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씨 오글거려
나이 마흔에 이 무슨 중2병 걸린 제목일까 싶지만 정말 그런 마음이 든다.
여름 휴가철에 수영하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한 바다를 볼 땐 그런 생각이 잘 들질 않는데, 한적한 바다, 고요한 바다, 저 멀리 수평선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그런 바다를 볼 때면 늘 슬퍼지곤 했다.
지난 2월 호주로 여행 가서 멜버른 근처에 있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에 갔는데, 거기에서 본 바다도 그랬다.
우리 가족을 포함해 관광객들이 좀 있긴 했지만, 붐비지 않고 서로의 거리가 확연히 느껴질 만한 정도의 사람만 있었다. 절벽 아래 아름답게 펼쳐진 바다는 부서지는 파도와 함께 슬픈 분위기를 자아냈다. 바다는 슬프지 않았을 것이다. 그걸 바라보는 내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 초등 딸아이 덕분에 그런 감정이 오래 지속되진 않았지만, 멍하니 저 끝을 바라보게 했다.
바다의 끝, 백사장에서 바라보면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 또 다른 대륙이나 섬이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이 저 바다 건너 멀리 어딘가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그냥 저 너머는 세상 끝처럼 느껴지고, 저 수평선 너머는 마치 지구의 끝처럼 느껴지고, 그 너머는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가 바로 이어질 것만 같다. 그러면 나는 지구의 수많은 해변 중 어느 한 곳에 서서 바다를 바라볼 뿐인데, 세상의 끝에 서서 저 멀리 지구 너머 우주룰 바라보고만 있는 듯한 아득한 기분이 된다.
유한한 삶, 유한한 행복과 불행, 짧은 인간의 삶, 그 모든 것이 큰 의미가 없게 느껴지고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등바등 살아내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그런 순간. 결국 한낱 우주의 먼지가 되려고 다들 그렇게 울고 화내고 서로 미워하며 한평생을 바치는 건가 싶은 그런 순간.
마음이 괜찮은 날에는 어차피 우주먼지가 될 삶인데 한 순간이라도 더 웃고 행복하게 살자고 결론 나고, 마음이 괜찮지 않은 날에는 열심히 살아내는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결론으로 가닿게 하는 바다.
언젠가 유한한 인생의 끝에 서서 뒤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보며 나는 어떤 마음이 될까. 슬픈 바다가 아니어야 할 텐데.
난생 처음, 동해바다로 혼자 1박 여행을 와서 오글거리는 글을 쓰고 있다.
소설 쓰기 수업에서 처음으로 합평받은 단편소설이 (피 터지는 피드백 받고나서 ㅋㅋ) 진짜로 소설이 되게 만들어보려고 머리를 빡대가리를 굴려가며 플롯을 짜 보았는데... 실화 바탕의 일기쓰기식 글만 써본 초짜가 진짜 뭘 창조하려니 머리에 쥐가 났다. 그런데 재밌었다. 잘할 수 있을지, 제대로 소설이라 칭할 수 있을 만한 뭔가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재밌고 즐거운 것만은 확실했다. 아무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혼자 걷고, 혼자 밥 먹고, 혼자 글 쓸 수 있는 이런 시간이 나에게 필요했다는 걸 왜 이제야 깨달았을까. 1년간의 육아휴직 후 복직을 앞두고 있는 남편 덕에 짧게라도 떠나올 수 있었다. 복직한 남편이라도 짜내어(?) 앞으로 최소한 1년에 한 번씩은 짧은 여행이라도 다녀야겠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