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리즈는 삼발이(가명) 아저씨와 함께합니다
내가 삼발이(가명) 아저씨를 처음 본 건 아주 불순한 의도 때문이었다. 나도 이제 어느덧 5년차, 대표님은 아직 날 쫓아낼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나도 개업을 해야 할 테니 이래저래 신기한 인맥을 늘려서 자문사도 잡아보고, 개인사건도 해보자는 거였다. 삼발이 아저씨는 나랑 나잇대가 비슷한 FtM인데, (친구 말에 따르면) 이런저런 일을 다양하게 하고 있고 나에게 각종 사건도 소개해줄 수 있을 좋은 친구래서 헐레벌떡 모임에 나갔더니… 웬 아저씨가 나와 있었다. 한 순간도 여자였던 적이 없을 것만 같은 아저씨. 이 사람이 주민등록번호 2로 출생신고가 됐을 리 없다는, 어떠한 의심도 주지 않는 아저씨. 그러나 그는 얼마 전 제3의 다리를 만드는 수술을 하고 굳건하게 자리에 누워 나에게 자기 다리(세 번째 다리 및 세 번째 다리를 위해 희생당한 한 쪽 다리)에 대해 이야기를 카톡으로 줄줄 불어댔다. 왜 그게 아직 없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더니 성별정정 사건을 맡아본 적 있는 내게, 그 이야기와 함께 자기 이야기를 브런치에 쓰란다. 아저씨 꼬추 만드는 이야기를 말이죠… 네…
참고로 난 아직도 삼발이 아저씨의 주민등록번호 첫 뒷자리를 모른다. 근데 어렸을 때 모습을 봐도 1 같음.
성별정정은 말 그대로 성별기재를 바꾸는; 가사비송이다. 1<->2, 3<->4로 바꾸는 것(친구가 1<->2로 바꾸는데 혹시나 3이나 4로 바뀔까봐 걱정했다는 얘기를 해서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난다). 뭔 소리냐면 가정법원에서 '소송'은 아닌데 소송 비슷하게 굴러가는 사건이라는 뜻이다. 법원에 가서 판사가 해주는 일인데, 소송하고는 조금 다르게 굴러간다는 것이지. 관련 법률은 없고, 대법원규칙인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에 따라 진행된다. 아주 예전부터 법률 제정에 대한 이야기는 있었으나(우리나라에서는 고 노회찬 전 의원의 법안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국회가 그런 걸 빨리 처리할 리 없지 않은가…^^ 아무튼 지금은 큰 틀에서는 대법원 사무처리지침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지침이 법률보다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조금 더 빠르게 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전에는 부모동의서도 요구했으나 지금은 부모동의서는 필수가 아니다. 참고로 판사에 따라 허가해주는 경향도 다르다보니, 지침에서 요구하는 걸 다 갖추지 않아도 정정되는 케이스가 종종 나온다. 내가 하던 사건은 FTM 남성이 자궁적출을 하지 못한 케이스였는데, 몸이 안 좋아서 적출수술을 하기에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이었다. 다만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가려면 성별정정이 우선되어야 했고. 이 분 이외에도 궁적 없이 허가가 나온 케이스는 있었는데, 이분은 불허돼서 항고했다(ㅠㅠ). 판사 운과 당사자 및 조력인의 설득력 기타가 많이 필요하다. 물론 판사 운이 제일 중요하다 ㅅㅂ
<성전환자의 성별정정허가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은 https://glaw.scourt.go.kr/wsjo/intesrch/sjo022.do 에서 찾을 수 있다.
제3조 (참고서면)
① 법원은 심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신청인에게 다음 각 호의 서면을 제출하게 할 수 있다.
1. 가족관계등록부의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및 주민등록표등(초)본
2. 신청인이 성전환증 환자임을 진단한 정신과 전문의사의 진단서나 감정서
3. 신청인이 성전환수술을 받아 현재 생물학적인 성과 반대되는 성에 관한 신체의 성기와 흡사한 외관을 구비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성전환시술 의사의 소견서
4. 신청인에게 현재 생식능력이 없고, 향후에도 생식능력이 발생하거나 회복될 가능성이 없음을 확인하는 전문의사 명의의 진단서나 감정서
5. 신청인의 성장환경진술서 및 인우인의 보증서
(참고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성전환수술 여부로 성별정정 허가를 내주는 법원의 판단은 “심각한 인격권 침해”라고 24일 밝혔다. 인권위는 대법원장에게 해당 내용이 담긴 대법원 지침을 전반적으로 바꿀 것을, 국회의장에게는 성별정정과 관련한 특별법 제정을 권고했다. 한겨레, ‘성전환수술해야 성별정정 허가’ 대법원 지침 ‘인격침해’ 판단 받았다)
이건 참고서면이지만 뭐 당연히 다 낸다. 꼴랑 1개 사건을 했고 친구(삼발이 아저씨 말고) 사건을 나중에서야 본 경험으로는,
1: 당연히 냄
2: 그... 유명한 병원이 있다. 거기를 많이들 가는 것 같다. 나는 우울, 불안으로 로스쿨 다니는 동안 동네 병원을 다녔는데, 거긴 기독방송인지 기독신문인지 하는 곳의 달력이 걸려 있었다.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지금은 다른 병원으로 옮겼는데, 성별정정 진단서로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관련 이슈로 상담을 받는 데에 문제가 없어서 진단서도 끊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나는 정정 생각은 없어서 딱히 진단서를 문의하진 않았다. 이정도는 뭐, 대여금청구소송에서도 차용증은 내니까...
3: 이게 가장 문제되는 부분인데, 내가 성별 하나 바꾸려고 나라에 허락 받겠답시고 수천만 원짜리 수술을 감내하며 이거 해주는 병원 찾아서 몇날며칠을 병원에 앓아누워야 하는가??????? 서울 살면 그나마 녹색병원이니 강동성심병원이니 하는 곳들이라도 쉽게 가볼 수 있지, 지방 살면 그것도 안 쉽거든????? (색다른의원이 7호선에 위치한 이유가 고속터미널과 가까워서라고 들었다. 지방사람들이 서울에 와서 쉽게 진료받을 수 있게 하려고) 내가 지금까지 변호사일하면서 모은 돈이 n천만원인데, 만약 내가 FTM이라고 해보자. 탑수술이야 몇백 안(?) 하지. 궁적은 운 좋게(?) 자궁근종 같은 것 있으면 보험처리돼서 100~200 선으로 가능할 수라도 있지. 외부성기성형(=삼발이 아저씨의 삼발이 만들기)은... 아이고... 얼마냐... 그리고 지금 저 아저씨 며칠을 누워있는지도 모르겠다(몇 주는 됐다).
4. 이것도 문제다. 생식능력을 잃는 것 자체는 금방 된다고(?) 치자(호르몬을 일정 기간 이상 하면 생식능력이 돌아오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근데 왜 생식능력을 잃어야 하는가? 나는 잃고 싶지만 누가 떼고 오라고 해서 떼는 것하고는 완전히 다르지 않는가. (이러면 꼭 여자화장실에 남자 들어가는 얘기 하는데 그건 걔들이 범죄자인 거고... MTF와 남성은 구분이 안 가지 않느냐고 하는데 어렸을 때 아무것도 안 달린(?) 내가 숏컷에 바지교복 입고 화장실 들어가면 누가 뭐라고 했다. 어차피 머짧부치와 키 큰 MTF와 키작은 FTM은 모두 각자의 구분이 안 가는 선상에 서 있다)
5. 성장환경진술서는 뭐 다들 잘 쓰니까 그렇다 치자. 어려서부터 로봇을 갖고 놀았고 남자애들과 동성으로 느끼며 친하게 지냈으며... 같은 거니까. 물론 이것도 어렸을 때 로봇 자동차 공룡~이 아니었으면 안 되나 싶긴 하지만 이정도면 일단 넘어가자. 근데 인우보증서를 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친구 말로는 5장은 넘어야 한다고 하는데, 어려서부터 자기 모습대로 살지 못해서 끊긴 인연이 한둘이 아닐 텐데 그게 쉬운가? 당장 우리엄마아빠도 내가 왜 퀴어운동을 하는지 잘 이해를 못 한다. 낳은 사람도 이해를 못 하는데 '얘는 어려서부터 어떤 애였어요'를 써줄 사람이 그렇게 많기가 쉽겠냐고.
아직도 이 주제를 가지고 뭘 연재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아마 나와 삼발이 아저씨의 이야기를 쓰게 되지 않을지? 뭐 아무튼 써보겠습니다. 제가 쓴 서면과 삼발이 아저씨의 수술 이야기와 각종 도움되는 사이트 이야기를 하지 싶네요. 후원하기 버튼을 누르시면 제 통장을 거쳐 누워있는 삼발이 아저씨의 밥값으로 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