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우성 Nov 20. 2023

BISCIT과의 인터뷰 #2

20년 차 브랜딩 디렉터의 철학 

지난 8월 브랜드 에이전시 BAT에서 운영하는 채널인 BISCIT과 2회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는 문서 뿐 아니라 팟캐스트와 스포티파이로도 릴리즈 되었는데요. 그것의 두번째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브런치에 공유합니다. 전문 내용 및 오디오로 듣기를 원하시는 분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브랜딩 디렉터의 ‘일’


BISCIT

지난 시간에는 전우성 브랜딩 디렉터의 커리어를 만든 선택을 들어봤는데요. 지나온 조직과 구체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우성님이 어떤 사람인지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한 명의 일하는 사람이자 브랜딩 디렉터로서 우성님이 어떤 철학과 관점을 갖고 계신지, 앞으로 어떤 계획을 하고 계시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우성님. 먼저, 기본적인 이해를 위해 여쭤볼게요. 브랜딩 디렉터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우성

브랜딩에 대한 정의로 브랜딩 디렉터가 하는 일을 설명해 볼게요. ‘브랜딩은 남과 다른 나만의 가치를 만드는 행위’, ‘브랜딩 디렉터는 이것을 총괄하는 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풀어 말하면, 남들과 다른 우리만의 가치가 무엇인지 찾고, 정의하고, 그것을 어떻게 경쟁사들과 다르게 고객에게 전달할지 고민하며 기획 및 실행하는 일이죠. 내가 속한 브랜드를 알리고 다른 경쟁사와 차별화된 모습으로 사람들이 이 브랜드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게 만드는 역할이랄까요. 이 모든 것이 브랜딩 디렉터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BISCIT

그만큼 브랜딩 디렉터는 브랜드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비슷한 직함으로 계셨지만 조직마다 했던 일은 조금씩 달랐을 것 같아요. 당면한 과제와 해결 방식도 달랐을 테고요. 담당한 브랜드별로 차이점과 공통점이 궁금해요.


우성

가장 큰 차이점은 브랜드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달랐죠. 네이버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통합 서비스이고, 29CM는 말 그대로 온라인 편집숍, 스타일쉐어는 1020 여성을 중심으로 한 스타일 커뮤니티, 라운즈는 아이웨어 커머스이니까요. 물론 당면한 과제도 조금씩 다르긴 했는데 네이버를 제외하고, 지향점은 비슷했습니다. 29CM의 경우 5년 정도 있으면서 팬층을 두텁게 만들었다면, 스타일쉐어와 라운즈에서는 2년~2년 반 정도 재직하면서 브랜드 정체성을 더 뾰족하고 날카롭게 만들거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했죠. 공통적으로 우리 브랜드를 남들과 다른 개성 있는 브랜드로 만들고, 브랜드 인지도를 올리는 것을 넘어 팬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실행하는 일을 했어요.


BISCIT

해당 브랜드의 현 스텝을 파악하고 적절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했겠네요. 브랜딩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을까요? 업계의 많은 분들도 고민하실 것 같은데, 대다수의 브랜딩 프로젝트 특성상 정량적인 지표로만 평가하기가 어렵잖아요.


우성

저도 예전에 이 부분에 고민이 많았어요. 사실 학계에서 정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브랜딩 지표를 무엇으로 설정해야 할지 혼란스러웠죠. 굉장히 많은 지표가 있지만, 지금의 제 결론은 명확한 우리만의 방향을 설정하고 그것에 맞게 브랜딩을 진행했는가 아닌가가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량적인 지표는 그것에 따라 오는 과정이라고 보는 편이 좋아요. 우리가 정의한 브랜드의 모습과 개성을 중심에 두고 이에 맞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성공, 그렇지 못하면 실패라고 봐야죠. 이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정량적 지표가 아무리 좋아도 성공이라고 보기 어려워요. 정량적 결과를 목표로 두면 방향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면 우리만의 일관된 메시지를 줄 수 없고, 넓게 보면 브랜딩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죠.


예전에 29CM에서 진행했던 ‘29 애니멀스 캠페인’이 좋은 예시가 될 것 같은데요. 당시 5월의 생물종 다양성 보존의 날을 맞아 무언가 기획하고 싶었는데, 예산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직원들에게 29CM에서 판매하는 패션 아이템을 착용하고 모델처럼 촬영한 다음, 멸종 위기 동물 29마리의 머리를 합성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어요. 멸종 위기 동물들을 조명하면서 브랜드도 알리는 캠페인이었죠. 대중의 반응이 나쁘진 않았지만, 사실 굉장히 드라마틱한 수치가 나오지도 않았어요. 그럼 이 프로젝트가 실패일까요? 저는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29CM다운, 개성 있는 모습으로 남들이 하지 않는 방식의 프로젝트를 했잖아요. ‘온라인 편집숍’이라는 업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굉장히 세련되고 재미있게 보여준 사례죠. 실제로 프로젝트 진행 당시에는 대단한 바이럴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7~8년 뒤 이 프로젝트가 트위터에서 갑자기 엄청나게 바이럴 됐습니다. 브랜드다운, 개성 있는 프로젝트였기에 뒤늦게라도 누군가 이걸 발견하고, 조명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정량적인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가 정의한 우리만의 가치를 남들과 다르게 전달했느냐 다시 말해, 명확한 브랜딩 방향을 설정하고 그것을 잘 지켰느냐가 브랜딩의 성공 여부를 판단한다고 생각합니다.


29 애니멀스 캠페인 이미지 중 일부


BISCIT

사례를 들으니 확 이해돼요. 정리하면, 정량적인 수치에 매몰되지 말고 브랜딩의 성공 기준을 처음 팀이 설정한 방향에 두어야 한다는 거네요.


우성

네. 우리 브랜드의 방향, 보여주고 싶은 모습, 우리 브랜드의 개성. 그걸 지키며 완성도 있게 무언가 했다면 그건 성공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한 번에 되지 않거든요. 저는 브랜딩을 배와 물에 자주 비유하는데요. 핵심은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거예요. 고객들이 우리 브랜드를 좋아하게 만들려면 꾸준히 무언가 하는 게 중요한데, 수치적인 목표만 좇으면 꾸준히 할 수 없어요. 우리가 꾸준히, 제대로 잘했느냐가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지표가 되어야 해요.


BISCIT

굉장히 공감합니다. 브랜딩을 업으로 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모두가 이렇게 생각하진 않을 것 같아요. 브랜딩 과정에서 생각이 다른 내부 구성원을 설득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요?


우성

특별한 방법이 있다기보다 구성원들에게 좋은 모습을 계속 보여줘야 해요. 마케팅, 디자인, 개발 등 직무와 상관없이 우리 브랜드가 사람들 입에서 좋게 오르내리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생각해 보세요. 주위에서 ‘요즘 너희 브랜드 되게 멋진 거 하더라. 네가 다니는 회사 맞지?’라고 묻는다면 누가 싫어할까요? 그런 의미로 매체에서 인터뷰하는 것도 매우 좋죠. 또 브랜딩에 집중하는 과정이 세일즈에 역행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계속 좋은 결과를 보여줘야 합니다. 결과의 예시는 앱 다운로드 수, 접속자 수, 검색 수, 뷰 수, 심지어 인스타그램 좋아요 수가 될 수도 있어요. 이런 결과들이 모이면 모든 구성원이 브랜딩을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브랜딩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시기도 하고요. 그래서 브랜딩 디렉터는 우리 브랜드가 나아갈 방향을 구성원들에게 제시하고 변화 과정을 계속 어필해야 합니다. 구성원들에게 믿음을 주는 방법은 결과로 보여주는 것밖에 없어요. 단, 세일즈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요.


BISCIT

말씀해 주신 내용을 들으니 인터널 브랜딩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브랜딩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내부 구성원들을 교육하고 설득하는 인터널 브랜딩도 고민하는 경우가 많을 텐데요.


우성

저는 익스터널 브랜딩과 인터널 브랜딩을 굳이 분리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편이에요. 외부에서 예를 들어, 내 친구가 우리 브랜드를 좋아하면 나도 우리 브랜드가 더 좋아지게 되거든요. 결국 직원들까지 우리 브랜드를 좋아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BISCIT

좋은 외부 반응이 내부 구성원 설득에도 도움이 된다는 뜻이군요. 여러모로 브랜딩을 꾸준히, 개성 있게 진행하는 게 중요하겠네요. 그래도 무언가 기획할 때 브랜딩 관점이랑 비즈니스 관점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을 것 같아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우성

사실 브랜딩은 비즈니스를 성공시키기 위해 존재합니다. 브랜딩 목적이 세일즈는 아니지만 그 결과가 세일즈로 나와야 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브랜딩 디렉터는 비즈니스 방향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안에서 브랜딩 방향과 방법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비즈니스가 우선인 게 맞아요. 물론 진행 과정에서 의견이 다를 순 있지만, 브랜딩이 비즈니스에 역행하는 방향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즈니스를 구상하는 과정에 브랜딩 디렉터가 크게 관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브랜드를 어떻게 차별화되게 만들고 알릴지, 어떻게 우리다운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어필할지 계속 고민해야 하고요.


운이 좋게도 저는 지금까지 일해 온 조직에서 큰 의견 차이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 의견을 많이 존중해 주셨어요. 다들 브랜딩이 필요하기 때문에 저를 불러주셨고, 그만큼의 권한을 주신 거죠. 제가 업무 환경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 대표님이 브랜딩에 대한 장기적인 투자의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두 번째, 브랜딩에 관해 권한과 책임을 많이 주시고 서포트해 주셔야 한다. 세 번째, 브랜딩 디렉터는 대표님과 합이 잘 맞아야 한다. 만약 어느 브랜드에 소속되어 브랜딩 관련 업무를 하는데 대표님과 합이 맞지 않고 방향성이 계속 달라서 설득에 너무 많은 에너지가 든다면, 저는 이직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씀드려요. 그게 커리어적으로 훨씬 좋은 선택이죠.


BISCIT

굉장히 현실적인 조언이라 마음에 더 와닿아요. 무엇보다 브랜딩을 위해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대표님과 준비된 환경이 중요하다는 점에서요. 그렇다면, 같은 업무를 하는 동료들은 어떻게 설득하고 리드하시는지 궁금해요. 다른 소속 멤버를 설득하는 것과 또 다를 것 같아서요.


우성

사실 전 세심하게 케어하고 고민을 들어주는 리더는 아니에요. 하지만 팀원들의 열정을 끌어올리려면 같은 목표를 바라보게 하는 것이 중요하죠. 저는 브랜딩을 함께해야 하는 동료들을 이렇게 설득했어요. “멋진 브랜딩 프로젝트를 많이 만들어서 우리 이력서에 좋은 레퍼런스를 만들자”고요. 영원한 직장은 없잖아요. 팀원들은 브랜딩으로 성장해야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내가 앞장서서 당신의 이력서에 멋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죠. 이게 그들에게 가장 큰 원동력이 되어준 것 같습니다.


BISCIT

우와, 그 어떤 말보다 확실한 동기부여가 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요즘 시대에 잘 맞는 리더십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대화를 나눌 수록 우성님은 꽤나 하드워커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사실 브랜딩은 보람차면서도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우성님이 오랫동안 커리어를 치열하게 쌓아올 수 있었던 동력이 궁금해졌어요.


우성

성취감이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제가 진행한 프로젝트가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화자 될 때 큰 성취감을 느껴요.누군가 제가 진행한 프로젝트에 대해 포스팅을 올리거나 분석한 리뷰를 올려주면, 수치적 성장보다 더 큰 매력을 느낍니다. 이런 성취감은 저에게 약간 마약 같아요. (웃음) 그 성취감을 끊임없이 느끼고 싶어서 다음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것일 수도 있어요. 열심히 기획하고 만든 결과물이 좋은 반응을 얻을 때 정말 큰 희열을 느낍니다.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고 싶은 일종의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근데 부작용도 있어요. 공백 시간이 힘들다는 점에서요.


BISCIT

마약 같은 성취감. 왠지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아요. 큰 도전을 해내면 정말 큰 도파민이 오잖아요. 하지만 엄청난 보람을 주는 일은 반드시 부담과 스트레스를 동반할 텐데요. 우성님은 일하면서 어떨 때 스트레스를 받으시는지 궁금해요.


우성

차별화된 좋은 기획을 뽑아내야 할 때 스트레스 받는 것 같아요. 저는 끊임없이 어디서든 생각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종류의 스트레스는 만족스러운 기획물을 뽑아내면 해소돼요. 이외에 무언가 잘 안 풀릴 때도 스트레스를 받죠. 근데 누구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무언가 기획하거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반응이 안 나올 때 스트레스를 받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BISCIT

정말 우성님은 일로 성취와 보람을 얻고, 스트레스도 일로 해소하는 타입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에너지를 일에 쏟으면 번아웃도 올 것 같은데요. 우성님도 경험하신 적 있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우성

맞아요. 일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는 편이죠. 진짜 번아웃이 왔을 때는 쉬면서 병원도 다니고, 전문가의 처방을 적극적으로 따랐어요. 무엇보다 여행하며 다시 한번 자양분을 많이 얻었습니다. 기획자라면 이런 완급 조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혹시 저와 비슷한 분들도 휴식이 필요할 때는 쉬면서 소스를 비축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좋은 기획은 절대 사무실에서 나오지 않거든요.




첫번째 인터뷰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