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알려만 주시면 다 할게요.
용궁동자가 자료를 찾아서 올리자 모두들
열심히 분석한다.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서로를 바라보며 좌. 우로 고개를 젓는다.
명도 동자가 풀피리 불듯 휘파람을 불자
이내 제자가 들어온다.
" 이번엔 소용없어. 아무리 봐도 복을 지은게 없어. 뭘 어떻게 해주려야
해 줄 게 없어. "
명도 동자의 말에 제자가 시무룩하다.
"그래도 방법이 없을까요..? "
제자가 묻자
"아무리 사정하고 빌어도 이번엔 안 되겠어.
해줄 수 도 없지만 해 주고도 나중엔
좋은 소리 할 사람이 아니야.
이 선에서 끝내. 그게 좋아."
제자가 다시 묻는다.
" 그래도 그 아들이 시험에 그렇게
많이 떨어졌다는데 딱하잖아요.
다시 보면 뭐라도 해줄 명분이 있지 않을까요..? "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던 천상동자가
벌떡 일어서며 말한다.
" 아니, 시어머니 유품도 팔아먹고, 어 또 뭐야 , 남겨준 과수원이랑도 죄다 팔아먹고 , 조상을 위해서는 제사도 아무것도 안 하고, 욕심이 많아서 남에게 콩 한쪽도 나눠줄 줄 모르고, 말은 많아서 온갖 남 뒷소리는 다 하고 다니고, 덕이라고는 눈 씻고 보려야 없는데 뭘 어쩌라고.
그리고 조상 영가랑 합의해서 조상이 마음을 열고 도와줘야 하는데, 이미 조상이 등을 돌린 지 오래야. 그러니까 14번이나 같은 시험에 떨어지지. 그리고 혹여라도 도와주면 잘 할거 같아..? 뒤에서 제자
욕이나 안 하고 다니면 다행일 텐데.
우리를 작은 절이라고 무시하다가 정 안되니까 속는 셈치자 하고 한번 온 거니까 신경 끄고 잘 마무리해서 보내."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버린다.
할 수 없이 신당을 나와 S군의 어머니가 기다리는 방으로 다시 돌아오니 손을 모아 들고 사정을 한다. 합격도량이라고 소문 들었다며 서울대며 각 고시며,
각종 힘든 공무원 시험에 많이 합격시킨 걸 알고 있다면서 우리 아들도 한 번만 도와달라고 사정한다.
전체적으로 여성 치고는 큰 체형에 두 눈이 튀어나와 눈자위가 불룩하고
양 볼이 사탕을 문득 부풀어 있다.
합장하듯 들어 올린 두 손도 손가락 하나하나가
굵고 두툼하니 크다.
그에 반해 양 옆으로 길고 얇은 입술은 한쪽으로
비뚤어져 올라가 있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덕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나 어쩐다. 내 집에 찾아온 손님이고 무엇보다 자식일이 아니던가...
착한 제자가 마음 약해 얼른 말을 못 한다.
고심 끝에 한다는 말이
" 사흘만 있다가 다시 오시지요."
알았다고 하고 손님이 돌아가자마자
소리도 없이 명도 동자가 들어선다.
" 아 마무리하고 보내라니까 왜 다시 보자고 해..? 뭐 사흘, 해 줄게 없다니까.? 이번엔 아무리 졸라도 소용없어." 말을 마치고 휙 돌아서 사라진다.
잠시 후에 제자가 다시 신당으로 들어가 앉는다.
" 대체 아들이 왜 자꾸 시험에 떨어지는 거래요. 엄마한테 듣자 하니 똑똑하고 공부는 잘하는 거 같은데 꼭 한 두 문제 때문에 떨어진다고 하네요.
이유라도 알려주세요."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은 제자에게
대꾸도 하기 싫은 듯 말이 없다.
보다 못한 꽃 선녀가 나선다.
" 그 손님네의 시아버지가 평생을 일궈 만들어놓은 과수원을 잘 돌보겠노라 했지만, 돌 보지 않아서 과실나무도 거의 다 죽게 망가뜨렸다가 결국은 헐값에 팔아 버렸어요. 거기까지도 그렇다고 해요.
과수원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니까. 그런데 시어머니, 그니까 그 S군의 할머니가 유품으로 남긴 금반지를 돌아가시면서 내겐 특별한 것이니 죽어서도
간직하고 싶다고 묘에 합장해 달라고 했는데
그 유언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았어요. 게다가 얼마 지나서 그 금반지를 다른 패물들이랑 같이 팔아버렸고요. 또 약속했던 조상 제사도 안 지내고요. 명절 때도 차례도 안 지내고요. 산소 한 번을 찾지도 않고, 돌보지도 않으니 조상들이 아무리 내 자손이라 해도 너무 하니 등을 돌려버려서 자손이 되는 일이 없는 거예요. 아마 머지않아서 오늘 왔던 그 손님도 계속 그렇게 조상을 몰라라 하고 살다 간 왼쪽 다리를 크게 다치게 될 거예요. "
꽃 선녀가 나긋나긋 설명하니
명도 동자가 눈을 부릅뜬다.
그런 말은 왜 해주냐고...
그럼 이유를 설명해 주고 앞으로 잘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도와주면 어떠냐고 제자가 묻자
다시 선녀가 말한다.
" 소용없어요. 어떻게 어떻게 힘들게 합격시킨다고 해도 자기들이 잘해서 또 자기 아들이 똑똑해서
합격했다고 할 사람이지 제자가 고생하고 신명이
영험해서 성불했다고 할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약속하라 하면 당장 급하니까 눈앞에선 약속하겠지만 지킬 사람도 아니랍니다. "
"그런데 그 아들이 불쌍하고 딱하잖아요.
얼마나 하고 싶으면 회계사 시험을 14번이나
봤겠어요. 그 정도면 포기할 만도 한데."
제자의 말에
" 아니 두 개 틀려서 안되니까 다음번에는 될 거 같고 , 그러다 또 하나 틀려서 떨어지니 또 해보면 다음엔 될 거 같고... 차라리 성적이 아예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될 듯, 말듯 하니까 포기를 못하고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온 거지. 그리고 그 공부만 오래 하다 보니 다른 거에 도전할 엄두도 안 나고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 온 거야. 근데 안돼. 딱해도 할 수 없어."
답답하다는 듯, 명도 동자가 대답한다.
오늘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어 제자는 방을 나온다.
주방으로 와 컵에 믹스커피 두 개를 컵에 털어 넣고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를 타서 방으로 들어오더니 좌탁 앞에 앉아서 표정이 심각하다.
정작 커피는 식어가는데 마실 생각은 안 하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이다.
신명님들이 저리 단호하시니 어쩐다.
'약속한 사흘은 금방 지나갈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