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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거나 글쓴이 May 26. 2016

청년은 책상 앞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남들이 볼땐 그까짓거, 싶어도 본인에겐 굉장히 큰 일이 있기 마련이다. 이 친구와 함께 했던 공연은 나에겐 그런 것 중 하나였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공연을 우리는 함께 올렸다. 준비하는 시험을 핑계삼아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있었는데, 공연 때문인지 이 친구는 다른 연보다 더 끈덕졌나보다.  이야깃거리는 역시나 몇년 전 그 사람들과 그 공간, 그 시간에 머물렀다.


 뚜렷한 색이나 목적을 가진 곳에 모이는 이들은 보통 비슷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연기하고 노래하고 싶어 모인 학생들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세계가 금방 자신의 전부가 되었다는 점이 특히 비슷했다.  우리들 안에서, 대사를 참 맛깔나게 텐션(tension)을 자유자재로 줘가며 치는 이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또 발성을 제대로 할 경우 이런 식으로 소리가 나온다며, 동작을 더 자신있게 해보라며 직접 해보이는 금발의 선배도 나이와 무색하게 존경스러울 정도로 반짝였다. 도무지 연습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타고난 재능을 펼쳐놓는 동안 자연히 떠오르는 그 표정이란. 그쪽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대학생 아마추어 사이에서 재능이 주는 크기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막연한 열정을 숨기고 있을 땐 더더욱 그러했다.


 그런데 그토록 노래를 잘하던 금발머리 선배는 행시생이 되어 저어기 신림동 학원가에 있단다. 대사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던 또다른 선배는 가족의 연기 반대로 취업을 준비한다고. 아득했다. 저 사람의 표정이 실은 정말 생생하다는 것을, 상사가 될 이는 알까. 몇년쯤 더 지나가버렸을 때, 그가 무대에서 싱그럽기 그지 없었다는 것을, 그만큼 가사를 잘 곱씹어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또 누가 알기는 할까. 건드린 기억이 참혹했다.


 청년들 어디갔냐고 물으면 다 중동에 갔다고 하랬던가. 청년들은 책상 앞에 있다. 먹고 살 걱정 안하기 위해서,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선택한 길은 중동이 아니라 각자의 빛깔을 억누른채 책상 앞을 지키고 버티는 일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날이 와야 다들 안심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근육이 굳어 뻣뻣해지고 표정도 딱딱해진 채, 취미는 수면부족으로 인한 커피섭취요, 특기는 주말 TV재방송 시청과 입금 확인뿐인 사람이 되는 그날이 오면, 그제야 아, 나는 평범하게 한국에서 잘 살고 있노라고. 평범한 사람은 실은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던 사람이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거세시키고서야 얻어낸, 민몸 같은 건 아닐까.



  친구를 만나느라 잠시 못 뵈었던 인강 선생님이 기다리신다. 나 역시 책상 앞에서 책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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