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국선과는 다르다 국선과는!
온갖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쉬던 어느 날 밤 열 시 반. 문자가 왔다.
[web발신] 서울00지방법원입니다. x. xx. 10:30 영장실질심사에 심문할 사건이 있으므로 00호 법정으로 출석하시기 바랍니다. 당직실 02)xxxx-xxxx
나... 나는 영장실질을 해본 적이 없는데 지금 이 오밤중에 갑자기 연락을 하시면... 그... 제가 뭐부터 해야... 내일... 기록은... 아니 누가 체포됐는지도 모르고... 00법원은 우리집에서 얼마나 걸리더라... 아니 영장실질의 성격상 갑자기 연락 오는 게 맞긴 하지... 근데 기록은 어디에 있는데요...
논스톱국선은 국선이랑은 다르다. 나도 개업하기 전까진 이런 게 있는지 몰랐거든. 국선변호인은 법률상 해당되는 경우에 나라에서 변호인을 선정해주는 제도인데, 개업하면서 많이들 신청한다. 나는 회사 그만두고 개업하면서 나오는 시기와 국선 신청하는 시기가 맞지 않아서 하나도 신청을 못 했다. 사실 국선은 품이 많이 드는 것에 비해서는 보수가 적긴 한데, 일단 사건이 적은 초기 개업변들에겐 필요한 일거리이기도 하니까(그리고 공익시간으로 쳐주기도 한다).
논스톱국선은 구속영장이 청구된 피의자에 대해서 영장실질심사 단계에서 불구속으로 재판받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서 불필요하게 구속되지 않도록 할 수 있게 하는 제도이다. 여기서 만약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그대로 내가 국선변호인이 되는 거고(사선이 선임되지 않는 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국선변호인이 되지 않은 채로 잘 헤어지는 것이다.
근데 오밤중에 갑자기 저런 문자를 받으면 나는 어디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더라. 아무리 영장실질심사에 들어가본 적이 없다고 한들, 대충 뭘 보고 누구랑 뭔 얘기를 해야 하는지는 아는데 그시간에 갑자기 어디로 누굴 찾아가서 제가 누굴 접견해야 하냐고 물어봐야 하는지를 모르겠더라고. 최근에 영장실질 들어갔던 친구한테 물어보니 자기는 애초에 첫 경찰조사부터 다 들어갔었기에 따로 볼 건 별로 없었지만 고소장이나 피의자신문조서, 구속영장청구서 정도 보고 들어갔었다고 하더라. 근데 저는 그게 하나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갑자기 어어. 으어어. 되고 만 것이지. 주변에 논스톱국선하는 사람이 많지도 않고. 법원에서 논스톱국선은 당번 명부를 주는데, 생각보다 아는 이름이 많지가 않았거든. 다행히 오카방 몇 군데에 물어보고, 아는 선배 하나가 생각나서 연락했더니 열두시에 바로들 연락을 주셨다.
1. 법원을 잘 찾아가기
서울중앙지방법원 등 몇 군데는 팩스(논스톱국선을 신청할 때 팩스번호를 적어서 내게 되어 있다)로 구속영장청구서를 보내준다고 하더라고. 그걸 잘 확인해보라고 하더라. 내가 간 곳은 변호사실(접견실) 앞에 체포된 사람들 명단과 구속영장청구서가 우르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서울남부지방법원의 경우 특이한 곳에 있어서 잘 찾아가라고들 했다. 흔히 남부지법은 정문으로 들어간 후 쭉 가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는데(건물을 보고 앞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건물을 오른쪽에 두고 쭉 가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는 느낌?), 정문으로 들어가서 오른쪽으로 꺾은 후 다시 왼쪽으로 꺾으면 나오는 쪽문이 106호 즉결심판법정이고 거기 앞에 대기실과 변호사실이 있다고.
대충 이런 느낌이다. 근데 어차피 법원 들어가서 '경위님 저기 제가 논스톱국선인데요 어디로 가야 할까요' 하면 다 알려주시지 않을까.
2. 구속영장청구서를 잘 읽기
10:30이 영장실질심사 시간이면 10:00이나 그 전에 가라고 하더라고. 하루에 한 명의 국선에겐 4명까지만 맡기는데(그 이상은 못 맡김), 4명이 넘어가면 거기서부터는 부당번이 맡게 된다고 하더라. 대체로 1~2명이라는 것 같더라고. 일단 구속영장청구서를 읽어보면서 체포된 피의자에게 물어볼 만한 것을 체크해보자. 가장 중요한 건 범죄 인정 여부. 그리고 구속 사유가 있는지.
제201조(구속) ①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제70조제1항 각 호의 1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을 때에는 검사는 관할지방법원판사에게 청구하여 구속영장을 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고 사법경찰관은 검사에게 신청하여 검사의 청구로 관할지방법원판사의 구속영장을 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다. (후략)
이때 제70조제1항 각호는 아래와 같다.
1. 피고인이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2.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3. 피고인이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그러니 가장 먼저 물어봐야 하는 것은 주거가 어떻게 되는지, 증거가 분명하고 이미 확보되어 있는지 같은 것들이다. 그리고 가족 관계. 도망하지 못할 만한 사유가 있다는 걸 언급할 게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전과에 관해서도 이것저것 물어볼 것들이 생긴다(구속영장청구서에 나와 있다). 그 외에 판사에게 하고 싶은 말, 범죄와 관련하여 반박할 만한 것들…….
3. 피의자와 대화 나누기
내가 대충 구속영장청구서를 다 읽었다 싶고 시간이 됐다 싶으면 직원분께서 피의자 한 명씩 접견을 시켜주신다. 그럼 위의 내용을 체크해가면서 할 말을 만들면 된다.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오래 이야기하면 판사도 안 좋아한다고 하더라고. 대강 피의자당 10분 가량 접견을 할 수 있는데, 충분히 물어보되 판사에게 할 말은 핵심만 잘 뽑는 식으로 정리해야 했다. 피의자가 할 말을 잘 정리해둔 경우도 있었고, 잘 정리를 못 해서 내가 어느 정도 조언을 해준 적도 있었다.
4. 영장실질심사 진행
들어가서 기다리면 판사님이 들어오신다. 일어나서 인사하고 그런 건 똑같고. 피의자 인적사항 묻고, 판사님은 피의자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으시고, 나는 변호사석에 앉아서 할 말 더 생길지, 아니면 내가 할 말을 적어놨는데 이미 나왔으면 줄일지 고민 좀 하고. 변호인 의견 있냐고 물으시면 일어나서 짧게 의견 진술하고. 특정되지 않을 만하게 생각나는 걸 하나 써보자면, "피의자는 범행을 전부 인정하고 있고 합의가 가능한 상황이나 본인이 구속되면 합의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형편이며 거동이 불편한 노모를 모시고 있어 구속되면 노모 홀로 지낼 수 없는 상황인데다가 범행의 심각성이 그리 크지 않아 (…) 불구속으로 재판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청하는 바입니다"와 같은 흐름으로 이야기했다.
검사는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던데 그 차이는 모르겠다. 범죄 경중의 차이였던 것 같지는 않고, 범죄의 종류에 따른 차이였던 것 같기도.
5. 퇴정하기
묵례하고 안녕히 계세요...
당일 오후면 결과가 나오는데, 전화해서 물어보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고들 한다. 구속되고 사선변호인이 없어서 내가 국선을 맡게 되는 경우에는 어차피 공소장이 날아오므로 대부분 확인을 안 한다는 듯.
아무튼 아직(?) 공소장은 안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