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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Jun 01. 2024

나이 먹는 거 좋은 일이네

멋진 할머니가 될테야

한국에서 말하는 여자의 나이

나는 서른이 되면 주름이 100개 생기는 줄 알았다. 나이가 들면 추레해지고 외로울 줄 알았다.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나조차 사실은 나이 드는 일이 무서웠다.


미디어가, 어른들이, 주변에서 다 30대가 되면 큰 일나는 것처럼 구니까 나도 그 생각에 침윤되고 있었다.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든가, 서른이면 상장폐지라는 둥의 이야기에 콧방귀를 뀌었지만 알게 모르게 나는 사회적 인식에 젖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 나이) 서른이 되었다. 서른으로 산 건 고작 반년이 채 안 됐지만 이 짧디 짧은 시간에 알게 됐다.


나이 먹는 거 알고 보니 진짜 좋은 일이었어!



비로소 혼자 있게 되는 나이, 서른

서른이 되어 네 번째 이별을 했다. 이제 내가 어떤 연애를 하게 될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유독 힘들었던 날 택시를 불러 귀가를 했는데, 택시 안에서 다짐을 했다. “아, 얼른 차를 사야겠다. 어떻게든 차를 마련해서 이렇게 힘든 날 차에서 좀 쉬다 가든 집을 얼른 가든 해야겠다.”


이 다짐을 하던 찰나에 문득 스친 기억은 이십 대 중반의 내가 자주 했던 생각이다. 힘든 날마다 했던 생각은 “아.. 나를 데리러 와주는 남자친구가 있다면, 아 남편이 차를 끌고 와서 내 짐과 지친 내 몸을 뉘어준다면” 이었다.


세상에! 불과 5년 전 나는 저런 생각을 하며 살았다. 네 번째 이별을 하고 혼자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나는 남자의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됐다.


살면서 내가 남자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연애의 사이사이마다 꽤 텀을 가졌고 그 기간에 충분히 휴식하고 성찰했기 때문에 혼자를 잘 즐기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혼자를 즐긴 게 아니라 다음 연애를, 다음 남자를 기다리고 있던 걸지 모르겠다.


증명할 필요 없는 만족을 느끼게 된 나이, 서른

비로소 혼자 있을 수 있고 혼자인 게 즐겁고 편안한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것은 행복하고 정말, 정말로 좋은데 이걸 누구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누군가 공감을 하든, 비난을 하든, 의구심을 갖든 내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 정도면 내 삶은 살만하고 만족스럽다. 증명하거나 자랑할 필요가 하등 없다.


이런 만족을 처음 느꼈다. 정말! 엄청난 쾌감이다.


아, 나이가 드는 것은 이런 걸 느끼는 거구나!


서른의 내가 더 맘에 들어

이십 대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정말 예뻤다. 어딜 가나 여자한테나 남자한테나 인기가 많았고 교회 장로님 같은 어른이나 초등학생 애기들이나 나를 좋아했다. 학과 후배 여자애들은 앞다투어 나랑 친한 걸 자랑하고 나랑 밥 한 번 먹는 게 소원이라며 연락을 하는 일이 정말로 많았다.


그런데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맘에 든다. 그때보다 기미도 많아졌고 체지방률도 몇 퍼센트 늘었다. 그래도 내가 훨씬 더 좋은 사람이 됐다는 확신을 하기에 치기 어린 스물두 살의 나보다 서른의 내가 훨씬 좋다.


여자 어른이 말하는 여자의 나이


이런 깨달음을 혼자 얻고 기뻐하던 다음날, 주부반 수영교실에서 60-70대 어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50대 회원에게 나이를 묻고 스몰톡을 하신 뒤 60-70대 어른들이 그 50대 회원이 자리를 뜨자마자 이런 말을 하셨다.


“50대가 정말 예뻐. 제일 예쁜 나이야. 여자는 진짜 50부터가 시작이야.”


세상에! 난 서른이 돼서야 이제야 인생이 너무 좋은데 50대는 얼마나 좋다는 거야? 갑자기 나이 드는 게 기대되기 시작했다.


여자는 나이가 힘이야.

나의 8년 지기 친한 친구는 나보다 21살이 많다. 그리고 소위 말해 “네임드 전문직”이다. 유명하고 능력 있는 훌륭한 분이다.


그분이 최근 다루고 있는 사건을 이야기하며 40대 의뢰인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자세한 이야기나 개인정보, 신원은 조금도 말하지 않았고 절대 유추할 수 없도록 했다.)

내 친구가 하고 싶었던 말은 “내가 사건을 하면서 보니, 여자는 나이가 힘이야. 나이가 들수록 힘이 생기고 현명해지고 멋있어져.” 바로 이거였다.


내가 최근의 깨달음(나이 먹는 거 사실 좋은 일이고 나이를 먹고 보니 삶이 더 만족스럽다는)을 이야기하며 공감했더니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십 대 여자들은 그걸 몰라. 이십 대는 흔들리거든. 왜 흔들리냐면 나이 든 여자는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야.”


미디어가, 주변이, 세상이 우릴 흔들 뿐이지만 그 역시도 이십대면 끝난다. 별 거 없는 나도 서른이 되자마자 흔들림이 멈추는데 사십에는, 오십에는 얼마나 더 단단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돼있을까 너무 기대된다.


이 인생에 기꺼이 끼워 줄 사람이 기대되기도


처음 나이 듦의 만족을 느끼고서는 약간 overconfident 했음을 인정한다. 이렇게 되기까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남자쯤 없어도 내 인생은 충만하고 소중한데 이 인생에 감히 끼어들어? 어림없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만족을 충분히 누리고 나니 생각이 바뀐다. 이 삶에 내가 기꺼이 끼워 줄 정도의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은 사람일까! 그 사람의 인생은 또 얼마나 멋질까! 이런 기대가 생긴다.


그렇다고 기다리는 건 아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면 분명 근사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나타나지 않더라도 이미 멋진 친구, 가족, 동료가 있기에 내 삶은 충분히 바쁠 것이다.





느끼면 글을 써야 하는 나의 성정 때문에 이렇게 길고 어쩌면 과한 글을 썼다. 하지만 이건 내 삶의 수확이기에 쓸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한 줄 요약: 아무튼 나이 드는 여자들이여, 기대하자! 여자는 나이가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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