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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단영 Sep 02. 2020

나인 투 식스? 나인 투 일레븐!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다. 아주 고질적이며 근본적인 문제이나, 나는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영영 찾을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했다. 해답을 찾지 못하고 질문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은 채 이대로 순응하고 자라날까봐.


사회에 첫 발을 내딛은 순간부터 나의 발목을 잡은 것은 어떤 부조리였다. 수당 없는 야근, 주말 출근과 초과 근무 없이는 결코 끝낼 수 없는 업무 같은 것들. 사실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반기를 드는 순간 나는 문제아로 낙인 찍힐 것이 분명했고, 버릇 없는 요즘 애들로 전락하여 사무실의 외딴 바위섬이 될 뿐이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이 시작된 인내는 결국 고통을 불러왔다. 벌써 한 번 이상 실패했다는 사실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잠을 잘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문제인가. 나의 잘못인가. 내가 나약해서, 이 모든 것들을 버텨내지 못하는 것인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밤마다 냉장고와 실외기 소음이 거슬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뒤척이다 보면 어느새 다시 출근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불행히도 혼자서는 단 1시간도 잠들지 못했다. 누가 옆에 있어야만, 꾸역꾸역 베개 밑에 손을 받쳐 넣고 잠에 들었다.


고민 끝에 이야기를 꺼내자 상사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말했다. 어느 회사든 이렇게 돌아가. 이것 하나 못 버텨서 앞으로 사회 생활을 어떻게 하려고 그래?


놀랍지만 이 이야기들은 모두 현재 진행형이다.


나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 당면했다. 이들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위험 경보가 울렸다. 그렇게 말하는 상사는 정작 소위 말하는 '칼퇴'를 하고 있었다. 상사는 내게 시간 분배가 어려우면 집에 가서 업무를 이어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모두가 바쁜데 혼자만 내빼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나인 투 식스. 텐 투 세븐. 이런 말들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만들어져 사용되고 있는 것일까. 정작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실현하는 채 사용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텐데 말이다. 정해진 업무 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임했지만 태풍처럼 몰려 오는 일들을 결국 끝내지 못해 나홀로 재택근무에 돌입하며 주말까지 반납하고 애썼던 모습들이 상사의 눈에는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네 사수는 주말에도 출근해 일하고, 일하다가 쓰러질 때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너는 대체 뭘 한다고 그렇게 부담을 느끼니? 마스크 위로 보이는 상사의 눈이 내게 그렇게 묻는 것 같아, 나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불면의 밤이 지속되며 두려움이 커져 갔다. 특히 상사의 저 말들이 뇌리에 박힌 채 나를 잠 못들게 하는 일에 일조하고 있었다. 상사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미련 덩어리가 되어 마음 속 한 구석에서 굴러다녔다.


내 인생에 대해 걱정해야 할 사람은 나 뿐이라는 것. 내가 일구어낸 작은 사회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사람 역시 나 뿐이라는 것. 제 사회생활입니다만, 제 사회입니다만. 뱉어내지 못한 말들을 한숨처럼 토해내며 침대 위를 뒹굴고 있다.


이제 막 취업을 시작한 모든 이들이 같은 고민을 하며, 같은 걱정에 잠 못 이루며, 숱한 밤들을 지새우고 있을 것이다. 내가 나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들을 이제는 이곳에라도 풀어내려 한다. 잘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잘못한 것은 없다고. 밤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하고 답답해 우는 것이 나 자신 때문은 아니라고.  너무 깊이 좌절해 있지 말아라, 실패한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알아가는 단계라고 말이다.  


부당한 일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옳은 일이다. 다수가 옳다고 해서 그 일이 무조건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만의 작은 사회를 경작하고, 부풀려 나가며 이러한 당연한 사실들은 쉽게 거름으로 쓰인다. 사람들은 아주 당연한 진실들을 은폐하며, 또 다른 부조리를 키워내 그것을 양분 삼아 내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 속삭인다. 나는 그 작은 속삭임에도 귀 한 번 제대로 막지 못하고 괴로워 한 것이다. 속삭임이야 더 큰 목소리로 막아버리면 되었는데도!


침묵한다면 발전은 없다. 변하는 것 또한 없을 것이다. 나인 투 식스라고요? 나인 투 일레븐이겠죠! 나는 이제 그들에게 일갈하려 한다. 나인 투 일레븐의 세상으로 더 이상 누군가를 초대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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