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쓸모란 ( )입니다.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는데 필요한 다양한 질문들과 새해 계획을 위한 다이어리, 자기계발서 등의 구매로 모두가 분주해집니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선 연말결산을 위한 도구를 판매하고, 구독 플랫폼에선 연말을 회고하는 디지털 템플릿을 공유하죠. 또, ‘~시간의 법칙’, ‘~의 힘’ 같은 제목의 책들이 쏟아져나옵니다. 하지만 위와 같이 매년 반복되는 전국민적 연말의식 속에는 중요한 질문이 빠져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이토록 자기계발을 중시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자기계발에 몰두하게 된 이유를 되짚어보려면 먼저 사회의 압력에서 비롯된 ‘쓸모’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제 경우에는 이력서를 쓸 때 제 쓸모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분명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온 것 같은데 막상 사회에서 인정하는 이력을 쓰자니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이러한 자기인식은 이내 자책으로 이어집니다. 고시를 준비했던 20대 중반의 공백기가 원망스럽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했던 20대 후반의 나를 한심하게 여기면서 말이죠.
줌마네의 책 『쓸 만한 일』에서 루후나도 저와 비슷한 사정을 털어놓습니다.
"지금도 나는 ‘치열하게’, ‘빡세게’라는 표현을 쓰며 나는 그러지 못했다고 자책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산업화 시대의 유물인 근면성실 신화의 흔적일 거라 했다. 하긴, 나 역시 20대 후반까지는 ‘하면 된다’라는 주술에 갇혀 살긴 했다."
이렇게 자책을 하던 사람들은 쓸모없음에 대한 자기인식을 해소하고 자신의 쓸모를 발굴하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찾습니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는 독자를 부족한 사람으로 상정하는 상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계발서의 독자는 책을 통해 얻고자 기대한 것, 즉 더 나은 삶을 위한 목표 의식이나 내 삶을 사회가 원하는 방식으로 맞춤설계하기 위한 토대를 얻기 보다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느낌만을 더욱 강하게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과 쓸모에 대한 물음에서 야기된 자책, 불안이 우리를 또 한 번 자기계발의 궤도에 합류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년 자기계발 의식을 수행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목표하는 자기계발의 종착지가 쓸모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라면, 그 쓸모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가 추구하는 쓸모는 생산성과 관련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맥락 속에서 개개인의 삶은 그저 생산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영어 단어를 외우고, 출근 전 가볍게 조깅을 하며 머리를 깨우고, 일터에서는 치열하게 일하며, 퇴근 후엔 직무에서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자기계발에 전념하는 이 모든 과정이 결국은 자본주의 사회가 목표하는 생산성의 논리에 입각한 루틴인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이 과정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또 모두가 이 과정을 통과해낼 수도 없습니다. 이렇듯 누군가를 반드시 탈락시키고야 마는 쓸모라면 그것은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우리는 쓸모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진되고 탈락되는 사람이 없는 방식으로, 적어도 나 스스로를 가치있는 사람으로 여길 수 있는 하나의 용어로써 말이죠.
앞서 소개한 『쓸 만한 일』은 나를 구성해온 일들이 우리의 삶에서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책입니다. 사회적 요구에 억지로 끼워맞춰야 했던 수많은 일들을 재의미화하는 시도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쓸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도대체 난 왜 내가 해온 일들을 ‘일’로 여기지 않았던 걸까? 결국, 괜한 허세가 아니었을까? 내가 하고 있는 이 엄연한 ‘일’들을 일이 아니라 우긴 것은, 어쩌면 좀 더 근사하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는 일만이 진짜 ‘일’이고 그렇지 못한 것들은 취미 생활이나 ‘잡일’ 혹은 그냥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그렇게 세상의 관념을 내재화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사회가 원하는 쓸모를 만들진 못해도, 내가 해 온 모든 일들이 저마다의 의미와 맥락을 가진다는 사실은 우리 존재를 의미있게 만듭니다.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일들 또한 쓸모를 당장 발휘하지 못했을 뿐,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데 중요한 요소로써 쓸모있게 기능하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지난 발자취를 돌아보고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쓸모없음에 좌절하게 될 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 한 일이 없는 것처럼 초라하게 느껴질 때마다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걸어오고 있음을 그리하여 살아가고 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각자의 도착지만 다를 뿐이죠.
이렇게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과정은 우리의 발걸음 하나하나의 의미를 되찾는다는 점에서 그 누구도 탈락하지 않을 수 있는 모두의 결승선에 도달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