하는 인간이 아니니까. 이건 너의 앞으로도 나로 가득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게 슬프거나 하지는 않다. 나는 너의 전부가 내가 아닌 것에 슬퍼하던 아이에서 벗어났다.


 우리의 관계가 끝없이 깊어지던 어느 날 문득 결심했다. 너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정말 굳이? 싶은 일이지만 해야만 했다. 난 혼자 살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그저 행복하기 위해 네 손을 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네 손을 붙잡고 버티는 게 아니라. 그렇게 갑자기 단절을 선언한 내게 너는 그저 그러라고 했다. 웃으며 잘 놀다 오라고 했다. 너의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사랑이 가만히 있어도 내 눈에 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난 비로소, 신뢰와 사랑이 말하지 않아도 상관없을 정도로 견고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날은 네가 없는 게 당연한 것처럼 아무 문제없다가도 문득 네가 없는 걸 견딜 수 없는 날이 올 테지만. 네가 없다는 것도 잠깐 잊고 바쁘게 흘러 보내는 날들 속에 문득 떠오르는 너의 눈동자에 무참히 압도당하는 날도 있겠지만. 애써 안녕을 말했다.

 그렇게 너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나서 문득 깨달았다. 너로 가득하지는 않았다고 믿었던 내 삶에, 네가 없는 부분은 없었다. 어느 회색 맨투맨은 너의 졸업 선물이었고, 어느 핸드폰 케이스는 네가 내게 처음 사준 생일 선물이었다. 어느 니트와 어느 잠바는 네가 재수생이던 내게 갑자기 보내준 돈으로 샀던 무언가였고, 책장에 꽂혀있는 어느 책은 너 때문에 산 책이었다. 내 재생목록에 오래 머무는 노래 대부분은 너와 공유하던 노래였고, 내 나름의 사상이라고 세운 것들의 대부분은 너와의 대화를 통해 나온 것이었다. 너만 없을 뿐, 너의 흔적은 내 모든 곳에 있었다.

 잘 있어, 하고 너의 차에서 내린 후 나는 엉엉 울었다. 아이처럼 울며 하염없이 걸었다. 너랑 있을 때는 눈물이 안 났는데 너를 보내고 나니 눈물이 났다. 그렇게 추하게 엉엉 울며 동네를 걷자 마법처럼 담담해졌다. 너는 떠나지 않는다. 그걸 너무 잘 알고 있다. 내가 변화하는 시간 동안 너는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네가 아닌 사람의 손을 잡다가 와도 너는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럴 것이라는 신뢰와 확신이 우리에게는 있다. 네가 입학 선물로 준 기타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끝이 너라면, 난 힘들어도 웃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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