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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담 Aug 12. 2021

마야 이야기

엄지공주, 보이지 않는 것들의 노래

 나는 애완용 사람이다. 나는 우주의 아홉 살 생일을 위해 주문되었다. 우주의 부모님은 우주의 바람대로 아주 작 인형 같은 크기에 예쁜 얼굴과 고운 목소리로 나를 주문했다. 우주는 내가 처음 집에 온 날 이런 이야기를 재잘재잘해주었다. 주문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클릭 몇 번만 하면 원하는 유전자의 조합을 고를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만들어졌고, 우주에게 갔다. 우주는 세심했다. 내 집을 이미 마련해두었고, 옷가지 몇 벌과 작은 연못도 있었다. 우주가 온라인 학습을 하는 중간중간 나는 거기에서 뗏목을 타고 놀았다. 우주를 기다리는 건 심심했지만, 나 혼자 무엇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사실 뗏목도 내가 만들었다. 연못이라고 해봤자, 물 한 그릇 떠놓은 것 밖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우주의 친구가 숙제를 하러 왔다. 우주의 친구는 자신의 애완 사람을 데려왔다. 상자에서 꺼내진 또 다른 애완 사람은 나하고는 조금 다르게 생겼었다. 툭 튀어나온 큰 눈과 털이 없는 매끈매끈한 피부, 목이 없이 어깨와 머리가 바로 붙어있었다. 애완 사람은 우주의 친구가 너무나 좋아하는 동화인 ‘개구리 왕자’의 주인공으로 주문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커비였다. 두꺼비의 영어식 이름이라나. 그래서 그런지 자꾸 말을 할 때마다 “끄억”하는 소리가 목청에서 올라왔다. 우리는 누가 더 멀리 뛸 수 있는지, 누가 더 노래를 크게 부를 수 있는지 시합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간식을 먹고 우주와 친구가 들어왔다. 우리는 넷이 무엇을 하고 놀게 될까 너무너무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주의 친구는 개구리 왕자 놀이를 하자고 제안했다. 나와 커비는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었다. 우린 아마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개구리 왕자의 하이라이트 키스신 말이다. 그런데 우주가 갑자기 화를 냈다. 커비는 너무 징그럽게 생긴 “괴물”이기 때문에 “공주”인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다. 놀랍게도 친구는 우주의 말에 맞장구쳤다. 바로 자신이 생각한 개구리 왕자 놀이에 딱 들어맞는다며, 커비는 일부러 그렇게 조합해서 만들어낸 괴물이라고. 우주와 친구는 자신들의 눈을 손가락으로 벌려 커비의 커다란 눈을 흉내 냈고, 계속해서 커비의 목청에서 나오는 소리를 냈다. 여기저기 폴짝거리며 깔깔댔다. 커비의 얼굴에는 아까의 기대감 대신 침묵이 머물렀다. 나는 커비의 매끄러운 손을 잡았다. 우리는 우주와 친구의 웃음이 멈출 때까지 그렇게 우두커니 서있었다. 커비가 돌아가고,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창틀이 조금이라도 열려있기를 바라고 바랐던 어느 날 밤, 나는 우주를 떠났다. 나는 걷고 또 걸었다. 해가 뜰 때까지 걸었다. 내가 걸을 수 있는 땅이 그렇게 넓은지 상상도 못 했다. 커다란 강물이 나왔을 때에 허겁지겁 물을 마시고는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눈을 뜨니 곤충의 모습을 한 애완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맨질 거리는 까맣고 단단한 껍질과 붕붕 소리가 나는 멋진 날개를 가진 이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애완용 풍뎅이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풍뎅이 사람들은 나를 보고 영락없는 그냥 사람 같다며 신기해했다. 자기들을 길러줬던 주인들을 떠올리며 우리는 한참을 이야기를 나눴다. 풍뎅이 사람들이 집을 떠나온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공통적으로는 결국 주인이 자신들에게 질려버려서 그냥 놓아주었다는 이야기였다. 또 그들의 주인은 하나같이 더 곤충 같은 애완 사람을 원했다고 한다. 더 곤충 같은 사람이라니.

 풍뎅이 사람들이 떠난 뒤, 나는 살아남는 문제에 부딪혔다. 돌 틈에서 자보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주워 어설프게 집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먹거리를 구하려고 땅에 떨어진 열매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가끔씩 꿈에서 우주의 방에 살고 있는 내가 보였다. 잠에서 깨고 나면 나는 악몽이라도 꿨던 것처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참 다행이었다. 몸은 고되고 늘 배가 고팠지만, 괜찮았다. 그러다 겨울이 찾아왔다. 견딜 수 없는 추위와 배고픔의 날들이었다. 나뭇잎으로 몸을 감싸고 또 감싸도 스며드는 추위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 생각했던 때에 들쥐 부인을 만났다.

 들쥐 부인은 커다란 앞니와 기다란 꼬리가 매우 매력적인 애완용 쥐 사람이었다. 들쥐 부인은 나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숙식과 함께 일자리도 제공해 주었다. 일은 쉽지 않았다. 들쥐 부인의 굴에 밤마다 찾아오는 손님들과 대화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기본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노래불렀다. 고단하지만 화려한 옷을 입고 멋들어진 화장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일은 유일하게 힘이 났다. 그곳에서도 나는 “공주”라고 불렸는데, 들쥐 부인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을 부르는 말이 공주였다. 나는 우주가 부르던 이름 사용해 “엄지 공주”라고 불렸다. 손님들은 내 노래가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우며 내 이름을 외치곤 했다.

 손님들은 때로 잠자리를 요구하기도 했는데, 다행히도 들쥐 부인은 공주들이 원할 때에만 그 일을 하게 했다. 또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폭력적인 상황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는 점, 잠자리 요구에 응했어도 공주들이 원치 않는 경우에는 언제든지 그 거래는 취소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지불된 금액은 공주 당사자에게 오롯이 돌아간다는 점. 들쥐 부인은 일하는 이들이 최대한 이곳에서 자신의 삶을 준비하고 떠나가기를 바랐다. 계속해서 머무르기를 절대로 원하지 않았다. 나 역시 떠날 채비를 했다. 따뜻한 봄이 되면 나는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단단한 흙들이 부드러워졌다. 이제 나는 떠나야 했다. 들쥐 부인과 내 단골 고객이었던 두더지 신사는 기꺼이 나를 배웅해주었다. (그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그는 공주들 모두가 암컷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함께 일하던 애완용 제비 사람, 연이와 같은 날 떠나게 되었다. 연이는 나와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던 공주였다. 연이제비의 날개를 가지고 있었고, 나는 연이의 등에 올라타고 날아올랐다. 얼굴에 강하게 부딪혀오는 바람이 아프기도 했지만, 통쾌한 마음이 들었다. 연이와 나는 남쪽으로 향했다. 남쪽나라에는 나와 같은 애완용 사람을 성형해주는 곳이 있다고 손님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연이봄이 되면 그 나라에 가기 때문에 사실 나는 연이를 따라나선 것이기도 했다.

 연이는 어렵지 않게 나를 원하던 장소에 데려다주었다. 단정하고 반듯한 외관을 지나 안내데스크로 향했다. 접수를 마치고 여러 가지 동의서를 작성했다. 초조하고 불안했으나 동시에 설레는 마음으로 가슴이 뛰었다. 수술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옵션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어서 고르기만 하면 됐다. 수술은 잘 되었다. 나는 거울 앞에서 달라진 내 모습을 보며 행복해했다. 나의 가슴은 볼록했고, 허리에는 커다란 나방의 날개가 달려있었다. 작고 소중한 나의 페니스도 잘 붙어있었다.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는 보다 완전한 내가 되었다고 느꼈다. 이제 나는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 회복이 끝나고 비용을 지불하였다. 내가 벌었던 돈을 모두 털어 넣었지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연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끔하고 날렵한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나는 연이에게 단번에 날아갔다. 연이는 나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나는 어디에도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마치 내 몸처럼,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고 싶었다. 연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엄지공주, 안녕. 나는 연이에게 입 맞추며 속삭였다. 나는 이제 엄지 공주가 아니야. 내 이름은 마야, 마야라고 불러줘. 안녕, 안녕. 나선형을 그리며 나는 멀리 더 멀리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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