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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거나 글쓴이 Apr 23. 2017

그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도 사랑하겠다는 것만큼

 바보같은 짓이 없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는 막 지하철에서 홀로 내린 찰나였다. 그는 이내 어벙벙한 함박웃음을 한가득 지었다. 넋을 놓은 듯 헤벌쭉하여서는 지하철 밖의 나를 보며 열차 안을 걸었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나를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남의 시선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바보같을 정도로  행복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를 이제는 정말로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이라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내가 변덕스러워 '지금은' 사랑을 느끼지 않는다고.  그래도 곧 사랑할 것이며, 지금 느끼는 이 또한 비슷한 감정일 것이라고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감정을 요구하는 일은 힘들었다. 매 순간마다 말의 무게를 서로 다르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듣고 싶을 저 사람을 위해 애정을 말했다. 상대를 위한다는 이유로, 흘러갈 시간에 기대었다. 자신을 방치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휩쓸려 자신을 잃기도 한다지만, 나는 감정과 생각의 기준을 양도하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잃었다. 비참했다. 그에겐 기억에 남을 사랑의 속삭임이 내겐 그저 내뱉는 소리가 되곤 할 때면 애정을 입밖으로 꺼내는 것부터 고됐다. 관계에서 자신을 배제하면서도 관여하겠다는, 맹목적이고 얼간이같은 생각 내가 나서서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짓이었다. 좋아해서 절로 나오는 마디 하나 하지 못하다니, 고작 두 명이서 맺는 관계에서조차 주변인으로 전락하다니. 


남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 만큼 바보같은 짓이 없다. 나는 그 당연한 것을 너무도 늦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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