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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영 Feb 04. 2020

눈사람 자살사건

지금이야말로, 따뜻한 물에 몸을 녹여야 할 때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은 온수를 틀고 자신의 몸이 녹아 물이 되는 것을 지켜보다 잠이 들었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 최승호


2년 전엔가. 여느때와 다름 없이 자기 전 핸드폰을 보다가 눈에 들어오는 제목의 시를 발견했다. '눈사람 자살사건.' 눈사람이 어떻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 있단 말인가. 자극적이면서도 묘하게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의  조합에, 나는 홀린 듯 시를 읽어내려 갔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나는 몸을 일으켜 책상 위에 앉아, 시 구절들을 공책에 써 내려 갔다. '욕조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올랐다.' 마지막 문장 뒤에 마침표를 찍은 후 한참을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욕조 안인지, 욕조 밖인지.


확실한 것은 지금의 나는 욕조 밖의 눈사람이라는 것이다. 눈코입도, 팔다리도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꽁꽁 언 몸을 녹일 수조차 없는 눈사람.


나는 취업한지 꼭 한달이 되었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에는 내가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왜 잘 살고 있어? 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소위 말하는 '취뽀'에 성공한 친구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며 끊임없이 비참해졌다. 나에게 한 번도 재촉이란 것을 해본 적 없던 가족들 마저도 은근히 소식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점점 조급해졌으며, 이것을 해내야만 한다! 라는 뒤틀린 열정이 생겼다.   


드디어 취업에 성공한 후에는 모든 것이 탄탄대로일 것이라 생각했다. 원하던 직업이었고, 나름 알려진 회사였다. 가족들, 친구들, 애인 모두 나의 취업을 축하했고 서로의 지인들에게까지 자랑을 일삼았다. 출근을 준비하던 일주일동안, 그동안의 긴장이 풀려 내내 앓았으면서도 나는 안도했다. 드디어 나도 남들과 같아진 기분이었다. 남들처럼 된다는 것은 곧 나 역시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길이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는 것. 저들과 다르지 않게 괜찮은 삶을 살며 행복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무엇이 달라졌는가. 한 달동안 내가 배운 것이라고는 선배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띄지 않는 법과, 그러면서도 그들이 원하는 바를 제때 파악해 눈 앞에 가져다 두는 것이다. 이미 자신만의 바운더리를 형성한 그들은 서로의 견고한 성 안에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며 나에게 딱히 가르쳐 줄 것이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실수 앞에선 냉랭해졌다. '내가 지금 너를 혼내는게 아냐' 라는 말 속에는 왜 처음부터 알아서 잘 하지 못하냐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게다가 직업 특성상 야근과 주말 근무까지 피할 수 없었다. 나는 회의 중에 몇 번씩이나 뜨끈해지는 눈가와 콧망울을 매만지며, 죽을 힘을 다해 눈물을 참아야 했다. 일이 힘든 것은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문득 나의 존재를 알아차린 듯, 아 맞아 네가 있었구나? 라는 표정으로 업무를 주는 상사들을 견디기 힘들었다. 사무실 안에서 나는 공기로 만들어진 사람 같았다.


이것이 나의 현 주소다.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더없이 잘 맞고 잘 해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남은 것은 오로지 버텨내는 것 뿐이다. 내가 고작 이 말도 안되게 버거운 현실을 버텨내려고 이만큼이나 달려 왔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나를 괴롭게 했다.  


이런 상황 속, 엊그제 문득 다시 보게 된 시가 바로 눈사람 자살 사건이었다. 그러고보니 마음에 드는 시를 발견할 때마다 공책을 열어 적어두고, 시간 날때마다 들여다보던 날들이 있었다. 나도 한 문장으로 사람을 울리는 작가가 되어야지, 서툴게 다짐했던 날들도 있었다. 2년 전 시린 손으로 펜을 쥐고 써내려갔을 구절을 읽으며 맘 한 켠이 일렁였다.


불쌍한 눈사람. 우리는 눈사람이 추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눈사람은 차가운 눈으로 만들어졌으니까 춥지 않을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이는 그런 당연한 것들을 비틀어 보는 사람이다. 추위에 지친 눈사람이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고 싶을 것이라 생각하는 저 시인처럼.   


웃고 있는 눈사람을 보며 그 너머의 시린 밤을 알아챌 수 있는 사람. 그런 통찰력과 다른 무언가를 지닌 작가가 되어 보겠다고. 따뜻한 물에 몸을 녹여야 하는 눈사람이 되어버린 내가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이러한 마음으로 브런치에 첫 글을 올려본다. 앞으로 열심히 찬 손을 녹여, 흐르는 물이 되어 다른 이들의 마음에 흘러들 수 있는 글을 쓰겠다고. 그것이 오늘 하루를 버티고 버티던 나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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