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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 Aug 02. 2021

새 생명을 기다리며

-정상과 비정상, 임신과 낙태의 경계에서

요리를 주제로 하는 한 예능에서 싱글맘 배우가 사생활을 공개했다. 그녀는 자폐스펙트럼에 속하는 십대 자녀를 키우고 있다. 방송에서 사연을 공개한 까닭은 자신처럼 자폐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들이 주변에 피해를 줄까 봐 선뜻 바깥 활동을 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섹시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던 그녀가 아들을 위해 정성스레 아침상을 차리고 감정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억지를 쓰는 아이를 달래는 모습이 브라운관을 스쳐갔다. 여느 십대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티브이를 보고 스마트폰을 만지는 아이의 일상도 보였다. 아이를 키우며 녹록지 않았던 지난날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현재 이만큼 자란 아이를 보며 환하게 웃는 배우의 얼굴은 여태껏 화보에서 보았던 어떤 모습만큼이나 곱고 아름다웠다. 



첫 출산 이후 9년 만에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병원에 다니면서 알게 되었는데, 어느새 나는 ‘노령 산모’가 되었다. 만 35세가 지나면 ‘노령’ 산모로 분류된다. 태아 때부터 여성은 난자를 지니고 출생하기에 난자의 나이가 내 나이만큼 많기 때문이라 한다. 난자의 나이가 많아지면(정확히는 난자가 늙으면) 태아가 형성될 때에 세포분열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기형아 출산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따라서 태아가 기형아인지 아닌지 판별하는 검사를 제안받았다. 이름만 들어서는 도무지 무슨 검사인지 알 수도 없는 ‘목덜미 투명대 검사’, ‘통합 선별검사’, ‘비침습적 산전 선별검사’ 등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검사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정부에서 산모들에게 지원하는 지원금을 전부 사용해야 할 만큼 비쌌다. 

그러나 비용의 문제를 떠나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만약 태아가 기형일 ‘확률’이 높게 나온다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담당의사에게 문의해보았다. “기형아 선별검사를 하지 않는 산모도 드물지만, 검사 후 확률이 높게 나온 산모들은 대부분 어떻게든 중절 수술을 하더라고요.” 차분하고 담담하게 말하는 담당의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이 으스스 추웠다. 일주일을 고민하고 남편과 상의한 끝에 선별검사를 거절하기로 했다. 담당의의 반응에 나는 꽤나 당황스러웠다. “종교적인 이유 때문이신가요? 어찌 되었건, 제가 담당했던 한 산모는 선별검사를 거절했는데, 비장애아를 낳을 거라고 굳게 믿었어요. 출산 당일 다운증후군 아이를 낳고서 산모가 매우 충격받았던 기억이 있네요. 사회적으로도 아직 우리나라는 다운증후군에 대한 인식도 좀 그렇고.” 

출산까지 나는 둘째의 장애여부를 몰랐다. 앞서 담당의가 언급한 산모처럼 나는 비장애아를 낳으리라는 확고한 기대나 신념은 없었다. 그렇다고 장애아를 낳을까 봐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어떤 아이를 만나든 기꺼이 환영해줄 수 있을까, 나 자신의 됨됨이를 돌아보았다. 나뿐만 아니라 나의 첫 아이와 남편은 어떨지 고민하고 기도했다. 인터넷에서 장애아동을 출산한 후기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차라리 기형아 선별검사를 통해 미리 물리적·경제적·치료적 준비를 했었어야 하나 약간의 후회도 했다.



어떤 선별검사라 할지라도, 확률에 의존한다. 맘 카페의 후기를 보면 50% 이상의 기형 확률 판정을 받고서도 비장애아기를 출산한 후기도 있고, 여전히 걱정과 염려 속에 태중의 아기를 기다리는 엄마들도 있다. 한 유튜버는 이란성쌍둥이를 낳았는데, 한 아기는 비장애아기 다른 아기는 장애아기(다운증후군)였다고 한다. 그녀는 아기를 낳고 한참이나 고민하며 베이비박스까지 생각했다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기를 키울 용기를 냈다. 

설사 선별검사에서 비장애아기로 판정을 받을지언정, 다른 장애 여부는 알 수 없다. 특히 아기의 정신적인 장애여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자폐스펙트럼의 경우, 18개월까지 아기의 자폐를 확정 짓기 매우 어렵다. 그렇기에 '영유아 발달검사'라는 다소 형식적이지만, 그래도 있어서 다행인 제도를 만들어 시행 중이다. 아기들을 면밀하게 관찰하는 주양육자의 소견과 소아과 전문의의 소견을 종합해 아기의 발달사항을 점검하여 발달지연 및 장애 여부를 시기마다 점검한다. 하지만 장애아동을 키우는 데에는 이런 선별적인 제도 외에 필요한 것들이, 또 넘어야할 사회의 장벽이 너무 많다.

TV 프로그램을 통해 배우가 어렵게 이야기를 전하듯, 수많은 장애 아동의 부모님들은 행여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칠까 걱정하며 외출한 번 하기 꺼려한다. 기억하지 않는가? 장애 아동을 둔 학부모들이 제발 아이들이 다닐 학교를 짓게 해달라며 비장애 아동 학부모들에게 무릎을 꿇었던 그 사건을. 담당의사는 이런 현실을 두고 나에게 선별검사를 권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선별검사를 통해 높은 확률을 판정받은 산모들이 아기들을 떠나보냈는지도. 그리고 출산직후 아기의 상태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기가 살아갈 세상이 막막하여 산모는 그토록 울었는지도. 

선별검사 무용론을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선별검사 결과로 중절수술을 하는 산모들을 비난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는 선별검사를 통해 산모와 그 가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개인에게 묻기 보다는, 국가적 차원에서 보장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더 이상 장애여부를 알고서도 장애아기를 키울 수 있는 여건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지 말아야한다. 저출산을 부르짖으면서도 장애선별검사를 시행한다는 것은 결국 국가가 사회적 비용이 덜 드는 '정상 인간'의 머릿수만 카운트하겠다는 셈인가? 



낙태권을 둘러싼 급진적 페미니즘과 종교계의 갈등이 새삼 눈앞에 그려진다.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 태어날 권리를 둘러싼 날카로운 대립 속에 오늘도 일부 산모들과 태아들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서성거린다.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 가능한’ 권리라는 건, 건강하게 남들과 다르지 않게 낳고 태어나고 자랄 권리뿐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이들이 나처럼 어디에서 어떻게 이런 고민을 나눌 수 있는지 온라인을 뒤적이며 잠 못드는 밤을 보내고 있으리라. 이미 잃어버린 수많은 아기들과 그 아기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엄마들을 이 밤, 꽈악 끌어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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