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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Vol 3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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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콰드로페니아 Feb 26. 2021

과거에 산다는 것은

호준.

몇 달 전 우연히 ‘집 번호를 준다는 것은’ 이라는 곡을 들었다. 에픽하이가 랩을 하고 린이 노래를 부른 이 곡은, 헤어진 연인이 서로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온 지 14년이나 된 곡이라서 기억이 희미하지만 엠넷 채널을 보다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감성에 젖게 만든다. 하지만 너무나 오래된 느낌이 든다.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의 편곡 때문만은 아니다. 제목에 떡하니 쓰인 ‘집 번호’ 라는 단어 때문이다.

‘집 번호.’ 라는 단어는 정말 낯설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집 번호를 물어 봤던 게 언제였을까? 집 번호로 연락했던 적은? 그게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을 만큼 낯선 일이 되었다. 집 전화는 시골에 사는 할머니댁에서나 보는 물건이 되었다. 혹여 집에 두었어도 그 존재를 까마득히 잊고 사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급한 일이 있어서 휴대전화로 집에 연락한 적이 있었다. 집에 분명히 사람이 있었음에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중에 형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자 형은 집 전화가 고장났다고 말했다. 얼마 전부터 집 전화가 벨도 울리지 않고 전화도 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집 전화가 그리 된 것은 두어 달이나 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형이 말하기 전까지 아무도 그 사실을 눈치채거나 신경쓰지 않았다. 집 전화는 우리집에서 이런 존재가 되었다.

아예 집 전화가 없는 집도 많이 늘었다. 가족 구성원 모두 휴대전화를 쓰는 집이 거의 대부분이다. 휴대전화는 전화는 물론이고, 문자메시지도 편하게 남길 수 있으며, 여러 메신저 서비스와 SNS까지 쓸 수 있다. 구태여 집 전화를 쓸 이유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집도 상황은 비슷해서 엄마가 집 전화를 없애자는 의견을 낸 적이 있었다. 엄마는 이제 쓸 일도 없는데 거추장스럽게 집 전화를 남겨 둘 이유가 없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도 집 전화를 거의 쓰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 왠지 모를 강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집 전화 때문에 드는 비용도 없는데 비상용으로 하나쯤 두는 건 어떻냐며며 엄마를 설득했다. 집 전화가 정말로 필요해서 낸 의견은 아니었다. 그저 집 전화를 버린다면 내 과거의 한 부분을 같이 버리는 것만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집 전화에는 참 많은 추억이 담겨 있다.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집 전화는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끈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온 나는 신나는 마음으로 친구 집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들리다가 수화기 너머로 어딘지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놀러 가도 되냐는 내 물음에 친구는 흔쾌히 좋다고 말한다. 통화가 끝나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옆 아파트에 사는 친구네 집으로 놀러갔다. 친구 어머님이 주신 간식을 먹으며 어찌나 신나게 놀았는지 모른다.

그런가 하면 주말 동안 집 전화는 엄마의 차지였다. 집안일을 얼추 마친 한가한 낮 시간대에 엄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곤 했다. 안방에 앉아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드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나중에 집 전화가 무선으로 바뀌자 설거지를 하는 와중에도 전화를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운 채 통화를 하셨다. 무슨 이야기를 그리 열심히 하시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정말 즐거워 보였다.


하지만 우리집 전화기는 요즘 통 조용하다. 선거철에나 시도때도 없이 찾아 오는 여론조사 전화만이 집 전화를 반길 뿐이다. 가족들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하나씩 놓여 있다. 꺼질 틈 없이 빛나는 스마트폰은 재밌는 게 너무 많아서 다들 집 전화는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카톡으로 약속을 잡고, 엄마는 집 전화가 아닌, 스마트폰을 스피커 모드로 켜두고 집안일을 하며 통화를 하신다.



한 교양 프로그램에 따르면 미국 오클라호마시티 초등학생 5명 중 4명이 아날로그 시계를 읽을 줄 모른다고 한다. 아마 어릴 적부터 스마트폰을 쓰며 디지털 시계와 함께 했기 때문일 것이다. 뒤이어 아날로그 전화기를 본 적이 없어 스마트폰 통화 어플의 아이콘이 수화기 모양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어린이가 많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방송을 보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니,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지?’ 내가 당연하게 여겨 온 삶이 요즘 아이들에게 너무나 낯선 광경이 되었다.

가끔 예전이 더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집 전화로 약속을 잡던 순간의 설렘, 집 전화만 있어서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던 시간, 수화기를 들고 방바닥에 앉아 깔깔 웃던 여유로운 주말의 풍경. 그 시절의 모습과 감정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그때가 참 좋았다.’ 라고 속으로 되뇌인다. ‘요즘 세상은 예전보다 삭막하다’는 말도 슬쩍 덧붙이며….

그때가 그리워서 아예 스마트폰을 쓰지 않으려 한 적도 있었다. 몇 년 전엔가 대뜸 친구들의 번호를 메모장에 적어두고 폰을 꺼버렸다. 그리고 집 전화로 사람들과 연락하며 살려고 했었다. 처음에는 마치 옛날로 돌아간 듯한 착각도 들었다.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하릴없이 기다리거나 지하철 안에서 멍하니 창가를 바라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스마트폰이 없는 것이 무척 허전했지만 지내다 보니 제법 지낼 만했다. 스마트폰을 하지 않는 시간을 조금씩 집안일과 독서로 채웠다.

하지만 낭만도 잠시, 과거로의 회귀는 일주일도 채 가지 못했다. 친구들은 연락이 되지 않는 나를 답답해 했고, 나 역시 친구들의 카톡이 와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했다. 인터넷을 사용하다가 본인 인증이 필요할 때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길을 찾기 위해서 지도를 미리 보거나 프린트하는 일도 있었는데, 그건 너무 번거롭고 귀찮았다. 결국 다시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집 전화를 쓰던 옛날이 더 좋았다는 내 생각은 다소 부질없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야겠다. 어쩌면 환상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지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과거는 현재에서 멀어지고 희미해진다. 사람들은 흐릿한 과거를 좋게 좋게 뭉뚱그려서 생각하곤 한다. 

엄마는 종종 내게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학교에 갈 때면 고무신을 신고 매일 산골을 걸어 다녔다거나 쉬는 날이면 할아버지를 밭일을 하러 갔다고 하셨다. 재밌는 이야기였지만 한편으로는 오래 전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소리처럼 들렸다. 내가 살아 온 시간과 달라서 잘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옛 이야기를 하는 엄마는 너무나 신나 보였다.

어쩌면 미래의 내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집 전화로 친구와 연락하던 시절이 나에게는 마치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요즘 어린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무척 의아해 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나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 과거가 그리워서 그때로 돌아가려고 애를 쓰며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쓴다한들 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려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잠깐 추억에 잠겨 과거에 머무는 일은 괜찮지 않을까? 집 전화를 보고 쓸모 없다는 말을 하는 것보다 그 안에 담긴 추억을 찾고 좋은 모습을 되뇌이는 편이 조금 더 즐겁고 행복하다.



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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