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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지마 Dec 03. 2020

2인1실에 관하여

방귀 뀔 권리의 제한 혹은 침해에 관해 논하시오

면접시 혹은 채용시 확인해야 할 사항으로 올라오는 것들이 있다. 당연히!!! 제일 중요한 건 월급여와 식대/교통비(법카~~). 그 외에 업무강도/야근횟수/어쏘 1인당 들고 있게 되는 사건 수, 자기사건 인센티브/승소 시 인센티브, 연차사용가부/휴정기휴가여부 등 여러 가지를 살펴야 하는데… 개중에는 '개인 방 여부'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대체 무엇이냐 하면, 자기 혼자 일할 방이 있는지를 뜻하는 것이었다. 띠용. 변호사 개짱이구나 혼자 쓸 방도 주고!!!


처음 수습으로 일했던 곳에서는 개인방을 써보기도 했고 2인1실로 있어보기도 했다(거긴 별산이고 방 크기도 다양해서 이래저래 파트너별로 상황이 다르기도 했다. 어쏘 없이 혼자 방 쓰시고 혼자 일하시는 분부터 어쏘와 2인1실 쓰시는 분, 어쏘끼리 쓸 방 주시는 분 등...). 처음에 개인방 쓸 땐 몰랐다. 이게 그렇게 좋은 것인 줄... 나는 그냥... 왜 나같은 수습쩌리에게 이런 공간을 제공하였는지 부담스러워하기만 했다....; 그 후 다른 분이 들어오시면서 2인1실을 쓰게 되었는데, 옮겨간 방 자체가 작지 않았으며 일렬로 책상 두 개를 배치해 그 사이에 파티션을 세워 둔 구조라 "저기요 변호사님~" 하고 의자를 뒤로 도로록 끌고 가서 말을 걸지 않는 이상 서로 마주할 일이 없어서 별 불편함이 없었다. 불편한 거라고 하면, (나는 그때만 해도 의뢰인 전화를 받을 일이 없었는데) 다른 변호사님께 상담전화가 자꾸 걸려오니 그게 시끄러웠던 것 정도?


그리고 지금. 면접 볼 때 개인방 주냐고 물어봤는데 2인1실이라고 해서 그냥 그러려니 했었다. 근데 뭔가 불안한 것이, 방이 많이 작다고 하는 것이다. 지난 펌에서 쓰던 방도 큰 방은 아니래서(나한텐 작지 않았는데 전에 다른 곳에 있다 오신 분 말로는 자기 혼자 쓰던 방이 거기보다 더 컸다고;) 작아봤자 뭐 얼마나 작겠나 했는데 붙고 나서 보니 아니 이 코딱지만한 방을 둘이 쓰라구요...? 우리집은 그냥 20평대에 방 세 개 되는 평범한 소형 아파트인데, 우리집 서재(주로 내 공부방으로 사용)만한 것 같았다. 지금 둘러보니 어쩌면 그것보다 작을지도 모른다. 책상 두 개 두고 끝. 진짜로. 찐짜로. 지난 펌에서 방 같이 쓰던 분은 첫날에 어디선가 계속 책을 꺼내서 꽂으시던데 여긴 책 꽂을 곳도 없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내 교수저는? 연수원책은? 다 어디 꽂아??? 머리에 넣어 와????




방 크기야 펌마다 하도 다른지라 넘어가고, 나는 개인방이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다.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도 2인1실이라고 하면 아 넹 그래요 하고 말았고, 면접을 총 4군데 봤는데 개인방이 제공된다고 확실히 듣거나 제공되는 곳임을 건너건너 들은 곳은 두 군데뿐이었다. 그래서 요즘 다 2인1실인가봐~ 하고 말았는데 알고보니 나빼고 다 개인실 쓰나보더라. ㅡㅡ


모 커뮤니티에서는 개인방은 월 50의 가치가 있다, 아니다 월 100의 가치는 된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 나는 돈으로 환산해서까지는 말을 못 하겠는데(애초에 내 업무 경력이 그렇게 길지도 않고 이방저방 써본 것도 아니니까), 이런 이야기를 할 만하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정말로. 개인방은. 중요하다. 정말로. 다음에 이직할 땐. 방 있는 곳으로 해야지. 어차피. 돈은. 거기서. 거기니까.


나보다 조금 더 일찍 일을 시작하고 한두 번 더 이직을 해본 친구는 "일하다보면 '아 씨발'하고 욕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것 때문이라도 개인방이 필요해 그래서 필요한 거라고"라고 하더라. 이직하고 깨달았는데 이것도 진짜였다. 그리고 이 경우에 문제되는 건... 천장이다. 서초동 펌들이 입주한 건물들은 애초에 개인방이 있는 식으로 튼튼하게 지어진 게 아니고 가벽을 세워서 개인방을 만드는 식으로 만든 거라 소음에 취약하긴 하다(가끔 유리벽을 세우는 곳들도 있는데 이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군). 이 경우 적당히 전화하는 소리나 아 씨발... 하는 소리 정도는 괜찮다(난 지난 펌에서 옆방 전화하는 소리가 너무 잘 들려서 놀라 넘어질 뻔한 적이 있지만...). 헌데 천장이 뚫려 있으면ㅋㅋㅋㅋㅋ 모든 소리가 진솔하게 다 넘어온다. 정말로. ㅋㅋㅋㅋㅋㅋ 외부 업무공간(직원분들 일하시는 파티션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 복합기 돌아가거나 손님 응대하는 소리가 넘어올 것이고, 옆방으로 연결되어 있으면 옆방 변호사님 타이핑하고 전화받는 소리가 넘어올 것이다. 이 경우 진정개인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혹자는 2인1실을 쓰면 자유롭게 방귀 뀔 권리를 침해받는다던데 솔직히 틀린말은 아니...다.... 전 펌 변호사님께 죄송하지만 거기는 창문이 있고 대로변 소리가 시끄러워서 한두번은 모른척하고... 죄송합니다. 근데 방귀는 일단 달려나가서 화장실 가서 뀌고 오기라도 하지,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배 꾸륵 소리 때문이었다. 어느날 들려오는 꾸륵꾸르륵 소리. 전 펌의 경우 적당히 방이 크고 파티션이 세워져 있는데다가 대로변 소리가 화이트노이즈처럼 들려와서 아주 큰 소리(전화받는 소리나 파트너변호사님 들어오셔서 이야기하시는 소리) 외에는 잘 안 들렸는데, 지금 쓰는 방은 정말로 너무 작다보니 옆에 앉은 어쏘변호사님 뱃속 소리가 진솔하게 들려온다. 너무 내밀한 소리를 들어버린 것 같아 미안했다. 하지만 곧 미안하지 않게 되었다. 내 소리도 들려주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나와 같이 방을 썼던 변호사님들은 다 나와 성별이 달랐다. 나는 상관 없지만 저분들은 성별 다른 사람과 꾸르륵 기타 다양한 소리를 공유하며 속으로 얼마나 민망해했을지...


여기까지 농담같은 진담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진짜로. 당연히 공간이 부족하니 2인1실을 쓰는 걸텐데, 그렇다면 책상이라고 클 수 있겠는가? 내가 지금 쓰는 자리는 정말로 좁고 힘들다. 일단 방에 들어가서 자리까지 찾아가는 것부터 힘들다. 복도가 너무 비좁다. 책 놓을 자리도 없고, 외투를 걸어둘 자리도 없다. 가방은 바닥에 둔다 쳐도 백팩을 절대 바닥에 놓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에 둘 것인가. 책상도 작아서 기록 좀 펼치다 보면 달력 하나 둘 자리도 없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 부분은 상황마다 다르긴 할 것이다. 전에 있던 회사는 2인1실이지만 적당히 널찍하니 가방도 아무데나 두고 책도 왕창 꽂고 좋았거든)


그리고 전화소리. 타이핑 소리는 그냥 그렇다. 어차피 나도 타이핑 왕창 시끄럽게 해대기도 하고, 키스킨 낄 수도 있고. 근데 의뢰인 전화받는 소리는 솔직히 좀 괴롭다. 회사전화 대신 개인 휴대폰으로 전화할 경우 저쪽 전화소리가 내 귀에까지 다 들리기도 한다. 그리고 의뢰인들은 대체로 화가 나 있으므로(송사에 얽힌 사람들이 차분하고 평화로울 수가 있겠는가... 나도 오늘 내 잘못이 아닌 일로 나한테 화를 내는 의뢰인과 싸웠는데... 자기도 안다고 하면서도 나한테 따지는데...) 목소리가 커진다. 변호사들이야 차분히 전화를 받는다 치더라도 본인 목소리가 애초에 크면 어쩔 수가 없다.


솔직히 아주 가끔은 2인1실이 조금 더 낫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자꾸 딴짓을 하게 되는데 구조상 내 화면이 보이지 않더라도 가끔 뜨끔! 하면서 업무로 돌아가게 되니까. 근데 개인실 쓸 수 있으면 뭐하러 다인실 쓰냐!!!!!


그 외에 가끔 파티션 근무를 하는 곳들도 있다고 들었다. 야 이놈들아 그럴거면 양심상 돈은 많이 줘라. 대체 뭐하는 짓이냐. 남들은 비슷한 조건에 개인실 쓰는구만.




마지막으로 개인실 여부와는 조금 상관 없는 이야기. 창문이 있느냐 없느냐도 가끔 논의되는 것 같았다. 약간 작고 창문 있는 방과 넓고 창문 없는 방 중 무엇이 좋으냐 같은 이야기를 하던데 난 선택지가 없었지만 누군가 선택지를 내려주신다면 난 창문. 어차피 딴짓 못할 만큼 바빠도 창문 있는 방에 있다가 창문 없는 방 써보니까 답답해 죽겠다. 제발 창문 있는 개인실 내려주세요. 착하게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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