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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구 Sep 23. 2022

0. 하나이면서 둘인 마음

자기 계발 중독 시대의 모순된 마음들

오전 10시가 다 된 시각, 나는 아직 누워있다. 나는 집이 조금 덥다고 생각하며 이불을 걷어찬 채 모로 누워 핸드폰을 보는 중이다. 나는 버릇처럼 트위터부터 접속한다. 누군가 리트윗 한 트윗들을 성의 없이 읽다가 '번아웃 솔루션 7'이라는 트윗에서 손가락을 멈춘다. '쉼'을 총 7개로 분류하고, 각각의 '쉼'을 위해 필요한 방법들을 제안한 짧은 트윗에서 나는 불편한 마음이 솟구치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마치 그것이 오랫동안 내가 찾아온 정보인 양 북마크에 넣어둔다. 불편한 마음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진다.


오전 11시. 이제 일어날 시간이다. 배를 긁으며 거실로 걸어 나가 소파에 앉는다. 나는 오늘의 아침 메뉴를 고민하며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 아이콘을 클릭한다. 사람들은 오늘도 무언가 바삐 하고 있다. 미라클 모닝, 모닝 페이지 쓰기, 건강한 재료로 아침식사 준비하기, 출근 전 달리기, 명상, 오늘의 루틴과 계획 점검하기 등 종류도 다양하다. 수많은 게시글 중 내가 아침 메뉴에 참고할만한 글은 없다. 우리 집에는 근육으로 다져진 건강한 몸, 따사로울 정도로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수입 시리얼, 구운 아스파라거스, 갓 짠 레몬으로 만든 주스도 없고, 파스텔톤에 독특한 쉐잎을 가진 시리얼 볼과 오돌토돌한 촉감이 인상적인 하얀 머그컵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 집에는 호르몬 불균형으로 불어 터진 몸과 북향집의 음기, 썩기 직전의 양배추와 명절에 받은 스팸, 엄마가 물려준 정체불명의 꽃무늬 그릇이 있다. 나는 내가 중요한 일을 도모하기 위해 먼저 그것들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게시글 사이사이 나를 위한 광고들이 뜬다. 나는 그것들을 눈으로 훑으며 언젠가 준비될 나의 완벽한 미래를 상상한다. 내가 그것들을 손에 넣는다면 성공에 한층 더 가까워질 것이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궁금해진 나는 누가 볼세라 은밀하게 '성공' 검색한다. '#성공'의 게시물 수는 약 189만 개. 나는 189만 개의 욕망을 가로질러 '좋아요'가 2482개에 달하는 한 게시물을 클릭한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선 오전 시간을 잘 활용해보세요. 오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됩니다." 나는 무심코 시계를 쳐다본다. 12시 10분. 오전은 이미 지나갔고, 나는 하루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했다'.


우리는 적당히 해서는 안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효율이라는 미명 아래 하루를 획기적으로 설계해야 하는 시대, 상승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고 바쁘게 살 것을 강요하는 시대 안에서 우리는 휴식하는 법조차 자기 계발 관련 책과 계정으로부터 배운다. 그야말로 자기 계발 중독 시대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계발이라는 가파른 언덕을 힘겹게 오른다. 낡은 수레처럼 멈춰 서고 후퇴하기를 반복하며 시대의 꽁무니를 부지런히 좇는다. 모두가 이렇게 부지런히 발을 구르는 이유는 우리의 종착지인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서다.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 사람은 없다. 어차피 행복은 모두의 마음속에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햇살이 가득 들어 찬 서울의 아파트에서 불안과 초조 같은 감정의 침범 없이 무균의 하루를 살아내는 것,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무엇이든 시도하고 구매할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하는 것. 우리는 이러한 행복이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마땅히 도래할 것이라 예상하며 오늘도 발을 구른다. 


자기 계발 담론과 이상화된 관념적 행복은 자본주의와 결탁하며 많은 문제들을 지우거나 감춘다. 우리는 사라진 마음들의 행방을 묻지 않고 현재의 욕망을 행복 이후로 유예시키며, 진짜 자아를 숨긴 채 스스로를 탁월한 인간으로 둔갑시킨다. 많은 문제들을 뒤로 물리고 아래로 누른 채 탄생한 가짜 자아는 표백된 마음을 가진 궁극의 합리적 생물이자 신념마저도 자기 계발의 도구로 활용하는 기획된 신인류다. 


이렇게 탄생한 신인류는 자기 계발의 맥락 속에서 자신을 기포 하나 없이 매끈한 실리콘으로 만들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울퉁불퉁한 자아를 깎아내는 고통의 시간 사이사이 불순한 감정들이 끼어든다. 이 감정들은 SNS 속 균질적인 글과 이미지들을 넘겨보며 불편해지는 순간, 끝도 없이 길어지는 체크리스트를 바라보며 막막한 기분이 드는 순간, 사람들의 SNS 팔로워 수를 비교하고 그 가치를 셈하며 타인의 성취를 부러워하는 순간 삶에 난입한다. 그리고 이때, 우리는 우리의 모순된 마음을 발견하며 혼란을 겪는다. 탁월해 보이고 싶은 한편 약점을 내보이고 싶은 마음, 불안하지만 쉬어가고 싶은 마음, 평가당하긴 싫지만 평가하고 싶은 마음, SNS 프로필이 아닌 다른 문법으로 나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 하나이면서 둘인 마음들이 어지럽게 얽힌다. 


나는 내 안에 자리하고 있는 하나이면서 둘인 마음을 펼쳐 보이고자 한다. 모순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경계 위 여성 청년의 모습을 드러내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성실한 거짓말쟁이가 되기까지의 나의 일대기를 해체함으로써 누군가에게는 위로를,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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