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과 케시퐁 들고 가세요
직원 없이 국선을 시작하면 형사사건 기록복사도 내가 하러 가야 한다. 기록복사... 말로만 들었지 진짜 하는 날이 오는구나 6년차에... 어떤 사람들은 그거 꼭 해볼 필요 있냐고 하던데, 한 번은 해볼 필요가 있지 싶다. 근데 두 번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0. 기록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
나처럼 이미 민사소송이 전자화된 이후에 합격한데다가 누가 갖다준 종이만 보면서 일하면 '기록이 어디에 있다'라는 개념이 뭔지도 모르게 된다. 이게 뭐냐면, '기록 원본'이 어디에 있느냐는 건데... 대강 이런 식이다. 을남이가 갑동이를 때려서 갑동이가 경찰서에 가서 고소장을 접수하면, '고소장'이 기록에 편철된다. 경찰이 CCTV를 따와서 CD를 구운 것, 캡처해서 만든 수사보고 같은 것도 기록에 편철된다. 을남이를 불러다 조사한 피의자신문조서(오른쪽 엄지로 간인한 그 원본)도 기록에 편철된다. 합의도 안 되고 혐의도 명확하면 이 기록 덩어리를 검찰로 보내서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다. 그럼 이제 기록은 검찰로 넘어간다. 필요하면 검찰에서 추가 수사를 하기도 하는데, 그럼 검찰피신도 이 기록에 편철된다. 공소를 제기하면 공소장일본주의에 따라 공소장만 법원에 제출되고, 기록은 여전히 검찰에 있다. 제1회 공판기일에 가서 증거인부를 따지고(예: 경찰피신은 내용부인이용 / 그럼 기각할게요), 증거로 쓸 수 있게 된 증거들만 법원으로 간다. 이걸 수험적으로는 당연히 이해하고 있지만(전문법칙 다들 알잖아요?) 기록이 오고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치 경찰피신 내용부인하면 증거로 못 쓰는데 판사가 보면 안 되는데 그치 그치.
이걸 이해하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다;
나는 논스톱국선을 하고 있으니 기록의 얇고 두꺼움 정도가 대충 예상이 갔고, 공소장을 받은 직후 기록 열람등사신청을 했으니 기록은 검찰청에 있었다. 검찰청용 열람등사신청서를 쓰자.
1. 열람등사신청서 작성하고 제출하기
나는 이 분 블로그를 보고 했다. 감사합니다. https://m.blog.naver.com/happylawl/223084856753
- 열람등사신청서: 검색하면 나온다. 각 검찰청 사이트마다 올라와 있는 듯하다.
- 변호인 선임서: 국선의 경우 국선변호인선정결정문을 복사해서 내면 된다.
- 서약서: 검색하면 나온다.
- 수수료 납부서: 검색하면 나온다. 수수료는 수입인지로 낸다.
- 수입인지(500원): 검찰청이나 법원 안에 있는 은행에서 수입인지 500원짜리 주세요 하면 되는데 현금만 된다.
직접 가서 제출하거나 우편으로 제출하면 되는데, 팩스로 받아주는 곳들도 있는 것 같다. 중앙은 팩스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
2. 열람복사일정 잡기
우편으로 접수했거나 팩스로 접수하면 전화를 주는 곳(팩스로 접수하고 전화를 해야 하는 곳도 있다고... 검바검)은 연락이 온다. 일정이 빡빡한 곳들은 복사 가능한 날짜가 없어서 빨리 신청 안 하면 기일변경신청을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럼 뭐 가져오시라고 다 안내해주신다. 대체로 오전/오후로 알려주시고, 기록이 몇 페이지니까 얼마 안 걸린다/몇 페이지니까 이틀 잡으시라 등 안내해주시더라고. 얼마 전에 한 번 다녀왔는데 200페이지 정도로 아주 얇은 기록이었는데, 다음에 800페이지짜리 가야 하는데... 음... 그리고 CD가 있는 경우 그것도 복사할 거면 USB 가져오라고 알려주신다.
3. 복사하러 가기
골무 케시퐁 변호사신분증 수입인지 현금을 챙겨서 가보자. 그럼 작은 공간 안에 이어폰 낀 사람들이 열심히 복사를 돌리고 케시퐁으로 인적사항을 지우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기록 종이 절대 못 풀게 하니까 열심히... 돌리자... 근데 왜 케시퐁일까? 일본에서 만든 제품명인가?
들어가면 사건번호 물어보시고 신분증 확인하고 기록을 주신다. 그럼 어딘가 숨어있는 복사카드 판매기기를 찾아서(너도 현금만 받냐!) 만원짜리 먹여서 카드 사서 카드를 꽂고 복사를.. 하자...^^... 들어보니 복사카드를 안 쓰는 곳도 있다는데 그럼 거긴 어떻게 하는 거지?
CD는 직원분께 USB 드리니 복사해주셨다. 그리고 수입인지로 수수료 따로 내야 함(1600원 나왔다).
복사를 다 했으면 빠진 페이지 없는지 넘기면서 인적사항을 삭삭 지우자.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 성씨 빼고 이름도 지우라고 되어 있더라고. 그 외 사건은 피해자 이름 빼고 다(주소, 주민번호, 휴대전화, 사업자등록번호 등 다) 지우라고 되어 있었다. 그 후 기록 반납하면서 잘 지웠는지 검사받고 들고 가면 된다.
4. 회사로 돌아가기
템플스테이가 따로 있냐 여기서 도 닦지... 가끔은 머리 비우러 내가 복사하러 가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다... 얇은 사건만..^^ 다른 얘긴데, 기록복사할 때 선글라스를 끼고 가는 사람은 없는지 궁금하더라. 기록을 낱장으로 풀어서 복사할 수가 없다 보니, 죄다 뚜껑 열고 한장씩 넘겨가며 복사하느라 복사대 불빛이 그대로 보여서 눈부시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