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로 돌아가기 싫다 생각하며 고개를 올랐고, 와, 집이다! 설레며 고개를 내려오던 그때가 불현듯 생각났다. 하늘과 그 고갯길과 울긋불긋 가을이 묻은 나무들 사이를 지나오며 간만에 추억에 잠길 수 있어 좋았다.
남편도 그립고, 이젠 정말 아이들에게 조금씩 기대고 의지할 때가 된 건가 싶기도 해서 많이 든든하고 또 아주 조금 우울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하되 아이들에게 내 몸을 맡기거나 도움을 청하게 되는 상황을 너무 애써 피하거나 서글퍼하지는 말자. 되어지는대로ᆢ
집[입주 5개월차 신축아파트]으로 돌아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어쨌든 <자전거 여행> 속 김훈의 관점에서 보자면 난, "더 이상 인간의 편이 아닌 공간에 스스로 강제수용되어 한평생의 월급을 쪼개어 은행 빚을 갚아야하는, 마음 속에 찬 바람이 부는" 그런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 공간이 좋다. 되도록 오래 깔끔함을 유지하고 싶을만큼ᆢ
그리고 한마디 꽥 하자면, "오래된 살림집"의 그 구가(舊家)로서의 면모는 무수한, 티도 나지 않는 여성들의 대를 이은 노동에서 탄생한 것이라는 사실! 멋만 있고 그 숨은 노동에 대한 언급은 없다. 새 아파트는 여러 면에서 여성들의 가사노동을 줄여준다. 시스템과 과학의 이름으로ᆢ진보와 발전의 이름으로ᆢ 옛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옛것의 고풍스러움을 유지하며 그 방식대로 살아가자면 바탕에 깔고 들어가야 하는 것이 바로 값없이 치부되는, 헤아릴 수 없는 여성의 희생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어머니! 종부! 며느리!
이 편리함과 심플함을 누릴 거다. 아끼고 윤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면서ᆢ
내일 아침에는 사과를 좀 깎아서 출근길에 먹어야겠다. 통깁스 환자 대신 출근길 발이 되어주는 언니와 함께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