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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Jun 30. 2024

인생의 마지막 여름방학

마지막 종강일기

마지막 종강을 하다.

박사 3학기가 끝났다. 수료 전 마지막 학기다. 즉 마지막 종강을 했다. 다음학기가 끝날 때는 종강이 아닌 수료다. 마지막 방학이 시작됐다.


세어보니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총 20년을 학교를 다녔다. 20년 간 맞이한 수십 번의 방학 중 마지막 방학이다. 인생에 다시없을 방학이라니 왠지 싱숭생숭도 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직장도 3년을 다녀본지라 이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알기에 하루하루가 아까울 만큼 귀중했다.


그래서 이번 방학은 알뜰살뜰 잘 쉬고 공부하고 알차게 채우리라 마음을 먹었다. 수업도 신청하고 논문 퍼블리시 할 곳과 일정도 정해두었다. 마지막 방학에 여행이 빠질쏘냐. 여행 계획도 세우고 비행기 티켓도 구매했다. (그중 하나는 파투 났지만… 하필 방학 초로 예정됐던 여행이라 하마터면 내 소중한 방학계획이 다 뭉개질 뻔했다. 속상하여라)


방학 일주일차인 지금, 진짜 좋다!


이번 학기의 뜻밖에 수확

이번 학기에 총 세 개의 수업을 들었고 그중 두 개는 타단과대 수업이었다. 하나는 사범대학, 하나는 법대 수업이었다. 둘 다 우리 학과랑 분위기가 많이 다르고 학문의 입론부터 다르다 보니 꽤 힘들었다.


그래도 배운 게 많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대학원 수업은 재미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걸 알기에 고민도 많았다. 첫 번째로 이 수업들에 내가 할 수 있는 기여가 없다는 점이 미안했다. 두 번째로 이 수업을 통해 내 연구 관심사나 내 논문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재미로만 끝나는 학기가 될 줄 알았는데 생각지 못하게 큰 수확을 얻으며 종강을 맞이했다! yay!


1. 좋은 논문을 쓰다!

두 수업 모두 흥미로운 주제를 찾아서 꽤 재미있게 텀페이퍼를 썼다. 그중 하나는 퍼블리시를 꼭 해달라는 교수님의 요청을 받았다. 나 자신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더 다듬어서 다음학기 중 투고할 예정이다.


다른 수업에서 쓴 텀페이퍼도 처음에는 주제 잡을 때도 조금 헤맸지만, 꽤 만족스러운 주제와 문제의식을 발전시켰다. 쓰다 보니 좀 잘 쓴 거 같아서 투고까지 욕심을 냈으나…. 마감에 치여 마지막이 엉망진창 얼렁뚱땅으로 끝나버려 아마 투고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매 학기 이런 식인 게 슬퍼..)


정확히 이렇게 되었다.

비록 호기롭게 시작해서 끝은 유치원생 그림이 되었지만 쓰면서 박사짬바를 느꼈다. 이제야 학술적 글쓰기가 무엇인지, 나의 문제의식을 지식으로 생산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2024-spring 텀 페이퍼]

1. 분절된 성평등교육과 세계시민교육: 상호 연계의 가능성과 접근 방안 탐색

2. 일-가정 양립 법제에서 누락된 ‘성평등’과 그 효과


2. 피드백 MVP로 선정되다!

퍼블리시할 만큼 좋은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같이 수업 듣는 동료 선생님들의 피드백 덕분이었다. 그 수업은 마지막 4주간 논문을 쓰면서 피드백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의 학술적 글을 피드백하려니 너무 힘들고 부담스러웠다. 선행연구를 찾아서 읽고 모르는 개념을 공부해야 했다. 나는 피드백을 통해 도움을 많이 받은 터라 빚진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대충 할 수는 없고, 아는 것도 없으니 공부하는 수밖에. 내가 이걸 왜 공부하고 앉아있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종강과 함께 메일을 받았다. 피드백 MVP로 선정되었다는 메일이었다! 교수님이 학기가 끝날 때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피드백을 준 사람을 한 명씩 써서 내게 했다. 그리고 가장 많이 언급된 사람을 MVP로 선정해서 10,000원 상당의 기프티콘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당연히 MVP에 선정될 거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A+를 받은 것보다 기분이 좋았다.

나는 대학원을 학문공동체라고 생각하고 서로서로에게 영감과 도움을 주는 이 집단을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MVP가 더 의미가 있었다. 게다가 내가 이 수업에 기여가 별로 없다는 생각에 미안했는데 누군가는 도움을 받았다니 정말 다행이었다.


종강의 끝에는 언제나 사랑

나의 종강맞이 루틴이 있다. 여행을 떠나는 것, 가족을 보러 가는 것이다. 이번에도 종강하자마자 강원도 고성에 다녀왔다. 생일기념, 종강기념이었는데 가서도 같이 간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연락으로 사랑을 많이 받았다. 돌아와서도 다 완료하지 못한 생일 약속이 아직도 쌓여있다.


그리고 가족을 보러 갔다 왔다. 뭘 먹고 싶냐는 말에 이것저것 떠올렸다가 이 더운 날씨에 불 앞에 계실 모습이 떠올라 “주먹밥”을 얘기했다. 사실 주먹밥이 제일 먹고 싶기도 했다. 정말 우리 엄마 주먹밥은 세계 제일 맛있다.

역시 집에 가자 주먹밥, 김밥, 과일, 미역국 등등 내가 좋아하는 걸 잔뜩 정말 잔뜩 준비해 놓으셨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기분 좋게 떠들고 놀다가 돌아왔다.

마지막 사진은 우리 엄마의 수제 오디잼


내가 제일 예쁘고 제일 똑똑한 줄 아는 우리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나면 진정한 방학의 시작이다.


방학의 시작은 역시 문학

방학이 되자마자 학교 도서관의 문학 코너로 갔다. 6 자료실 문학 서가. 찜해놨던 소설을 하나 고르고 넓은 문학 서가를 한참 구경하다가 한 권을 더 골라왔다. 방학엔 문학도 잔뜩 읽으며 쉬어야지.




이렇게 한 학기 두 학기 보내다 보니 마지막 학기가 남았다. 인생의 마지막 방학, 잘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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