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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Vol 5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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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콰드로페니아 May 12. 2021

호흡

승준.

2019년에는 반년 가까이 수영장에 다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할 무렵에 그만 두었다. 주말 오전반에 등록했었는데 내 또래의 학생은 거의 없었다. 수영 레슨은 50분 동안 3명이 한 조를 이루어서 이루어졌다. 나는 그때 살집이 올라 있던 상태여서 수영복을 입고 있는 내 꼴이 민망하게 느껴졌다. 애써 모른 척 하고 앞으로 헤엄을 쳤다. 팔은 쭉 뻗고, 귀를 팔뚝에 대는 식으로 고개를 돌려야 했다. 시선을 천장에 고정하고 호흡해야 안정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수영을 그만 두는 날까지도 호흡을 잘 하지 못했다.


한창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이다. 공부가 잘 되지 않거나 의욕이 생기지 않을 때에는 부러 크게 숨을 쉬었다. 누구 하나 나에게 부담감을 주거나 불편하게 하는 일이 없는데도 마냥 마음 편하게 공부하기 벅찼다. 시험에 붙을지 떨어질지 확신할 수 없고 얼마만큼의 성취를 이뤘는지도 잘 알 수 없었다. 어제도 공부를 하다가 숨을 마시고 뱉었는데, 문득 수영을 했던 기억이 났다. 사태가 좀 잠잠해지면 다시 등록하려 했는데 여의치가 않다.


요즘에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느라 길 위에서도 호흡이 어렵다. 수영을 할 때에도 나는 입속에 물이 밀려들어와 숨을 쉬지 못하는 상황을 싫어했다. 앞으로 나아가야하는데 호흡이 불안정해지면 내 자세도 이전처럼 곧게 뻗어갈 수 없었다. 호흡이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그 자리에 멈춰서 어정쩡하게 한쪽 벽면을 잡고 숨을 가다듬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질서 있게 오른쪽으로 잇따라 수영하던 1번 레인의 장애물이 되곤 했다. 앞서 가는 사람의 발이 일으킨 파도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나도 다시 물에 몸을 띄웠다.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


주말 성인반 레슨이 끝나고 나면 유소년 단체수업반이 시작된다. 샤워를 하러 올라가면 어린 아이들이 어수선하게 수영장에 입장했다. 여전히 내 몸을 보이기가 민망해서 몸이 다 마르기도 전에 급하게 옷을 입었다. 어린 아이들의 시선이 등 뒤에 박히는 것 같았다. 옷의 뒤편에 물에 젖은 회색빛 자국이 등을 따라 달라붙었다. 겨울에는 추웠고 여름에는 찝찝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함께 벌거벗고 있는 공간은 익숙하면서도 불편했다. 탄탄하게 근육이 잡힌 남자가 들어오면 주눅이 들었고, 나만큼이나 키가 큰 어린 아이들을 보면 위축되었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들 중 누구와도 눈이 마주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영을 그만 둔지 어느새 1년이 다 되어 간다. 수영장은 꽤 묘한 공간이어서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수영장은 사방이 막혀 있어서 서로의 말이 울리곤 했다. 심지어 다들 수경과 수영모를 착용하고 있어서 누가 누구인지 잘 분간할 수 없었다. 초고도근시가 있어서 이런 상황은 더 심화되었다. 가끔은 시선이 느껴지는데도 쳐다보고 있는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한 번 그런 시선감이 들기 시작하면, 이후로도 그 느낌을 쉽게 지울 수가 없었다.


수영할 때에는 수경을 절대 벗지 않았다. 내 모습이 드러나면 굉장히 창피할 것 같고 다 까발려진 기분이 들 것 같았다. 그 기분과 함께 얼굴이 잠기면, 헤엄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기분이 멍했다. 강사의 목소리에 반응하고 그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였다. 앞으로 팔을 뻗고, 고개를 돌리고, 호흡을 하는 단순한 동작에만 집중하게 돕는 고립감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 고립감은 오직 나에게만 감각의 채널을 맞추게 했다. 몸은 힘들지만 기분은 안락했다. 그러다 다시 고개를 들면 처음에 느꼈던 시선감과 달리 아무도 나를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 내 불안감이 회복되는 기분이 들었다. 남의 시선이 있는 줄 알았지만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이 없다. 수영을 배우는 게 눈치볼 일이 아닌데도 왜 누군가의 시선 때문에 마음이 위축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몸이 드러나는 게 민망해서 그랬는지, 수영을 잘 못해서 그런 건지 모호하다. 어느 정도 자세가 몸에 익고, 매번 보는 오전반 사람들의 실루엣에 익숙해질 때쯤 시선감은 완전히 떨쳐졌다. 아무도 내게 부담감을 주지 않는 수영장에서 정체도 모르고 원인도 모르는 어떤 부정적인 마음은 편해지곤 했다. 나는 알게 모르게 막심한 부담감에 힘들어했을지도 모른다.


부담감에 억눌리다보면 호흡이 불편해질 때가 있다. 시험에 붙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모습부터그리고 합격을 위해 앞으로 어떻게 공부를 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막막함까지가 모두 나의 부담감이었다. 짧지 않은 수험기간을 지내고 있지만 언제가 되어야 초연한 태도로 시험 준비에 임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최근까지 독서실에 갈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집에 혼자 남아 공부를 해야 한다. 누가 시켜서 공부하는 게 아니다. 그러니 어떤 시선도 내게 쏘아지지 않는다. 분명 아무도 내게 압박을 주지 않는데도, 나는 때때로 눈치를 보게 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실력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살갑게 고쳐주지 못해서 그런걸까. 수영과 공부는 분명 다르구나.’ 부담감은 그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날마다 불어난다. 책을 펼쳤다.


시험의 부담감 때문에 입속으로 물이 밀려들어오는 것 같다. 허우적 거리다가 어느 길 위의 장애물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그러지 않게 뭘 하든지 잘 해야겠다. 방해가 되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펜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심호흡을 했다. 팔을 쭉 뻗고, 고개를 천장으로 들어올리며.


승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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