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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Nov 02. 2022

어떤 말은 의도보다 듣는 이의 마음이 중요하니까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어릴 때부터 나는 눈물이 많았다. 슬플 때는 물론 감동받아서 우는 일도 흔하고 기뻐서 우는 일도 잦았다.

28살, 껌뻑하면 울던 내가 눈물이 줄었다고 느꼈다. 한 달 전 친구에게 이런 말도 했다. “나 이제 좀 컸나 봐. 요즘엔 잘 안 울어”


이만큼 컸음에도 어김없이 날 울게 하는 소재가 있는데, 바로 강아지의 죽음이다. 이것 때문에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을 읽다가 눈물을 훔쳤다. 승조, 승국의 강아지 테이가 죽는 장면에서 참던 눈물이 마스크 아래로 흘렀다.


테이가 죽는 대목을 읽기 두 시간 전, 지인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우리 집 개 꾸꾸 얘기가 나왔다. 지인들은 자연스럽게 개의 나이를 물었다. 그 뒤에 나오는 말은 항상 똑같다. 그게 무슨 말인지는 부러 쓰고 싶지 않다.


<피프티 피플>은 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다치고 죽는 사람 이야기가 꽤 자주 나온다. 문체가 꽤나 건조해서인지, 정말 내가 좀 큰 건지 딱히 눈물이 고이는 순간은 없었다.


그런데 테이가 승국의 품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넌 문장은 참을 수가 없었다. 요즘 나의 눈물 버튼이다. 강아지의 죽음


사람들은 너무 쉽게 얘기한다. 우리 강아지의 죽음에 대해 너무 쉽게 말한다. 물론 그 말에는 걱정과 미리 하는 위로가 담겨있다.


애석하게도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사실 그 앞에서는 표내지 않지만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

‘걱정되겠다’는 말이 나의 걱정을,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꾸역꾸역 대답하다 보면 높은 확률로 눈물이 고인다. 그쯤 되면 어떤 말도 선해할 수 없어진다. 위로인지 뭔지 건네는 그 말의 의도가 중요하지 않아진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말한다. 좋은 의도라는 핑계로 너무 쉽게 아무 말이나 한다. 하지만 어떤 말은 의도가 중요하지 않다. 듣는 이의 마음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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