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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디 Jan 03. 2022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살아내기 2

디자인 유학을 준비하며

당시 영국 총리의 호기로운 국민투표 제안을 시작으로 2016년 6월 정말 영국은 유럽연합을 떠나게 생겼다. 그리고 이 뉴스는 이제까지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저 먼 나라 소식이었을 텐데 그로부터 이틀 뒤 런던예술대 대학원으로부터 합격 통보 이메일을 받자 상황은 달라졌다.


생각보다 너무 단출한 합격 이메일에 스팸일까 봐 몇 번이나 이메일을 다시 확인하고 또 확인했지만 정말 합격이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기쁨은 당혹스러움과 함께 왔다. 이메일을 수십 번 확인하고 해당 코스에 질문인 척 이메일을 보내며 확실히 내가 합격자 명단에 있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물론 엄마는 매우 기뻐하셨고 잘 될 줄 알았다며 어머니스러운 안도와 기쁨을 표현했다. 


이제 아버지에게 이 합격 소식을 어떻게 알려야 하나 고민해야 했다. 며칠을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하던 중 우연히 작년 세계 대학 랭킹 기사를 한글로 번역한 최근 인터넷 기사가 눈에 띄었다. 거기에 미술대학 1위로 내가 합격을 받은 런던예술대 Central Saint Martins가 이름을 올린 게 아닌가. 이거다. 얼른 인터넷 기사 링크를 복사해 보내곤 아버지에게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당신 딸내미가 이 기사에 나오는 세계에서 내놓으라 하는 대학에 합격했다고. 들으시고는 그곳 학비와 생활비를 물어보셨고 이럴 줄 알고 준비한 유학 관련 모든 상세 사항을 적은 워드 파일을 보여드렸다. 썩 달가워 하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세계 랭킹 1위'라 마지못해 2년의 과정 중 첫 1년 생활비와 학비만 지원해주겠다는 조건으로 허락하셨다. 


그때 결코 집안 사정이 여유로웠던 것이 아니기에 부모님께 죄송했지만 이전에 합격한 미국 대학을 학비 때문에 포기하고 오랫동안 후회했던 시간이 생각나면서 이번에는 눈 딱 감고 도움을 받기로 했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영국의 브렉시트 발표는 당시 2000원대를 웃돌던 파운드환율이 브렉시트 발표 이후 1300원정도 대까지 떨어져 유학생이던 나에게는 정말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었다. 그리고 2년차 학비는 나중에 생각해보기로 하고 일단 합격 오퍼를 받아들이고 영국으로 갈 준비를 시작하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지원할 때에도 이미 부모님은 그 과정에 전혀 관여하지 않으시고 내가 모두 알아서 입학전형이나 지원과정을 찾아 했었다. 그러다 보니 실수도 많았고 그때 알았더라면 조금 더 쉽게 그때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학 과정에 관해서는 부모님은 나보다도 더 아는게 없으셨고 딱히 나의 특이한 케이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기에 내가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당연했다. 


유학 준비는 아무래도 영어라는 언어장벽과 시스템 자체도 너무 다른 나라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더더욱 부모님은 나에게 도움을 주실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혼자서 학교 입학처와 메일로 교류하고 세세한 부분은 네이버 블로그를 찾아가며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비자 센터 미팅과 비자 발급을 해결했다. 작은 철자, 날짜 실수가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행정 서류들이기에 혹여 실수하지는 않을까 매번 수십 번씩 체크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다.


그렇게 혼자서 아등바등하며 2개월 만에 비자를 받고 유학 준비를 마친 후, 2016년 9월 정말로 영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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