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계. 안 써질 때
의자에서 일어난다. 기지개를 켠다. 기분 탓이야 하며 휘, 방 안을 몇 걸음 돈다. 닮고 싶은 문체, 인상 깊은 구절을 들춰 본다. 호흡을 가다듬고 의자로 돌아온다.
2단계. 노력해도 안 써질 때
아무리 책을 읽고 아무리 필사를 해도 그 문장이 내 문장이 안 될 때. 하고 싶은 말은 산 더미인데 글이 막힐 때. 흐름이 탁탁 끊겨 앞으로 못 나갈 때. 슬슬 무기력과 화가 겹쳐 올라온다. 배 라도 채우면 좀 나을까 싶어 손에 잡히는 데로 입에 넣지만 돌아오는 건 영감이 아닌 트림이다. 식곤증에 카페인 발도 떨어졌다. 머리는 무겁고 눈은 슬슬 감긴다. 옆에 무심하게 펼쳐진 침대를 째려본다. ‘나 부르지 마.’라고.
3단계. 죽도록 안 써질 때
침대로 뛰어가 몸을 날린다. 온몸에 이불을 감아 뒹군다. ‘잘 까?’라는 유혹이 밀려온다. 슬쩍 감은 눈 사이로 노트북 화면이 보인다. 무생물이 생물처럼 느껴진다.‘이럴 거면 진작 눕지.’라고 비웃는다. 발로 애꿎은 이불만 뻥 찬다. 얼굴을 억세게 비비고 일어난다. 눈 뜨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해 본다. 기껏 해야 세 시간이다. 지난한 글의 전개, 막다른 단어 사용, 얼렁뚱땅 맞춤법. 아무리 화장을 하고 각도 조절을 해봐도 본판은 그대로다. 글에도 사진 찍는 어플이 있으면 좋겠다. 쓰던 글을 다시 본다. 하도 이리저리 궁굴린 탓에 이상한 게 이상하리만큼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썩 나은 모양새도 아니다. 길이가 제각각인 다리 네 짝이 어정쩡하게 선반을 받치고 있다. 이럴 땐 다음을 기해야 한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한다. 한 숨 뱉은 뒤 파일을 닫는다. 다른 글을 열어본다. 일주일 간 묵혔더니 어색한 표현이 좀 보인다. 이게 어디냐며, 속으로 ‘다행이다.’라고 생각한다. 전 보다 보는 눈이 생긴데 감사한다.
지난하게 느는 필력. 상승 곡선을 타기 전 밑도 끝도 없이 질척거리는 직선 구간. 가까이서 볼 땐 분명 위아래로 파닥이며 올라가는데 멀리서 보니 그대로다. 삶이 곧 글이라고 했거늘, 괜스레 귓구멍만 후빈다. 주변에 섭섭하게 하지 않았는지 받기만 하고 베풀지 않았는지 기억을 더듬는다. 그러다 재촉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 화면을 계속 째려본다. ‘나도 작가다’라고 써 놓고 엉덩이를 다시 붙여본다. 글이 나아지길 바라며 타닥타닥 자판을 두들긴다.
사진 : Joanna Kosinska @joannakosins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