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석하게도 요즘의 나에겐 진정으로 쉬는 날이 몇 없다. 일주일의 5-6일은 본업인 카페직원으로 살고 있고, 카페직원으로서 쉬는 날엔 아이폰 스냅 작가로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서 몇백 장의 사진을 찍고, 결혼식이 끝나면 사진들을 편집해서 업로드까지 마쳐야 한다. 스냅촬영 예약이 매주 잡혀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약이 없는 날과 퇴근 후 남는 시간에는 또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아주 소박하게 활동 중이다.
매주 수요일에는 독서모임을 가야 하니까 틈틈이 책도 읽어야 하고, 일주일에 2-3번 정도는 퇴근 후 요가원에서 수련도 해야 하니 진정으로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은 사실 하루에 몇 시간 안 되는 셈이다.
나도 내가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틈 없이 일한다고 엄청난 수입을 올리는 것도 아니면서 나는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는 걸까.
지난달에는 아무런 스케줄 없이 하루가 통으로 비는 날이 딱 하루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나는 그날을 ‘슈퍼선데이’로 명명하고, 무엇을 하면 좋을지 한 달 전부터 생각했다. 사실 집에서 그냥 푸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서 먹고 싶을 때 먹는 느리고 정적인 하루를 보내면 진정으로 쉬는 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사실 누구보다 정적이고 게으르게 하루를 보낼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M에게 나의 슈퍼선데이를 함께 보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우리는 그날 아침 일찍 만나 청남대로 나들이를 갔다가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저녁엔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알차게 시간을 보내고 귀가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잠들기 전에 생각했다.
‘내일 딱 하루만 더 쉬는 날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종일 누워만 있을 텐데.’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딱 하루의 휴무가 더 주어진다 하더라도 나는 또 무언가를 하거나 옷을 챙겨 입고 바깥으로 나갈 거라는 것을. 가끔은 나의 뇌와 몸을 아무것도 안 하고 쉬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보내온 지난날의 휴일들을 떠올려보면 하나도 좋은 기억으로 남은 하루가 없다. 오히려 굉장히 후회스럽고,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것 같아 알 수 없는 죄책감마저 든다. 조금은 피곤하지만 휴일에도 살짝 일찍 일어나서 누군가를 만나거나 함께 짧은 여행을 다녀보는 일, 아니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근교로 드라이브를 가는 일, 평소에는 쉽게 가기 힘들었던 자연과 가까이 있는 카페에서 가만히 책을 읽고 돌아오는 시간을 보낸 날이 더 기억에 오래 남고, 다가올 출근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니 내게 진정한 ‘쉼’이란 좋은 기억을 만드는 일에 더 가깝다.
본디 나는 게으른 성향을 갖고 있다. 가만히 한 군데 앉아있는 것도 잘하고, 멍 때리는 일도 정말 잘한다. 그래서 해야 할 과제나 미션이 주어지지 않으면 밥도 먹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종일 쇼츠나 보고 있을 내 모습이 너무도 쉽게 그려진다. 어릴 때 아빠가 주말이면 가만히 누워서 티비만 보고, 그러다가 잠들고, 식사가 차려지면 밥 먹고 다시 누워 티비를 보다 잠드는 모습을 지금은 뼈저리게 공감하고 있달까. 물론 그렇게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휴일도 필요하겠지만, 바깥으로 나가 계절을 느끼고 제철을 찾아다니는 휴일이 조금 더 삶의 원동력을 준다는 사실을 이제껏 보낸 휴일들을 통해 알고 있다.
슬프게도 요즘은 다양한 사이드프로젝트 덕분에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한 휴일조차 많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어쩌면 ‘휴일’이라는 단어가 예전보다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동안에는 5일 정도 기다리면 알아서 찾아오는 날이었다면 요즘에는 스케줄이 적힌 달력을 꺼내 얼마나 기다리면 하루가 온전이 내 시간이 되는 날이 오는지 손으로 집어가며 찾아가는 설렘에 가깝달까. 그리고 언젠가는 할 일이나 과제들이 있더라도 계절과 제철을 느끼는 곳으로 가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일을 하며 사는 삶 말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쉼과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지금은 본업을 하며 한 달에 한번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에 내 삶이 많이 기대고 있다. 그런데 그 본업이 너무나 공간에 얽매여있고, 스케줄 조정도 되지 않고, 휴무도 너무 적고, 함께 의견을 나눌 동료도 없고, 일의 범위가 너무 넓은데 급여는 좀 귀여운... 하긴 단점을 찾으려면 끝도 없이 찾아지는 게 또 직장의 특징이긴 할 테지.
나는 지금 나를 너무 못살게 굴며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모든 괴롭힘들이 씨앗이 되어 풍성하고 비옥한 밭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때가 오면 풍성하고 비옥해진 내 안에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쉴 수 있게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