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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수진 Dec 08. 2021

화날 때 읽으면 좋은 동시

초록을 되찾는 비법/ 동시집 <책 알레르기> (추수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에 화가 나면 얼굴색이 확 변하는 아이가 있다.

사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이 아이는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다 드러난다.

“우리 축구해요!”

아침 운동 시간에 기분이 좋아서 소리치다가도

친구들이 자기 맘대로 안 따라주면 금방 구석에 가서 혼자 서 있는 아이.

얼굴에 ‘나 지금 화났어!’라고 커다랗게 써 붙이고 있다.


“카멜레온이 자꾸 나오는구나.”

나는 아이를 혼내는 대신 씩 웃으며 말했다.

“네?”

아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묻는다.



“우리 안에는 청개구리도 살지만 카멜레온도 산단다. 카멜레온은 기분에 따라 색깔이 변하거든.

기분이 좋으면 초록색이 되거나 환해지고, 힘들면 회색이 되고, 화가 나면 검은색으로 변하지.

싸움에서 이기면 색이 밝아지고, 싸움에 지면 색이 칙칙해져. 부끄러우면 빨갛게 변하는 애들도 있단다.”

“정말요?”

아이는 화내던 일도 잊고 카멜레온이 궁금해져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래.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카멜레온이 자꾸 밖으로 나오면 얼굴이 기분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홱홱 변하는 거야. 그럴 때 읽으면 좋은 동시가 있단다. 좀 있다 수업 시간에 같이 읽어볼까?”

아이는 카멜레온처럼 얼굴이 금세 환해져서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는다.





초록을 되찾는 비법 

                                             추수진


카멜레온이라고 늘 알록달록한 건 아냐
나도 화가 날 땐 속에서 불이 나
속이 타다 겉까지 까매져 버리고 말지

그럴 땐 가만가만 태양을 기다려
바삭한 햇살을 훅 들이켜면
까칠한 등과 배가 간질간질 금빛으로 데워져

그러면 나는
따뜻해진 귀를 활짝 열고 기다리지

초록 초록
풀잎을 흔드는 소리를 따라가
폴짝거리는 초록을 향해
길고 끈끈한 혀를 쭈욱 내밀지

꿀꺽,

머리부터 꼬리까지 온통
행복한 초록이 되는 건 시간문제야


-동시집 <책 알레르기> (보림 출판사) 


국어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이 동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날 때 속이 까맣게 타는 건 여러분만 그런 게 아니에요. 카멜레온도 그래요.

그럴 때 카멜레온은 뭘 할까요? 음, 카멜레온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지요.

따뜻한 햇살을 가만가만 기다리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폴짝거리는 초록을 꿀꺽 삼키죠. 폴짝거리는 초록이 뭘까요?"

"메뚜기요."

"사마귀요."

"방아깨비요."

아이들이 카멜레온이 되어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화날 때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요?”


아이들이 번쩍 손을 든다.

“침대에서 뛰어요.”

“배 터지게 먹어요.”

“신나게 놀아요.”

“책을 읽어요.” “동시를 읽어요.” (오, 역시 내 제자들!)

“파란 하늘을 봐요.” (시인 탄생~)

“비 오면 어떡해?”

옆 친구의 찬물 끼얹는 질문에 방금 탄생했던 시인이 까만 카멜레온으로 변하려는 순간, 내가 살짝 끼어든다.

“비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도 있지.”


아이들이 또다시 손을 들고 자기만의 비법을 풀어놓는다.

“화가 날 땐 그냥 울어요. 울면 마음이 풀어져요.”

“자전거를 타요.”

“맑은 공기를 마셔요.”

“산에 가요.”

“행복한 일을 생각해요.”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나는 햇살을 쬐고 있는 카멜레온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아이들은 종종 나를 까맣게도 만들지만, 이렇게 금방 다시 행복한 초록으로 만들어준다.



카멜레온은 빛의 세기나 온도에 따라서 몸의 색깔이 변한다.

빛이 강하고 온도가 높아지면 색이 짙어지고, 온도가 낮아지면 색이 흐리고 옅어진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햇빛을 못 봐서 창백해진 얼굴이랄까.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기분에 따라 몸의 색깔이 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카멜레온은 싸움에서 졌을 때나 두려움을 느낄 때는 피부 색소가 축소되어서 어둡고 우중충한 색으로 변하고,

싸움에서 이겼을 때는 피부의 색소가 팽창해서 밝고 화려한 색으로 변한다.(내가 이겼다!)

그리고 화가 나면 검은색으로 변한다.(속이 탄다, 타!)


나는 속이 탈 때는 까매진 카멜레온이 햇볕을 쬐며 나뭇가지에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동시를 읽는다. 


http://aladin.kr/p/J4ol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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