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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지 Jan 30. 2024

배려하는 것을 즐겁게 만들어주길

   

핀터레스트


배려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는 것,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것이다.

배려가 그들의 권리가 되는 순간 관계를 끊거나 거리를 두게 된다.

내 배려가 즐거움으로 오래 유지될 수 있는 배려가 있길 바라며 머릿속을 맴도는 불편함을 글로 풀어낸다.     


부모님 특히 엄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손 윗 시누이가 네 명이다.

남편은 누나들과의 관계가 아. 주. 돈독하다. 매일 통화를 하고 모르는 게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나와의 관계도 그럴까?

경험이 있다면 벌써 숨 막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예상대로 여러 입의 힘으로 마음이 힘든 시기가 있었고, 지금도 아주 가끔은 무거워질 때가 있다.

건강을 위해 모르는 듯 관심 없는 듯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살기로 한지 7년째다.

다행인 건 ‘당신이 너무 예민한 거 아냐?’에서 ‘우리 가족이 좀 힘들지, 당신이 많이 힘들었지’로 바뀌었다는 거다.

    

4년 전 30분 거리에 살던 부모님은 건너편 대학병원과 연계된 실버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이제 80대 중후반의 된 부모님은 다행히 건강하다.

시어머니 역할을 자주 했던 어머니는 치매초기진단을 받았고 약을 먹으면서 나의 아주 작은 노력에도 고마워하는 분으로 바뀌었다. 매일 전화를 요구했던 분이 일주일에 한 번 찾아뵈어도 반갑게 맞아주고 좋다는 표현을 자주 한다.

서운함과 미움이 이름 모를 사랑으로 바뀌었다.

‘옆에 있어 애미에게 너무 부담을 줄까 봐 걱정이다. 부담 안 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라던 아버님 말씀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7년 전 나는 15년 차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를 내려놓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나는 며느리일 뿐이다. 효도는 셀프다. 욕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나는 나로 살기로 했고 이것은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경계선이 없는 집안에 철통 같은 경계선을 1년간 세웠다. 2년의 마음 단단해지는 노력으로 내 생각을 말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 건 감사하고 싫은 건 싫다. 내 의지대로 베푼다.     


어머니가 치매진단을 받자 외국에 사는 시누이 둘은 일 년에 한두 번씩 들어왔고 코나로도 무색하게 한두 달씩 머물렀다. 옆에 사는 우리는 아니 며느리는 쉽지 않았다.

모이는 횟수가 잦아지고 피곤함이 늘었다.

이 또한 오래 함께하려면 내가 먼저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리 안내 없이 잡힌 모임에 내 스케줄이 먼저였고 식사만 하고 먼저 나오기도 했다.    

 

실버아파트에는 식사할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어머니가 살림에 손을 놓았기에 저염식의 식사를 그곳에서 해결한다.

외국에서 들어오는 시누이들에게는 집반찬을 만들어줬다. 한 번씩 집으로 초대해 식사대접도 했다.

사실 시누이들은 음식솜씨가 없다. 맛집을 찾기에 입맛은 최고다. 참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어찌 되었든 집밥을 해주는 것이 그들을 위한 나의 배려라고 생각했기에 선택한 방법이다.

다행히 음식 하는 것을 즐기고 꽤 솜씨도 있다. 그런데 하고 싶을 때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만들어주는 메인메뉴의 음식과 서브 음식들도 아주 맛있게 잘 먹기에 자주 해줄 수도 있지만 피곤한 일이기에 한두 번으로 멈춘다.   

  

시누이들이 유럽여행을 위해 모였다. 일본에 사는 막내시누이는 2주 전부터 들어왔다.

가을에 한 달간 왔다 갔고 세 달 만이다. 그 사이 부모님과 우린 일본여행도 함께했다.

여행 떠나기 전 어제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친정아빠의 건강문제로 맘이 무거운 상황이었기에 미루고 미루다 가졌던 자리였다.

간단하게 차돌박이와 깻잎 곁들인 들기름막국수와 닭봉조림을 준비해 밑반찬과 차려냈다.

모두 맛있게 먹어줘서 고마웠다. 술 한잔과 커피로 마무리하고 김치 한 포기를 챙겨갔다.

그런데 시누이 말이 배배 꼬여 들린다.

‘음식솜씨가 좋아. 맛있어. 한 달에 한 번이라도 부모님에게 해주면 안 돼?’     


옆에 살기에 자주 들여다보고 안부를 묻는 것도 우리 역할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아파트 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한다.

제사며 명절도 내가 지낸다.

그리고 내 부모가 건강이 안 좋아 기분이 우울함을 알렸다.

그럼에도 당신이 와있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다.

그냥 감사히 생각하고 입은 닫으면 안 되는 건가.

꼭 그렇게 시누이 역할을 하고 싶은 건가.

한 나라에 살면서도 내 부모는 당신보다 자주 못 찾아뵙는다.

와있는 동안 딸역할만 하고 가면 안 되는 건가.

어느 순간 올 때마다 해줘야 하는 반찬이 의무가 되었다.

이제 식사대접도 그렇게 되어간다는 생각이다.

시누이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순간 나는 안 하는 며느리가 된 것 같아 불쾌감이 들었던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은 못 해도 가끔은 해보도록 하겠다. 귀찮아져서 요리 자주 안 한다며 말에 거스르겠다는 표현을 했지만 맘이 편하지 않았다.

배려가 권리가 되고 의무가 되면 오래가지 못한다.     


남편은 고마움을 설거지로 대신한다.

그러나 못 내 한마디 안 도와준 게 이해는 되면서도 서운하다.

과거의 기억을 내려놓고 현재의 감정만을 느끼며 살기로 했다.

알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볼 수 있는 시누이다.

서로 노력하는 거다. 나만의 노력은 아니라 믿는다.

올 때마다 남편과 아이들의 선물은 챙기지만 내것은 따로 없다.

나는 딱 이 정도의 관계이고 싶다. 찾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관계가 복잡해지고 여러 감정들에 피곤함도 많다. 누군가의 희생을 대가로 평화로워짐을 선택하면 안 된다는 것을 오래전 느꼈기에 선택도 내 맘이어야 한다. 그래야 즐겁게 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다.

내 배려가 즐거움으로 유지될 수 있는 배려가 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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