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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승원 Sep 26. 2021

다 같은 돼지가 아니다.

이베리코, 난축맛돈, SGP, 그리고 버크셔 K

 돼지.


 우리에게 참 가까운 가축이고, 참 정겹고 맛있는 식재료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돼지보단 소가 고급이라는 인식도 생겨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종에 대한 연구와 관심에 소 못지않은 고급 돼지 품종들도 우리 식당에 많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돼지가 다 돼지 아닌가?라는 생각을 지우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접 돼지 4가지 품종을 먹어보고, 간단한 후기와 생각을 적어보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먹어본 품종들은 총 4가지로, 이베리코 베요타, 버크셔 K, SGP, 난축맛돈입니다. 이 네 가지 품종을 먹어보며 느낀 점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다만 본 고기들은 다른 가게, 다른 두께, 다른 그릴링, 다른 숙성을 했으며, 일부는 다른 부위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본 글의 목적도 엄밀한 맛의 분석보다는 여러 돼지 품종을 알리고 가벼운 후기를 전달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저도 사람인지라 취향과 같은 주관적인 부분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에 이 글을 토대로 종의 특징을 확정하시거나 단정 짓기엔 무리가 있고, 참고용으로 가볍게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또한, 이 글에 등장하는 식당들로부터 어떠한 대가나 금전적 이익을 취하지 않았음을 미리 공지드립니다.





1. 이베리코 베요타


 '이베리코는 알겠는데, 이베리코 베요타는 뭐야?'라고 생각하는 분이 꽤 많이 계실 것으로 추측합니다. 몇 년 전 이미 이베리코 열풍이 한번 불었었습니다. 무한리필 식당에서 대부분 한 번쯤 접해보셨을 것이고요. 다만 우리가 무한리필 식당에서 접해본 이베리코를 이베리코의 맛이라고 보기엔 약간 무리가 있습니다. 이베리코 돼지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라 혈통, 기르는 환경, 사료 등으로 등급을 나누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한리필 식당에서 접해본 이베리코 돼지들은, 일반화 하긴 어렵지만 대부분 제일 낮은 등급인 세보(cebo)라고 합니다. 그 위는 중간 등급인 세보 데 깜보(cebo de campo)가 있고, 최상위에는 베요타(bellota)가 있습니다. 이 베요타 등급은 순종 이베리코를 17개월 이상 키워 도토리를 먹이며 자연방목을 한 돼지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이베리코 베요타 등급 돼지의 목살을 맛볼 수 있는 연남동의 '연남 제비'로 가보았습니다.




이베리코 베요타 목살과 제주 오겹살


 보시다시피 굉장히 두툼하면서 마블링이 굉장히 골고루 퍼져있습니다. 이베리코 삼겹살은 없을까 해서 여쭤봤는데, 맛이 별로라서 목살만 취급한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사진상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꽤 육색이 진합니다. 소고기가 생각나는 색이었습니다.




 이곳은 원육도 참 좋았지만, 서버분들의 그릴링 솜씨, 그리고 입담이 참 좋았습니다. 정말 맛있게 익히는 솜씨도 좋았고, 손님을 편하게 해주는 분위기를 잘 조성하신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 익은 목살의 모습입니다! 첫 입을 먹었을 때 드는 식감은 '굉장히 부드럽다'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 미디엄 정도로 구워져서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평소 흑돼지나 일반 돼지보다도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베리코 특성상 냉동육일 수밖에 없을 텐데, 굉장히 식감이 부드러웠습니다. 그리고 아까 마블링에서도 보셨듯, 씹으면 씹을수록 지방감이 굉장히 풍부하단 느낌을 줍니다. 이베리코의 키워드를 꼽자면 '풍부한 지방'입니다. 다만 기존 후기들에서 특유의 도토리 향이 난다, 기름 향이 난다는 후기들을 보았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부분들은 느끼질 못했습니다.




 특유의 향은 찾지 못했지만, 비싼 가격대와 높은 명성답게 충분히 맛있는 고기였습니다. 이베리코 베요타가 17개월 이상 크면서, 일정 맛을 농축할 기회를 담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돼지 중 이렇게 길게 돼지를 키우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한국의 품종을 베요타처럼 오래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굉장히 기름지고, 진하게 고소한 풍미가 인상적인 '이베리코 베요타'였습니다.





2. 난축맛돈


 난축맛돈은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이 있으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난축맛돈은 '난지 축산에서 만든 맛있는 돼지'의 줄임말입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돼지 품종은 YLD라는 품종인데요, 이 품종을 잡을 때마다 로열티를 외국에 지불해야 합니다. 농가의 부담을 줄이고, 우리의 우수한 흑돼지 품종을 개발하기 위해 '난축맛돈'이라는 돼지 품종이 개발되었습니다. 난축맛돈의 경우에는 근내 지방 함량이 일반 돼지보다 약 4배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양돈 농가가 골치를 앓고 있는 뒷다리(후지) 처리 문제를 구이용으로도 충분히 기름진 난축맛돈의 사육두수를 늘이고, 뒷다리를 구이용으로 판매하면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캠핑용으로 등심과 갈비 부위를 같이 판매하는 난축맛돈 뼈등심(돈마호크)도 많이 판매하던데, 사육두수가 늘어나면 난축맛돈의 등심을 활용한 카츠 집도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난축맛돈은 수유의 '겹'에서 팝업 스토어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난축맛돈 오겹살


 껍데기까지 포함된 난축맛돈 오겹살입니다. 다른 품종보다 지방 부분이 많아 보이는데요, 아직 사육두수가 적어서 지방에 따라 삼겹살로 정형해야 하는 것과 오겹살로 정형해야 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기는 밝은 느낌보다는 좀 진한 붉은색을 띤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름기가 워낙 많아 구워지는 동안 불쇼가 조금 있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고기 중에서 가장 명확한 특징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압도적인 치감'이 바로 난축맛돈의 특징입니다. 삼겹살이 목살이나 여느 부위에 비해 훨씬 쫄깃한 식감을 느낄 수 있는 부위이긴 하지만, 일반 백돼지나 타 품종들과 비교를 해도 난축맛돈의 삼겹살은 굉장히 쫄깃합니다. 부드러움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난축맛돈의 삼겹살에 의문부호를 가질 수 있지만, 압도적인 쫄깃함을 기대하는 분들은 아주 선호하실 만한 식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흑돼지 계열 특유의 껍데기 쫀득함과 난축맛돈의 식감이 합쳐지니 제법 재밌었습니다. 기름기도 충분히 있어서 고소한 맛이 있었지만, 워낙 식감이 독보적이었던 '난축맛돈'이었습니다.





3. SGP(Super Golden Pork)


 SGP는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YBD, 얼룩도야지 등의 이름이 있는데요, YBD라는 글자를 어디선가 보신 듯한 기분이 드실 수 도 있겠습니다. 위에서 일반 돼지를 설명할 때 사용한 YLD 단어랑 굉장히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YLD부터 설명을 드리자면, Y(요크셔, Yorkshire) L(랜드레이스, Landrace) D(듀록, Duroc)을 삼원 교배한 품종입니다. 세 품종의 장점을 합쳐 교배한 종이 바로 YLD인데요, 뛰어난 맛을 가지고 있는 B(버크셔, Berkshire) 품종을 랜드레이스 대신 교배하여 만들어낸 품종이 YBD이자 지금 소개해드릴 SGP라고도 불리는 품종입니다. SGP는 사육 두 수가 적고, 현재 우리나라 돈육 생산량 중 0.3%에만 해당되어서 전문으로 다루는 식당이 아니면 먹기가 어렵습니다. SGP를 맛보러 신도세기 종로점으로 가보았습니다.



 

SGP 목살과 삼겹살


 SGP 목살과 삼겹살입니다. 제 주변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 가장 시각적인 부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고기답게 붉은 색감이 입맛을 돌게 하고, 지방의 분포도 고루 되어 있습니다.




 SGP 목살은 개인적으로 기름지긴 했지만, 이베리코를 먹었을 때만큼의 풍부함에는 약간 못 미친단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베리코 목살보다는 약간 좀 더 치감이 있어서 , 식감을 중시하시는 분들은 SGP 목살을 드셔 보셔도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삼겹살의 경우 적당히 기름기 있고 치감은 일반 백돼지와 비슷했던 정도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SGP는 엄청난 특징성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찬가지로 맛있는 고기였습니다. SGP까지 먹으면서 든 생각은, 고기 수준들이 정말 다 높단 점이었습니다. 제가 소믈리에급 미각을 갖고 있진 않은 덕에 블라인드로 가려낼 수는 없지만, 고급 품종에 가게별 숙성과 그릴링을 더하면 일종의 맛의 보증 수표 역할을 할 수 있겠단 느낌을 받았네요.





4. 버크셔 K


 이제 마지막 품종, 버크셔 K입니다. 아까 버크셔라는 품종은 이제 알게 됐는데, 버크셔 K는 또 뭔가 싶을 수 있겠습니다. 버크셔는 본래 영국 품종인데요, 박화춘 박사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버크셔를 한국에 맞게 개량해 지리산에서 키운 돼지를 버크셔 K라고 합니다. 버크셔 K의 사육 두 수도 아직 아주 많은 편은 아니지만, 나름 보편화된 품종 중 하나라 버크셔 K를 활용한 카츠도 현재 굉장히 많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본래 버크셔 K를 서울의 식당에서 먹기는 쉽지가 않은데요, 난축맛돈과 마찬가지로 수유의 겹에서 연 팝업 덕분에 맛볼 수 있었습니다.





버크셔 K 삼겹살


 버크셔 K의 삼겹살입니다. 마찬가지로 단면의 마블링이 정말 이쁩니다. 전체적으로 오늘 소개드린 고기들 다 선명한 붉은 기를 띄었던 것 같습니다. 필자는 삼겹살 지방의 분배는 버크셔 K가 가장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느꼈습니다.




 껍데기 부분은 역시 쫄깃함이 있었고, 고기 부분에도 식감이 제법 있었습니다. 다만 난축맛돈 보다는 치감이 적고, 일반 백돼지보다는 약간 더 식감이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버크셔 품종 자체가 원래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버크셔 K로써 우리나라에 맞게 개발되면서 식감적인 특징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았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난축맛돈 보다는 버크셔 K의 식감이 좀 더 제 취향에는 맞았습니다.




 시각적으로도 좋은 분포를 가지고 있었는데, 고루 퍼진 고소함이 고기에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버크셔 K의 키워드로는 '다재다능'을 뽑고 싶습니다. 식감과 기름기, 모두 적당하게 잘 조화를 맞춰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4가지 품종들의 개인적인 느낌을 적어 보았습니다. 본 글의 고기들은 다른 두께, 숙성 등 과 같이 다른 환경을 갖고 있기에 품종들 간의 절대적인 평가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이 고기들 모두 특징과 뛰어난 맛을 갖고 있기에, 많은 분들이 글을 읽고 이런 다양한 고기가 있구나 하는 점과 먹어보고 싶다는 관심이 생기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하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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