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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콰드로페니아 Jul 15. 2022

전자책과의 만남

호준

세상에서 몇 안 되는 책 덕후들에게 전자책과 종이책은 아주 고민스러운 문제이다. 전자책을 좋아하는  쪽은 편리함을 강조할 테고 종이책을 좋아하는 쪽은 종이책만의 감성에 호소할 것이다. 나는 종이책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자고로  책이란 사각사각 소리는 내며 한 장 한 장 넘기며 읽는 맛으로 본다고 생각한다. 다 읽었을 때 툭! 하고 책을 덮는 소리도  매력적이다. 책읽기는 눈뿐만 아니라 손과 귀로도 느끼는 감각적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결정적으로 나는 전자책을 읽을 도구가 없었다. 스마트폰을 책을 읽기에 화면이 너무 작았고 짠돌이인 내가 태블릿 PC를 굳~~이 전자책 하나  읽겠다고 살 턱이 없었다. 아니, 그 돈이면 국밥이 몇 그릇이야!? 아이고 아까워라. 세상 사람들에게 관심도 많고 부러운 하는  점도 많지만 태블릿 PC만큼은 부러워하지 않았다. 그걸 보면서 연필로 쓰고 종이로 읽으면 되는데, 라고 생각했다(라면서 이 글은  컴퓨터로 쓰고 있다).
  



내가  있던 공군은 태블릿 PC의 사용이 자유로운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었다. 특히 사용 시간에 제한이 있는 스마트폰과 달리 태블릿  PC는 그러한 제한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태블릿 PC를 가져 오거나 새로 구입하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나는 예외였다.


내게 태블릿 PC가 생긴 것은 재작년 겨울의 일이다. 한 선임이 나에게 쓰던 태블릿은 고작 ‘3만원’에 팔겠다고 제안했다. 


“나 새로운 태블릿 사서 이거 필요 없는데 네가 3만원에 살래?”


3만원? 세상에나 3만원에 태블릿 PC라니! 이건 안 써도 본전이라는 생각이 짠돌이 머릿속을 멤돌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저렴한(?) 유혹이었다. 


“네, 제가 사겠습니다.”


태블릿 PC가 생겼다고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제대로 된 컴퓨터가 없어서 영화를 보기 어려웠던 내게 작은 상영관이 생긴 정도가 이전과의 차이였다. 그로부터 몇 달 뒤 생긴 작은 문제가 나를 전자책의 세계로 끌어 들였다.
  

나는  책을 많이 사는 편이었다. 다른 것은 사면 돈이 아깝지만 책만큼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군대에서 번 돈을 쓸  곳도 마땅치 않았다. 코로나19로 휴가마저 제한되어 돈을 쓸 일도 별로 없었다. 그 남은 돈으로 나는 적어도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구입하였다.


문제는  공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내게 주어진 공간이라고 해봐야 관물함 하나에, 독서실 책상 위에 있는 작은 책장 정도였다. 한 권 두  권씩 모은 책은 어느덧 처치 곤란한 지경에 놓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군대까지 책이 오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기에 원하는 책을  그때그때 볼 수 없다는 단점도 존재했다. 


그때부터 전자책에 관심을 가졌다. 전자책은 자리도 안 차지 하고 원하는 때에 바로바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종이책이 더 좋았지만 당장의 내 상황에는 전자책이 더욱 효율적인 선택이었다. 


전자책은  생각보다 편리했다. 우선, 책의 레이아웃을 자유로이 조정할 수 있었다. 뒷배경을 눈에 편한 검은색이나 베이지색으로 조작할 수  있었고 글자 크기나 글꼴도 내 취향에 맞게 바꿀 수 있었다. 책을 읽다 보면 너무 글자가 작거나 또는 책이 지나치게 커서 읽기  불편할 때가 많았다. 전자책은 그러한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장점이 있었다. 


단점도  있었다. 나는 혜택이나 할인 금액이 큰 곳으로 그때그때 인터넷 서점을 달리 사용했다. 종이책이라면 어느 서점에서 구입하든 상관이  없었겠지만 전자책은 상황이 좀 달랐다. 각 서점마다 어플이 달랐고 이 때문에 이 어플 저 어플 옮겨 다니며 써야 했다. 인터넷  서점 계정에 귀속되는 저작권 보호 장치가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어플로 전자책을 옮기는 일도 불가능했다. 그러다 보니 분명 내가 산  책인데 어째 서점으로부터 빌려 보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좋은 경험이었다.


전역한  이후로는 태블릿을 사용하고 있지 않고 그래서 지금은 전자책을 읽지 않는다. 가끔 100권이 넘게 쌓여서 책장이 감당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 내 서재를 보고 있으면 싹 다 전자책으로 바꿔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책이 빽빽한 책장을 싹 청소하다 보면  반나절이 지나 있고 어지러진 내 방에 눈물이 절로 난다. 하지만 종이책 꺼내는 일보다 태블릿 쓰는 게 더 귀찮은 사람이라서  전자책은 태블릿과 함께 서랍 속에 고이 잠들어 있다.


요즘은  이런 말이 잘 안 나오는 듯한데, 예전에는 전자책이 종이책을 멸망(?)시키는 기술처럼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 종이책을 지켜야  한다는 덕후도 있었고 말이다. 시간이 흘러 전자책이 일정 수준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지 못하며 그러한 여론은 시들해지고 전자책과  종이책이 사이 좋게 공생하는 상황이 되었다. 출판 시장의 상황을 보면 공생이 아니라 그냥 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아예  줄어들었다고 보는 편이 맞겠다.


태블릿보다  깔끔하고 가벼운 이북 리더기를 보면 다시 전자책을 쓰고 싶은 욕심도 들지만 이북 리더기의 가격은 종이책에 비해 영 매력이 없다.  기기 값에 전자책은 전자책대로 또 돈을 들여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또 미래엔 모를 일이다. 손으로 글을 쓰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누구나 다 키보드 자판과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글을 쓰고 있다. 이처럼 언젠가 큰 책장 대신에 작은 이북 리더기 하나가 내  책장 노릇을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 미래도 퍽 괜찮은 듯싶다. 전자기기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내가 전자책과 얼마나  친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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